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깊은 사유로 풀어낸 ‘암각화 명상록’
수행자의 깊은 사유로 풀어낸 ‘암각화 명상록’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9.14 09:59
  • 호수 3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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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의 숭고한 삶
기록한 ‘알타이 암각화’
영감을 시어로 담아내

“하늘, 땅 그리고 인간
일궈낸, 화엄만다라…”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일감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일감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문자가 없던 시대 고대인들은 바위와 동굴에 그림을 그렸다. 바로 암각화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지기 시작해 청동기시대에 가장 활발했다. 사슴, 물고기, 코끼리, 물소 등 동물과 사람, 기하하적 무늬가 대부분이며, 여기에는 안전한 사냥과 풍부한 먹을거리 등 축복과 안녕, 영원한 행복에 대한 기원과 주술의 내용이 담겨 있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은 2005년 수묵화가이자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과의 인연으로 고령 장기리 암각화를 본 뒤 마음에 늘 암각화를 품고 있었다. 2016년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암각화 지역인 러시아 알타이, 몽골, 키르기스스탄 등을 탐방하며, 탁본과 기록을 꾸준히 남기기 시작했다. 스님은 얼어붙은 땅에 간신히 친 텐트에서 새우잠을 자고,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암각화를 찾아 다녔다.

그리고 “돌을 가져올 수 없으므로 뜻을 마음에 담아왔다”는 스님은 암각화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의 떨림과 감격을 절제된 언어로 깎고 다듬어 한 편의 시(詩)로 담아낸 암각화 명상록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를 최근 펴냈다. 더욱이 암각화와 시, 짧은 산문으로 어우러진 이 책에는 수몰 위기에 처한 우리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살리기 위한 스님의 간곡한 바람도 담겨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2016년부터 체감 온도 영하 30도, 텐트를 날려버릴 만큼 매서운 바람, 숨 쉬기가 곤란한 3000미터의 고산 등 극한의 자연환경을 뚫고 다닌 일감스님은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암각화에 대한 이해만큼은 명확하고 넓었다. 김호석 화백은 “스님은 학위만 없을 뿐 박사급 수준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면서 “스님에겐 어떤 선입견도 없이 암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그 떨림을 감지하는 특별한 감(感)이 있다”고 평했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이 암각화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의 영감을 시의 언어로 담아낸 암각화 명상록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를 최근 펴냈다. 사진은 9월8일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암각화 탁본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일감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이 암각화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의 영감을 시의 언어로 담아낸 암각화 명상록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를 최근 펴냈다. 사진은 9월8일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암각화 탁본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일감스님.

일감스님은 깊은 어둠을 머리에 이고 홀로 기도하는 샤먼의 모습,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 태양신에게 북을 두드리며 제를 올리는 모습 등 암각화에서 숭고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인들의 염원을 읽었다. 더 나아지고, 좋아지고, 높은 곳으로 가려는 ‘향상(向上一路)의 마음’이 바로 암각화에 깃든 메시지다.

스님은 “암각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일궈낸, 화엄만다라”라며 “암각화를 보는 것은 맑고 오래된 거울을 보는 것과 같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깨어나게 해 사람이 본래 지닌, 선량한 성품을 알게 한다”고 의미를 전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암각화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의 영감을 시의 언어로 낚았다. 여러 개의 바퀴 문양이 새겨진 암각화를 태양신으로 묘사하며 “빛이 필요한 곳/ 지혜가 필요한 곳에// 빠짐없이 비추려고/ 땅으로 내려오셨네”라고 썼다. 또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암각화는 “제사, 기도, 소원 성취/ 그런 말은 다 잊어버렸고/ 춤을 출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神)이 태어난다”고 표현하는 등 오래 전 그날의 일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스님은 “암각화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고 그저 스스로 존재할 뿐이지만 아무런 말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그 부분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면서 “암각화에 대한 이런저런 기초 지식이야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을 내려놓고, 깊은 내면에서 ‘아, 이것이구나!’하고 깨달음이 있을 때까지 마음을 비우고 그저 암각화를 한참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번쩍,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감스님은 9월15일 오후3시40분 개막식을 시작으로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탁본전을 개최한다. 전시회에서는 일감스님이 직접 떠온 알타이 암각화 및 반구대 암각화 탁본 7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지상 1층 ‘하늘’과 지하 1층 ‘땅’으로 구성됐다. 하늘의 장에서는 ‘태양신’과 ‘바람신’, ‘하늘마차’, ‘기도하는 사람들’ 등 고대인들이 하늘과 신을 묘사한 작품을 전시한다. 땅의 장은 인간이 발붙이고 사는 대지이자 생명을 묘사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개막식 및 전시 관람은 코로나19 감염증을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방역과 소독, 개인 위생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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