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16> 조계산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
[한국 산사 불화기행] <16> 조계산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
  • 신광희 중앙승가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20.09.10 10:06
  • 호수 3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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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법문과 의식으로 무주고혼을 달래다

고혼, 지옥중생 의식 통해 천도
불보살 영접 받아 극락왕생하는
정토왕생 사상을 토대로 조성

한 화면에 육도중생 천도의식
구원 위해 강림한 불보살 등
함께 그려진 파격적인 구성

18세기 대화사 의겸스님 주관
일반 민중의 애환과 염원 반영
당시 사회상 보여주는 기록물

감로도(甘露圖)는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는 불화이다.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무주고혼(無主孤魂)에게 ‘감로’와도 같은 법문과 의식을 베풀어 천도(薦度)하는데 사용되는 불화인 것이다. 그 배경에는 어머니를 향한 목련존자(目連尊者)의 효심이 담겨있으며,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가엾은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대승적 실천 의지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감로도는, 불화들이 대부분 존상 중심인 것과 달리, 불보살과 더불어 천도의식을 위한 재단(齋壇), 먹을 것을 간청하는 아귀(餓鬼), 욕계(欲界)의 다양한 군상이 표현된 이색적 구성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우란분경(盂蘭盆經)> <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救拔焔口餓鬼陀羅尼經)>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궤의경(瑜伽集要救阿難陀羅尼焔口軌儀經)>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 조선 1736년, 비단에 채색, 200.0×251.5cm.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 조선 1736년, 비단에 채색, 200.0×251.5cm.

‘감로도’라는 명칭은 아귀도(餓鬼道)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중생에게 감로미(甘露味)를 베풀어 극락에 왕생케 한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감로왕도, 감로회도, 수륙회도 등으로도 불린다. 감로왕도(甘露王圖)는 화면 상부의 칠여래(七如來, 혹은 오(五)여래) 중 주존인 ‘감로왕여래’를 대표화해 칭한 명칭이다.

감로회도(甘露會圖)는 불교 천도 의례를 중국에서 ‘감로재’라고 불렀고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도 ‘감로회’라고 지칭했음에 근거를 둔 명칭이다. 또한, 수륙회도(水陸會圖)는 화면 중앙에 천도를 위한 수륙재 의식장면이 부각, 표현되어 있음에 의미를 둔 명칭이다. 

한국의 감로도는 조선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16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까지 합하면 총 70여 점이 전해진다. 그중에서 18세기 감로도의 수작이자 대화사(大畵師) 의겸(義謙)스님이 그린 선암사(仙巖寺) 서부도암(西浮屠庵) 감로도를 중심으로 감로도의 형식과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더불어 이 감로도의 특징과 중요성도 짚어볼 것이다.

선암사는 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이곳에는 현재 두 점의 감로도가 전해진다. 하나는 1736년 7월에 제작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화기는 없지만 18세기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이 중에서 1736년 감로도는 화기에 ‘順天仙岩寺西浮屠下壇圖’라고 기록되어 있어 선암사 서쪽 부도군에 위치한 암자의 ‘하단’불화로 봉안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화기의 내용을 근거로, ‘서부도암 감로도’ 혹은 ‘서부도전 감로도’라고 불린다. 일설에는 서부도암이 바로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년)스님이 머물렀던 대각암(大覺庵)을 의미한다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불화는 위계에 따라 상단, 중단, 하단으로 나누곤 하는데, 하단은 ‘영단(靈壇)’으로 감로도를 뜻한다. 

서부도암 감로도의 화면 크기는 세로 200.0cm, 가로 251.5cm이다. 비단 바탕에 붉은색과 녹청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군청색, 황토색 및 백색을 곁들여 채색했다. 화면 하단부에 일부 박락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손상이 거의 없고 채색도 온전하다. 화면은 크게 상·중·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칠여래.
칠여래.

화면 상부는 칠여래(七如來, 다보여래, 보승여래, 묘색신여래, 광박신여래, 이포외여래, 감로왕여래, 아미타여래)가 고혼을 구제하기 위해 강림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좌측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번(幡)을 들고 극락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모습, 칠여래의 우측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구름을 타고 하강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화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성대하게 차려진 시식단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목이 가늘어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아귀(餓鬼)가 자리한다. 시식단의 옆에는 작법승(作法僧)들이 시식의례(施食儀禮)를 행하고 있다. 아귀는 목련존자가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빠져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함에 밥그릇에 밥을 담아 공양했더니 음식이 모두 불꽃으로 변했다는 우란분경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시식단과 아귀.
시식단과 아귀.

