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 지킨 성실함에 ‘영원의 꽃씨’는 날아온다”

불교상담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다. 임인구의 ‘어엿한 그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어엿하게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연기법에 근간하여 역설과 상호관계성의 원리로 안내한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마음 자체를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대하는 직접화법으로 구성된다.

임인구
임인구

그대여, 새로운 날들의 시작부터 그대를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대는 이미 우울하기 때문이다. 매일이 똑같고, 그렇게 늘 되는 일이 없는 그대는 우울하다. 그래도 그 침체된 우울함 속에서 그대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희망이다. 그대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그대의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곧 그대가 품는 희망이다.

그러나 그대여, 다시 말하지만, 그대를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말한다. 그대여, 그대의 때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그대의 때가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그대가 모를만큼, 그렇게 소리없이 순식간에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이 그대의 때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가 그냥 보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더 좋은 때를 기다리며, 그 때를 그저 흘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대여, 그대가 어쩌면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그대의 때라는 것은 영영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그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고스톱판에서 단번에 역전승리를 거둘 그대의 때만을 기다리며, 끝없이 패배만을 삼키고 있는 그대에게는 너무나 아픈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대여, 때는 곧 운명이다. 그리고 운명을 우리가 뜻대로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오히려 이것이 그대가 뜻대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대는 이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그대의 모든 좌절과 실패는 결코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언제였든 간에, 필연적으로 엄습하는 패배의 예감 속에서도 늘 성실했던 그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라. 그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패배하고야 말았던 그대의 모습은, 그래서 결코 잘못된 존재의 모습이 아니며, 결코 잘못한 존재의 모습이 아니다.

운명은 그대가 잘하면 승리를 주고, 그대가 못하면 패배를 주는 조건부의 것이 아니다. 그대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대여, 운명 앞에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대가 못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대는 못난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대는 그대의 때가 오기만을 바랐다. 곧, 그대는 운명이 그대의 편이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운명은 그대의 편이기를 거절했다. 그리고 그대는 거절당한 자신이 대체 어떤 것을 잘못했는지 스스로를 자책하며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그대의 연애사와도 같다. 그대가 사랑했던 이가 그대를 거절한 까닭에, 그대는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못난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서 찾아낸 문제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검토하고, 반성하며,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가 사랑하는 이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전에 그대가 그이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대는 분명히 그대의 운명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가 사랑했던 그것으로부터 거절당한 이유는, 모든 연애사와 같이 분명하다. 그대는 그것을 사랑했지만,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현은 소통이며, 소통은 친교다. 그대는 그것과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멀찍이서만 지켜보면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그것이 먼저 그대에게 다가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좌절했던 것이고, 또는 그 기다림 속에 난 열병에 취해 그저 무작정 돌격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 고백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좌절했던 것이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곧, 아직 사랑의 친밀함으로 표현되지 못한 그대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그대가 거절당한 바로 그 이유다. 때문에 그대가 무엇인가를 잘못했던 것이 아니다. 그대는 오히려 아직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대의 사랑을 아직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그대가 사랑하는 그것과 아직 친해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대여, 운명은 무조건적이다. 운명은 그대가 못해서 거절한 것이 아니다. 운명은 자신과 서로 친밀하게 사랑하고 있지 않은 그 누구라도 무조건적으로 거절한다. 그렇게 운명은 그 누구라도 거절하면서, 자신과 서로 사랑할 그대만을 무조건적으로 기다린다. 그대의 운명은 그대만을 위한 신랑이며, 그대만을 위한 신부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는 제발 운명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대 자신이 바로 운명의 신부이며, 또 운명의 신랑이라는 그 사실을 부디 알려주어야 한다. 그대가 그대의 운명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를 가장 큰 친밀감으로 전해주어야 한다.

그 고백의 방법론은 이러하다, 그대여. 때는 시간이다. 시간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공간은 자리다. 곧, 시간이 피어나는 들판이고, 무대며, 장이다. 그대의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그 들판에서, 곧 그대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그 무대에서, 그리고 그대가 승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그 장에서, 그대는 그 들판을, 그 무대를, 그 장을 지키는 자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 들판이, 그 무대가, 그 장이, 무너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게 하는 자여야 한다.

그대가 사랑하는 이를 놓친 그 들판에서도 다른 연인들이 키스를 나눌 수 있도록 그 들판을 지키고, 그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아닌 그 무대에서도 다른 배우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그 무대를 지키며, 그대가 불패의 승자가 아닌 그 장에서도 다른 불우한 이가 역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그 장을 지켜야 한다. 이 모든 때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그대는 지키는 자여야 한다.

그대의 타고난 성실성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그대의 성실성은 그대의 때를 기다리는 일에 쓰여야 했던 것이 아니다. 그대의 성실성은 그 모든 때가 온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자리를 지키는 일에 쓰여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대가 놓친 그 모든 것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바로 그 성실성이다. 그대여, 때문에 이처럼 자리를 지켜내는 이 성실성의 표현이야말로 곧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의 직접적인 고백이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시인은 그러한 그대를 위해 노래한다. “아무도 없는 땅을 홀로 일구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그대여, 때는 기회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의 기회가 아니다. 그대를 떠난 모든 것이, 그대를 다시 만날 기회다. 그대가 남몰래 사랑했던 꽃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전하지 못한 채, 그저 그 꽃이 시들어가는 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대여.

그러한 그대가 성실하게 대지를 지키고 있다. 꽃이 피고 지는 무대인 그 대지를 한결같이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이 한결같은 그대에게, 어느 봄날, 꽃씨가 날아온다. 자신이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이 대지를 지켜준 그대에게 방긋 웃으며 날아온다. 그렇게 그대를 다시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그 감사함의 고백으로, 꽃향기가 가득 날려 퍼진다.

어느덧 그 꽃향기를 따라온 사람들이 그대를 알아본다. 한결같이 그 대지를 지켜온 이를 알아본다. 한결같이 꽃과 다정하게 사랑하고 있는 이를 알아본다. 그리고는 입을 모아 이와 같이 말한다. “봄이 왔노라. 사랑의 때가 이제 찾아 왔노라.”

그대여, 그대의 때는 어쩌면 영영 못봄이겠지만, 사랑의 때는 언제나 영원의 봄이다. 그대가 그 영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까닭에, 영원의 꽃씨는 늘 그대에게로 한결같이 날아온다. 한결같다. 참 고운 결이다. 꽃잎도, 그 꽃잎을 어루만지는 그대의 손길도, 그리고 그대가 다정하게 사랑해갈 새로운 날들의 시작도.

[불교신문3614호/2020년9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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