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작년에 신도님들과 중국 구화산에 성지순례를 갔었다. 백세궁에 모셔진 무하스님 등신불전 앞에는 큰 향로가 있었는데 스님께 향공양을 올리면 영험이 있다하여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다들 무슨 소원이 그리 많은지 어렵게 차지한 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영험도량에 왔으니 그 동안 빌고 빌었던 모든 소원들을 한꺼번에 다 쏟아 내는 듯했다. 우리 신도님들도 겨우 빈자리를 찾아 향을 사르고 두 손을 모았다. 

“보살님들, 소원보다 서원을 하세요.” 누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우리 가이드였다. 하마터면 등신불 되신 무하스님께서 단에서 내려와 법문을 하시는가 할 뻔했다. 그동안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 비는 것을 봐 왔겠는가? 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모아 빌고 또 비는 소원들로 우리 인생은 끝이 없다. 비는 것이 끝나면 비로소 몸을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좀 됐다. 신도님들과 윤달 삼사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몇 시간 버스를 타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지루하니까 노래가 시작되었다. 한참 흥이 오를 쯤 마이크가 내게로 왔다. 나는 노래 듣는 것은 좋아해도 부르는 것은 젬병이다. 음치인데다 가사를 기억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을 사양하다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분위기 깨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럼 부르겠습니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끝까지 아는 노래라곤 법회 끝에 부르는 ‘사홍서원’ 뿐이었다. “에이~스님, 그게 무슨 노랩니까?” “아니, 사홍서원이 어때서요?” 그 날 이후 신도님들은 두 번 다시 노래를 시키지 않았고 나의 순례길은 좀 편해졌다. 

그렇다. 소원이면 어떻고 서원이면 어떠랴. 새벽녘 장독대에 정한수 떠놓고 집 떠난 아들의 건강과 성불을 빌던 어머니의 소원은 숭고하다. 그리고 버스 안 노랫가락에서라도 중생을 다 건지겠다며 다짐하는 아들의 서원도 아름답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그 간절함이 가득 차오르면 마침내 “해주세요.”에서 “하겠습니다.”로 바뀌게 된다. 소원이 지극하면 서원이 된다. 

[불교신문3613호/2020년9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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