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가르침과 기도로 이겨내는 코로나19

코로나19는 조화를 무시한
인류에게 보내는 자연의 경고

인과설과 연기법도 모르는
불교에 대한 무지가 재앙 불러

우리 몸·재산은 잠시 빌린 것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고

6바라밀과 8정도 실천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수행해야

오심스님
오심스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작년 12월30일부터 우리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바이러스의 침공은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문명이라는 사회, 정치, 경제, 종교, 환경 등 모든 것을 일순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오죽하면 “인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9개월 동안 잠복과 확산을 반복하며 우리 삶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물류센터, 콜센터, 식당, 클럽, 교회 등 곳곳에서 수십, 수백 명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온 국민을 긴장으로 몰아가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5 경계’라는 초유의 사태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열 사람 이상 모이는 것이 제한되다 보니 사찰에서도 기도, 예불은 물론 교육, 템플스테이 등에 불자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사찰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정부의 요청이 나오기 전, 법회와 행사를 모두 중단하고 조계종 교구본사 사찰들은 산문폐쇄에 들어간 곳도 꽤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찰에서는 예불과 제사 등에 스님만 참석하며 의식을 진행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큰 사찰에서는 인터넷 생방송으로 예불과 기도를 하며 새로운 신행과 기도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일부 타 종교에서는 확진자를 그대로 예배에 참가시켜 코로나19 확산을 하는데 일조하며 국민에게 지탄을 받고 있으면서도 8·15 광화문 집회를 진행하여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조계종 사찰은 방역기준을 철저히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절에 확진자가 없는 연유에 대해 사람들은 “스님들이 흰 고무신을 신어 코로나19 백신이 있다”라는 말로 한 번씩 웃어 가며 이 어려운 난국을 이겨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종종 “불자들에게 사찰에는 약사여래불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약사여래불은 신심을 굳건히 하는 대상입니다. 부처님은 한 분이지만 또한 여러 모습으로 나투십니다. 중생의 근기(根基)에 맞추어 중생의 눈높이로 다른 모습으로 화현(化現)하시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지금, 우리는 약사여래부처님의 위신력을 믿고 신심을 한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삶에 제약을 받고 불안한 이때일수록 굳건한 신심으로써 내 몸을 잘 지켜야 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만병통치는 면역력입니다. 면역체계가 증장되고 단단해지려면 신심을 스스로 키워야 하지요. 이럴 때일수록 기도 열심히 하고 강한 의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로 여러 가지로 삶에 제약을 받고 불안한 이때일수록 굳건한 신심으로써 자신의 몸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면역력을 키워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정신과 몸을 만드는 것입니다. 면역체계가 증장되고 단단해지려면 신심을 스스로 키워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도를 열심히 하고 강한 의지로 살아가면 면역체계가 증장되고 스스로 기도와 신심을 키우면 지금 어려운 시국을 이겨내는 방법이 생길 것입니다. 

말법의 시대에 나타날 광풍을 우리는 미리 알고 준비하고 대비하며, 힘들 때일수록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두 다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벌이는 이 병균과의 전쟁이 끝나고 그 후유증이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404 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가 포함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말합니다. 변하지 않고 항상 하는 것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중세시대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가 지금 시절 인연이 되어 코로나19로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인(因)이 있으면 과(果)가 있는 것입니다. 원인을 알면 대처할 방법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발효음식을 먹으니 우선은 면역력을 증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이 공부고 지혜라는 말처럼 우리나라는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잘 이겨내며, 감염병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연구하며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것이 도움이 되어 아마도 미국이나 유럽 소위 말하는 선진국보다 방어능력을 더욱 잘 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
일즉일체 다즉일(一卽一切 多卽一)

티끌 속에 세계가 들어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

<화엄경> ‘법성계’에 나오는 법구입니다. 이 한 구절만 보더라도 불교는 과학적인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티끌 속에 세계가 들어있다’라는 것은 반도체의 나노 기술을 의미합니다. 머리카락 굵기에 몇천 개의 도서관의 정보가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라는 것은 휴대폰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휴대폰에 깔린 많은 앱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2600년 전에 부처님은 이런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과학의 발전으로 그 진가가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을 불교의 교리로 해석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는 불교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부 사찰들은 예불과 제사 등에 스님만 참석하고, 신도들은 인터넷 생방송으로 예불과 기도를 하며 새로운 신행과 기도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봉은사 스님들이 법왕루에서 기도하고 이를 생중계하는 모습.
코로나는 불교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부 사찰들은 예불과 제사 등에 스님만 참석하고, 신도들은 인터넷 생방송으로 예불과 기도를 하며 새로운 신행과 기도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봉은사 스님들이 법왕루에서 기도하고 이를 생중계하는 모습.

그렇다면 이 시국에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요? 

근시안적으로 지금의 문제를 바라보면 답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불교적으로 보면 답이 있습니다. 지금의 이 사태가 온 것도 인간이 만든 자업자득의 모습입니다. 인간들이 다만 못 보았을 뿐이고, 다만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고, 다만 몰랐을 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아열대 기후에 가깝습니다. 추울 때는 추워야 하고 더울 때는 더워야 하는데, 처음부터 아프리카의 더위나 알래스카의 추위는 그 지역에서의 자연환경에서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기후가 변하는 것은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이기주의적인 개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독감 바이러스도 기형적으로 변해 이런 코로나19가 생겼을 것입니다. 

세상은 혼자만 살 수 없습니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자연의 이치를 저버리면 이런 재앙이 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불교의 인과설(因果設)과 연기법(緣起法)을 모르는 무지가 재앙을 부른 것입니다. 

내가 있으므로 네 있고,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그것이 도미노처럼 연관되어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코로나19는 그 조화를 무시한 인류에게 보내는 자연의 경고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저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나만 잘산다고 잘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래를 예상하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연구하고 공부해서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자니까 부처님 법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6바라밀, 8정도, 중도, 4성제, 12인연, 이 기초교리 안에 모든 정답이 있습니다. 

6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입니다. 그중 지혜에 대한 사례를 든다면, 어떤 생리대를 만드는 회사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회사의 생산라인을 마스크 만드는 것으로 돌려 마스크 공급량 부족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의 발상으로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혜롭게 힘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6바라밀과 8정도를 실천하고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뿐입니다. 인생은 어쨌든 빌린 것이니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아 합니다. 지금의 이 몸, 이 재산은 다만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입니다. 잠시 빌려 쓰다가, 갈 때 집착 하지 말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초유의 난국이지만 바이러스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계속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좌절만 하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이 난국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라고 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며 수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평온한 마음으로 살면 그것이 지혜의 도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끝이라도 성심성의껏 발원하고 기도하고 실행하면 희망의 꽃은 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가피(加被)입니다. 내 마음에 희망이 필 때 바로 가피는 우리 곁을 지키며 살포시 꽃을 피울 것입니다. 

[불교신문3615호/2020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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