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16> 한가위와 보름탑돌이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16> 한가위와 보름탑돌이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9.13 12:01
  • 호수 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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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滿月 아래서 탑 돌며 저마다의 발원 기원

‘오월농부 팔월신선’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철 힘겨운 농사를 마무리하고, 오곡이 무르익는 음력 팔월이면 신선처럼 여유자적하다는 뜻이다. 팔월의 한가운데 있는 추석은 날씨도 선선한 데다 수확의 기쁨과 풍요로움이 함께하니,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바랐던 으뜸가는 명절이다. 이날은 만월(滿月) 아래서 탑돌이를 하기에 좋은 날이다. 탑돌이는 수행의식인 동시에, 저마다의 발원을 담아 설행되어온 민속적 특성을 지녔다. 이에 추석을 앞두고, 보름탑돌이의 의미와 전통을 살펴본다. 
 

평창 월정사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을 도는 ‘월정사 탑돌이’ 모습.
평창 월정사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을 도는 ‘월정사 탑돌이’ 모습.

가배, 한가위, 추석

‘추석(秋夕)’을 말 그대로 풀면 ‘가을저녁’을 뜻한다. 가을(秋)은 벼(禾)가 익는(火) 시절이란 뜻이고, 저녁을 강조한 것은 달이 떴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추석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수확의 명절이자 달의 명절임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추석 대신 ‘중추(中秋)’라는 말을 주로 쓰고, 추석은 한국에서만 쓰는 한자이다. 

‘秋夕’의 유래에도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신라 중엽 이후 중국에서 팔월보름을 뜻하는 말로 쓰던 ‘중추(中秋)’와 ‘월석(月夕)’에서 한 자씩 따서 쓰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사기집해>에 “천자는 봄이면 태양에 제사 지내고 가을에는 달에 제사 지낸다(天子 春朝日 秋夕月)”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라고도 한다.

팔월보름은 고대신라의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리왕 9년(32년)에 길쌈장려책으로 육부(六部)에 속한 여인들을 두 패로 나누어 길쌈대회를 열었다. 한 달간 계속된 이 대회의 마지막 날이 팔월보름이었고, 승패를 가려 진 쪽에서 음식을 장만해 하루를 즐겁게 보냈는데 이를 ‘(가배)’라 불렀다. (가운데)+(날)를 합한 이 말은,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그 뒤 ‘가위’로 음운변화가 일어났고, 크다는 뜻의 접두어가 붙어 ‘한가위’가 되었으며, 한편에서는 가배(嘉俳)라는 이두식 한자어도 생겨났다.

일본의 원인(圓仁)스님이 9세기에 당나라를 여행하면서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보면, 팔월보름이 오직 신라에만 있는 명절이라 하였다. 당시 당나라에 있는 신라사찰 적산원(赤山院)에서, 떡과 음식을 마련해 불교식으로 명절을 지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절에서 수제비와 떡을 장만하고 팔월보름 명절을 지냈다. 다른 나라에는 이 명절이 없고 유독 신라에만 있는 명절이다. … 이날 온갖 음식을 마련해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즐기며 밤낮으로 사흘을 쉰다. 이곳 적산원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늘 이렇게 명절을 치렀다.” 

중국의 경우 당나라 이전에는 중추절에 대한 기록이 없고, 송나라 때까지 중추절보다 구월 구일의 중양절을 더 큰 명절로 여기고 있었다. 서기32년에 성행했던 고대신라의 가배풍습과, 800년대에 이르러 ‘팔월보름이 신라만의 명절’이라는 일본스님의 기록에서 한가위의 고유성과 역사성이 새롭게 새겨진다. 

