‘사찰 방역팀’ 꾸리고…늘 웃으며 아낌없이 베푸는 스님

61안거 성만한 대표 수좌
보경선원 만들어 선풍진작
“모든 수행은 일상이 돼야”

일요일 사찰 순례객 상대로
떡과 조청 산야초 등 제공
겨울이면 팥죽나눔 연례행사

포항사암聯 차원 방역팀 구성
화물차로 70여 사찰 ‘방역순례’
“힘들지만 화합으로 이겨내자”

포항 보경사 주지 철산스님을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 중 가장 어울리는 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이었다. 9월1일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 중인 철산스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포항 보경사 주지 철산스님을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 중 가장 어울리는 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이었다. 9월1일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 중인 철산스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신라 603년 지명법사가 창건한 포항 보경사. 인근 내연산 12폭포 등 수려한 자연경관이 함께 어우러진 천년고찰이다. 도량 곳곳엔 원진국사비(보물 제252), 비로자나불도(보물 제1996) 등 보물도 품고 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와 가치를 지닌 이 곳엔 몇 년 전까지 선원이 없었다. 2013년 소임을 맡은 한 주지 스님 덕분에 비로소 선원이 생겼다. 주지 스님은 자신의 방사를 내놓으면서 수좌들의 수행처를 만들어줬다. 그 스님이 철산스님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든 지금. 어떤 스님은 잠시 승복 대신 방역복을 입고, 목탁 대신 방역기구를 들었다. 그리고 포항 지역 사찰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직접 코로나 방역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더운 날씨에 온 몸이 흠뻑 땀으로 젖지만, 어려운 시기 출가자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단다. 그 스님 역시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 철산스님이다.

이처럼 철산(鐵山)스님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스님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9월이 시작된 첫 날 포항으로 찾아갔다. 기자를 보자마자 멀리서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면서 할 이야기가 없는데 괜히 온 거 아니냐며 미안해했다. 그래도 먼 길 왔으니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에 스님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철산스님은 수좌로서 명망이 높다. 수행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한 문경 대승사 대승선원장 소임이 가장 대표적이다. 대승선원은 성철 청담 자운스님 등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이 머물며 선풍을 진작시킨 곳이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의장도 지냈다. 푸근하고 인자한 미소 내면엔 수좌로서의 굳은 결기가 살아있다. 잠을 자지 않으며 화두와 씨름하는 용맹정진을 셀 수 없이 많이 해냈다. 스님은 정진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스님에겐 용맹정진은 고행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다.

철산스님은 출가 생활 대부분을 선원에서 보냈다. 이는 현대불교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월산스님(1913~1997)의 영향의 크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로의장 등을 지낸 월산스님은 경허 만공 보월 금오스님의 법맥을 이은 선사(禪師). 이 월산스님의 손상좌이자 지근거리서 지극히 모신 효()상좌가 바로 철산스님이다. 그리고 스승의 유지를 지금껏 잘 이어오고 있다. 월산스님이 선풍 진작을 위해 불국사에 선원을 만들었듯이, 철산스님도 보경사에서 주지 소임을 시작하면서 보경선원을 세웠다.

40여 년 간 선방에서 치열하게 수행한 철산스님의 원력이 집약된 보경선원은 어느 선원보다 수행분위기가 옹골차고 치열하다. 올해 하안거에도 13명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다. 조계종 원로의원 법타스님도 이번 한 철을 보경선원에서 났다.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신생 선원이지만 이미 명성이 널리 퍼졌다.

철산스님은 꾸준한 수행을 역설했다. 꾸준함에서 진정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결국 중도(中道)와 연기(緣起)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밥 먹을 때도, 자려고 누워있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늘 알아차리기 위해 집중해야 되죠. 결국 수행을 하나의 일상으로 여기고 늘 가깝게 지내야 합니다.”

