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부족하다
지난 역사 속에서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도량을 정비하던
큰 스님들의 노력과 마음 덕에
지금처럼 여러 훌륭한 사찰들이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묘장스님
묘장스님

올해 장마는 처음 겪는 긴 장마였다. 장마 끝에 태풍이 연달아 오다보니 장마가 계속 진행중인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절은 산속에 있어서 태풍과 폭우가 지날 때면 절에 들어오는 길이 깊이 패이거나, 오랫동안 산을 지키던 나무들이 쓰러지는 등 늘 어느 정도는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30년 전 강원 치문반일 때, 그때도 오랜 장마 끝에 태풍이 왔다. 밤에 비가 너무 많이 오다 보니 걱정이 돼 밤중에도 잠을 못 이루고 있었는데, 함께 공부하는 도반 스님이 도량을 한 번 돌아보자고 해서 밤12시쯤 우산과 삽을 들고 도량을 돌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도량을 돌다보니 부주지 스님이 손전등을 들고 먼저 돌고 있었다. 우리를 먼저 보시고는 “비가 많이 왔는데 왜 나왔냐”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스님의 손에도 삽이 들려 있었다. 

물은 나가는 길만 잘 터주면 순하게 잘 간다. 그런데 어딘가 막혀 있으면 성을 내며 여러 가지 피해를 준다. “대웅전 주위는 모두 살펴보았으니 천불전 주위를 돌아보라”는 부주지 스님의 말씀에 우리는 각 법당 주변을 둘러보며 배수로에 쌓인 낙엽을 거둬내 물길도 터주면서 도량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명월당을 지나는데 조실 스님께서 툇마루에서 근심어린 눈길로 폭우가 내리는 도량을 바라보고 계셨다. 

우리를 보며 “거 누구냐?”하고 물으셨다. “강원 학인인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스러워 절을 돌아보고 있습니다”하니 “잘했다”하시며 그제야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셨다. 

우리도 도량을 모두 살펴본 뒤에 방에 들어와서는 아까와는 다르게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삼보정재를 보호하고 가람을 수호하는 소임자의 역할을 알게 됐다. 우리가 편안히 절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밤에도 깨어 있던 어른 스님들과 책임감 있고 신심 깊은 소임자 스님 덕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의 깨우침 덕분에 절을 옮겨 살게 되면 소임을 살거나 살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항상 이곳저곳 위험한 곳이나 고쳐야 될 부분들을 살피며 살게 됐다.

지난해 이 곳 학도암 주지 소임을 맡아 왔는데, 사찰이 바위가 많은 산에 있어서 그런지 배수로가 부족했다. 그래서 지난 봄에 우수관로를 새로 설치해서 비가 많이 올 때 도량으로 흘러드는 세 군데 중 두 군데의 물길을 잡았다. 그리고 흙이 부족한 편이라 잔디를 심거나 자갈을 깔아 토사유출을 막아놓았다. 그런데 한곳은 다음에 해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루어 두었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매일같이 비가 오다 보니, 공사를 미루어 두었던 한 곳에서 나오는 물의 양이 많아 매일 근심거리가 됐다. 흙으로 스며드는 것의 한계가 넘어가니 담 밑에는 구멍이 뚫리고 축대 밑에는 물길이 생겼다. 그래서 비가 좀 잦아든 틈에 집수정을 만들고 수중펌프를 설치해 배수로로 물길을 돌렸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바위산이라 배수는 잘 되는 편이지만 이렇게 많은 비가 온다면 아무래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계곡을 막고 있는 담장 밑이 큰 비로 인해 구멍이 뚫려 물이 도량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폭우를 맞으면서 급하게 담 밑을 막고 물길을 돌려 위기를 모면했다. 이제 태풍이 지나고 나면 그곳도 잘 정비를 해야 한다. 

이렇듯 도량을 보호하는 일이 녹녹치는 않다. 그리고 재난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부족하다. 지난 역사 속에서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도량을 정비하던 큰 스님들의 노력과 마음 덕에 지금처럼 여러 훌륭한 사찰들이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불교신문3614호/2020년9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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