탑돌이, 연등, 보름

신앙의 대상을 도는 것은 여러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보편적인 의식이다. 고대인도에서는 깨달은 자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우요삼잡(右繞三匝)의 예경의식이 있었다. 부처님 당시에도 그를 향한 우요삼잡이 행해졌고, 불멸후에는 유골을 모신 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탑돌이의식이 성행하였다. 고대인도의 불탑인 스투파에는 탑을 돌 수 있는 둘레 길을 마련해두고 바깥으로 난간을 둘러, 탑돌이 구역이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냈다. 

이처럼 탑돌이는 예경의 대상인 탑을 향한 종교의식이지만, 마당에서 많은 인원이 함께할 수 있는 개방성을 지녀 축제적 성격이 짙다. <삼국유사>에 복회(福會)라는 이름으로 신라 경주에서 성행한 탑돌이의 내용을 보면, 이른 시기부터 탑돌이는 신앙과 민속이 결합된 채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돌이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행하는 것이지만, 특히 해가 진 뒤에 불을 밝히고 행하는 탑돌이가 중요한 맥락으로 이어져왔다. 

당나라 의정(義淨)스님이 인도의 탑돌이에 대해, “서방에서는 탑에 절하거나 예경할 때면, 황혼 무렵에 대중들이 산문을 나서서 탑을 세 바퀴 돌고 향화를 갖추어 나란히 앉는다. 소리에 능한 이가 애아(哀雅)한 소리를 지으며 명철하고 웅장하고 낭랑하게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다”고 기록하였다. <삼국유사>의 복회 풍습 또한 밤늦게까지 이어진 점으로 보아 탑돌이의 종교적 특성은 밤과 짝을 이루어 부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몰 후의 탑돌이는 연등(燃燈)과도 깊이 관련되었음을 말해준다. 초파일 저녁에 제등행렬을 마친 신도들이 탑돌이로 회향하듯이, 저마다 등을 밝혀들고 탑을 도는 것은 종교축제로서 환희로움이 크다. 그 가운데서도 보름탑돌이는 인간의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면모를 지녔다. 경배대상으로서 ‘탑’과 ‘달’, 경배행위로서 ‘돌기’와 ‘연등’은 종교적 상징성의 핵심을 이룬다. 

또한 원을 그리며 도는 강강술래가 달을 모방함으로써 풍요를 비는 원리를 담고 있듯이, 탑을 도는 것 또한 만월과 관련이 깊다. 만월 아래서 탑을 도는 것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경배대상을 찬탄하는 몸짓이자, 보름달의 풍요와 생명력을 담은 지상의 리듬이라 할 만하다.

공동체 축제인 월정사 탑돌이

오대산 월정사에서는 매달 보름 전날에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탑돌이가 전승되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우리나라의 팔각석탑으로는 가장 크고 높을뿐더러, 미적으로도 으뜸이라는 평을 받는다.

특히 탑 앞에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탑을 향해 두 손 모아 기원하는 희견보살(喜見菩薩) 상이 자리하여, 탑돌이의 의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던 월정사 탑돌이가 1970년대부터 고증을 거쳐 재조명이 이루어짐에 따라, 근래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몇 해 전 추석 전날에 참관한 월정사 탑돌이는 뚜렷한 신앙공동체의식으로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탑 앞에 공양물을 차리고, 탑신에는 다섯 갈래의 오방 천을 연결해 오방을 활짝 열어두었다.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 탑돌이의 시작은 입장을 알리는 범종과 법고 소리이다. 스님들이 앞서고 등과 번을 든 신도들이 뒤따르며 탑 앞에 정렬하였다.

둘째마당은 ‘정화와 공양’이다. 법주스님이 향탕수를 오방에 뿌림으로써 도량과 동참대중을 정화하고, 삼귀의에 이어 육법공양을 올릴 때는 불자들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합장해 보살상을 재현하였다. 