이는 보경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볼 수 있는 글귀와도 맞닿아 있다. “괴로우면 기도하고, 외로우면 염불하고 조용하면 독경참선하라.” 스님은 본인의 주 전공인 참선 수행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염불에도 독경에도 선()의 의미가 담겨 있으니 모든 순간순간 마다 갖가지 방편으로 수행하라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철산스님의 별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늘 무언가를 주는 일이 꾸밈없이 자연스럽다. 스님과 차 한 잔 담소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에는 누구라도 보따리가 두 손 가득이다. 이날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에게도 차()부터 스님이 직접 만든 도자기, 식초, 조청 등 한 가득 내어준다. 하나 같이 스님의 정성이 담긴 소중한 공양물이다. 무겁겠지만 신문사 식구들과 같이 나눠 먹으란다. 마치 시골집에 놀러온 손주에게 이것저것 내어주듯 다정함이 느껴진다.

스님의 자비행은 사실 대외적으로 더 유명하다. 매주 일요일마다 보경사 입구에서 관광객과 순례객에게 떡과 조청, 산야초를 무료로 제공한다. 보경사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불교에 대한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매 겨울마다 진행하는 동지 팥죽 나눔의 빼놓을 수 없는 연례행사다.

지역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 힘이 돼 준다. 지난 2017년 포항 지진 때가 대표적이다.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일손을 돕고 위로를 건네는 등 살아있는 자비를 실천한다. 베풀면 베풀수록 스님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오른다. 스님이 많은 것을 갖고 있어서 베푸는 게 아니다. 내가 갖고 있고, 할 수 있는 걸 나눠줄 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솔선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현재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들의 성원으로 지난해 회장직이 연임 됐다. 맡고 있는 소임이 많지만, 지역불교 발전 또한 허투루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시간을 쪼개 불법 포교에 진력 중이다.

스님은 종교간 상생에도 힘을 쏟는다. 지난 2018년 가톨릭 기독교가 함께 모인 신년하례회를 주도해 열었다. 지역에서 3대 종교가 함께 화합과 상생의 자리를 나눈 건 당시 처음이었다. 남은 임기 동안엔 지역 불자들을 위한 포항불교회관 건립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간결하고 묵직한 바람이다. 철산스님의 원력이기에 믿음이 간다.

철산스님은 꾸며내거나 헛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최근 교계를 넘어 주요 언론사에 철산스님 모습이 여러 번 노출됐다. 코로나19 전국적인 확산세가 커지자 포항불교사암연합회에서 자체적으로 사찰 방역팀을 꾸린 것이다. 정부의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 불자들의 안전을 위해 이같이 구성했단다.

철산스님을 단장으로 구성된 방역팀은 소형 화물차에 방역장비를 싣고 연합회 소속 사찰 70여 곳을 누볐다. 스님은 힘들지만 함께 땀 흘리며 회원 스님과 불자들이 화합할 수 있는 계기라며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방역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스님에게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불자와 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부탁드린다는 질문을 준비했지만, 다시 집어넣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말보단 실천하는 모습이 귀감이 된다.

스님을 설명하는 수사들이 여럿이다. 하지만 스님의 진면목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표현으로 귀결된다.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철산스님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늘 인자한 미소로 아낌없이 베푸는 철산스님의 모습.
늘 인자한 미소로 아낌없이 베푸는 철산스님의 모습.

철산스님은…
1981년 사미계를, 1983년 구족계를 각각 범어사에서 수지했다. 원효암에서 수선 안거한 이래 61안거를 성만했다. 대승사 주지와 선원장, 각화사 주지와 선원장 등을 역임하며 선풍 진작에 힘썼다. 문경시종합사회복지관 관장으로도 일하며 지역사회 복지발전에 기여했다. 2013년부터 보경사에서 주지와 선원장 소임을 맡고 있으며,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으로 지역불교 불법홍포에 매진 중이다.

포항=이성진 기자 sj0478@ibulgyo.com

[불교신문3615호/2020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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