즉, 아귀는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는 육도(六道)의 한 생이기도 하고, 배고픔의 고통에 허덕이는 돌아가신 조상을 뜻하기도 한다. 구원해야 할 죽은 고혼의 총칭이자 육도 중생의 고통을 집약한 존재이며 천도재를 통해 구제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이 그림에서 아귀는 ‘한 쌍’으로 그려져 있다. 하나는 합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발우를 들고 있다. 감로도를 보면, 아귀가 단독으로 표현된 사례도 있고, 선암사본의 경우처럼 한 쌍으로 그려진 사례들도 있다. 그렇다면, 아귀가 한 쌍으로 그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잠시, 안동 봉정사 감로도(1765)를 주목하고자 한다.

봉정사본을 보면, 발우를 든 아귀를 초면귀왕(焦面鬼王), 합장한 아귀를 비증보살(悲增菩薩)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하나는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아귀, 다른 하나는 아귀로 몸을 바꾸어 나타나 ‘육도 중생을 구제하기로 서원을 세운 보살’로 보았던 것 같다.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의 아귀 한 쌍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식단에는 오곡백과와 백미가 가득 차려져 있고 그 중간에는 촛대가 놓여있으며 뒤로는 의식용 지화(紙花)와 지전(紙錢)이 놓여있다. 성대하게 차려진 시식단 옆으로는 의식을 행하는 스님들이 보인다. 중앙에는 의자에 앉아 금강령을 쥐고 의식을 주도하는 큰스님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바라춤을 추거나 북을 두드리는 스님들, 염불하는 스님들, 법라(法螺)를 부는 스님 등도 확인된다. 의식단 앞에는 상주들이 합장을 한 채 가족 중 망자의 영가 천도를 빌고 있다.

하부(下部)는 감로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육도(六道)의 세계, 즉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인 등이 묘사되고 있다. 특히 고혼들이 죽음에 처하게 된 환난(患難)과 전쟁, 그리고 놀이와 생활상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의식을 행하는 스님들.
의식을 행하는 스님들.

예를 들어, 죄를 짓고 끌려가는 이들, 들불에 갇혀 괴로워하는 이들, 강물에 빠진 사람,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말을 타고 달리며 활 혹은 창을 가지고 싸우는 군사들, 소가 끄는 수레에 짐을 싣고 어디론가 향해 가는 사람들, 쓰개치마를 뒤집어쓰고 오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는 여인들, 연희 놀이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렇듯 감로도에는 화면 상부의 불보살, 가운데 부분의 아귀 및 의식단과 작법승중, 화면 하부의 육도와 욕계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이 세 부분을 연결해 정리해보자면, 감로도는 여러 가지 형태로 죽은 고혼과 지옥 중생이 천도의식을 통해 구원되고 불보살의 영접을 받아 극락에 왕생한다는 정토왕생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는 18세기 대화사 의겸스님이 주관했으며, 스님과 화연(畵緣)이 있는 즉심(卽心), 일민(曰旻), 민희(敏熙)스님 등 9명이 동참해서 그렸다. 의겸스님은 이 그림 이전에도 여수 흥국사 감로도(1723)와 고성 운흥사 감로도(1730)를 그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선암사 서부도암본을 그리면서 구성과 구도, 채색 등 모든 면에서 좀 더 완성도를 높였다. 선암사 서부도암본은 이후에 원광대학교 소장 감로도(1750), 곡성 봉서암(鳳瑞庵) 감로도(1759), 신흥사 감로도(1768) 등에 영향을 끼치며 18세기 감로도의 전형 중 하나로 자리한다.

감로도는 한 화면에 육도중생, 천도의식, 구원을 위해 강림한 불보살이 함께 그려진 파격적 구성의 불화이다. 일반 민중의 애환과 염원이 반영된 불화이며 동시에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시각적 기록물이기도 하다.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조선시대 감로도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현재 보물 제1553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종 풍속 장면.
각종 풍속 장면.

[불교신문3612호/2020년9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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