셋째마당에서 ‘석가모니불 정근’과 함께 탑을 오른쪽으로 세 차례 돌고, 원 안에서는 작은 원을 그리며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바라춤을 추었다. 넷째마당에서는 ‘관세음보살 정근’과 함께 우요삼잡과 나비춤이 따랐다. 다섯째마당은 ‘탑돌이노래’로, 풍물패가 세마치장단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자 동참대중은 노래를 부르고, 탑돌이로 발흥된 환희로움으로 자유롭게 춤을 추며 탑을 돌았다. 마지막은 탑 앞에서 반야심경을 염송하고 합장반배를 올린 뒤 풍물패의 굿거리장단에 맞춰 회향하였다. 

이처럼 월정사 탑돌이는 범패와 작법, 노래와 풍물이 따르는 가운데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공동체의 소망을 기원하는 축제적 대동의례로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월례의식으로서 탑돌이뿐만 아니라 부처님오신날을 비롯해 지역행사와 명절에 탑돌이를 행하여, 마을과 함께하는 신앙공동체의식으로서 면모를 지녔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을 도는 ‘중앙탑 탑돌이’. Ⓒ충청북도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을 도는 ‘중앙탑 탑돌이’. Ⓒ충청북도

수행정진의 법주사 탑돌이

속리산 법주사에서는 또 다른 양상의 탑돌이가 음력 16일마다 이어진다. 법주사 팔상전(捌相殿)은 법당형식의 5층 목탑으로, 부처님오신날과 속리축전 때면 팔상전을 도는 탑돌이가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다. 이와 별개로 월례 탑돌이에 주목하는 것은, 철야기도를 하는 불자들이 보름 다음날 밤에 등을 밝히며 신행의식으로 탑돌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주사는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미륵대불이 야외에 모셔져 있다. 미륵대불의 기단부 안에는 미륵보살이 머무는 도솔천의 모습을 본 따 둥글게 만든 용화전(龍華殿)이 있는데, 매달 100여 명의 신도들이 이곳에 모여 ‘미륵전 철야기도’를 이어간다. 미륵대불 점안일인 16일을 미륵재일로 새기며 행하는 이날의 철야기도는, 33년 전부터 시작되어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400회를 넘어섰다. 

둥근 법당에 반원을 겹겹이 그리며 앉아 밤새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현실을 떠난 세계처럼 특별하다. 철야기도는 대개 저녁 7시에 입재하여 <미륵삼부경>을 독송하며 정근과 기도를 하다가 새벽3시 무렵 도량석과 함께 마친다. 탑돌이는 밤 12시 무렵 포행정진 시간에 이루어지는데, 저마다 등을 밝혀든 채 도량을 돌고 팔상전을 우요삼잡하는 것이다. 

법당기도를 잠시 멈추고, 경내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우뚝한 미륵대불을 우러르며 도량과 팔상전을 도는 포행정진은 이들에게 귀한 종교적 체험이 되고 있다. 철야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동참한 미륵회 회장 일심보살은 “각자 등을 들고 경내를 돌고나서 팔상전 탑돌이를 한다. 스님이 목탁을 치면서 앞에 가시고, 모두 ‘미륵존불’ 정근을 하며 탑을 돌면 신심이 절로 난다”고 하였다. 

보름 다음날, 하루가 교차하는 자정에 만월이 뜬 산사에서 철야기도를 하며 도는 탑돌이. 이는 신성한 시공간 속에 미륵정토를 체험케 하는 지극한 종교적 행위라 할 만하다. 아울러 법주사는 용화전 영역과 대웅보전 영역이 탑을 중심에 두고 직교하는 미륵계 사찰의 공간구조를 지니고 있어, 유형의 유산이 무형으로 구현되는 양상을 뚜렷이 표출하고 있다. 

월정사 탑돌이가 환희로운 공동체축제로서 면모를 지녔다면, 법주사 탑돌이는 번뇌를 없애는 수행정진의 탑돌이라 할 만하다. 우주 중심에 우뚝 선 탑을 향한 저마다의 기원을 품고, 전국 곳곳의 사찰에서 탑돌이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불교신문3613호/2020년9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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