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만 점을 그리는 것, 그게 내 원력이오”
“6000만 점을 그리는 것, 그게 내 원력이오”
  • 장영섭 기자
  • 승인 2020.09.07 11:04
  • 호수 3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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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禪畵)의 거장 수안스님

본래 마음자리 꾸밈없이
표현해온 41년…
“선화는 수행이면서 포교”

‘코로나19 치유’ 부적
30만장 만들어 보시
“자비의 기도로 극복합시다”

20세기에 중광이 있었다면 지금은 수안이 있다. 수안(殊眼)스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화가다. 불교문화계에선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법명이다. 프랑스문화원의 초청으로 예술의 도시 파리를 비롯해 독일 러시아 모로코에서도 전시회를 여러 번 열었다. 21세기도 덧없이 흘러간다. 스님의 황혼을 보고 싶어 831일 영축총림 통도사 문수원을 찾았다.
 

통도사 문수원 수안미술관에는 수안스님의 대표작들이 보관돼 있다.
통도사 문수원 수안미술관에는 수안스님의 대표작들이 보관돼 있다.

주름살은 늘지만 변한 건 없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1940년생) 매일같이 수십 점의 선화(禪畵)를 그려내는 일상이다. 종이에 붓을 쓱싹하면 금세 달마도 한 점()이 완성된다.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그림이지만 그 선()은 매우 굵고 깊다.

빨리 그린다고 대충 그리는 그림은 아니다. ()은 본래 마음자리이고 선화는 본래 마음자리를 단박에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찰나에 떠오른 마음의 살아있는 결을 화폭에 담는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은 무제(無題)이기도 하다. 성이 안 찬다거나 남 보기 부끄럽다고 개칠하는 순간, ‘죽은그림이 된다.

스님은 선화는 직화(直畵)”라며 자기 만큼을 붓끝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소리를 하지 못하면 스님이 아니란다. 반면 그림 자체가 수안스님의 명함이다. 설명이나 낙관 없이 작품만 봐도, 스님이 그린 것인지 모두가 대번에 알 수 있다. 당신의 개성은 완성되어 있고 그래서 대가다.

돈 벌자거나 이름 남기자고 그린 그림도 아니다. 본디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묘관음사 등으로 옮겨 다니며 화두를 들던 수좌다. 은사가 유명한 불화가이긴 했지만(석정스님), 그림도 독학으로 배웠다. “출가자라면 무조건 포교를 해야 하고포교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포트폴리오의 출발은 1979년이다. 전북 이리(현재의 익산) 폭발사고 이재민을 도우려고 선묵전을 열어 기금을 모았다. 그림의 필치가 한결 같듯이, 이후의 개인전도 목적은 다 그랬다. 그리고 또 그려서 지체장애인을 돕고 양로원 불사를 돕고 사회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을 세웠다. 처음 붓을 들던 당시 남북한의 인구는 합쳐서 6000만 명이었다. “한반도의 우리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림을 선물하자. 그 마음으로 시작했지.” 압도적인 다작(多作)의 이유다.

아무나 그리는 그림이어서도 안 된다. 오락이나 밥벌이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수행으로서의 그림이다. 어린이나 웃는 얼굴을 자주 그린다. 어린이처럼 순진무구하게 웃는 얼굴처럼 행복하게 살려고 그리고, 남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하기 위해 그린다. 문수원에는 대표작을 모아놓은 수안미술관이 있다. 중앙에 걸린 그림이 가장 인상 깊다. 호랑이와 두꺼비와 뱀과 거북이가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어서 난리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지는 화엄세계의 구현이다.

여용득수(如龍得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용이 물을 만나면, 자기만 편할 뿐이야. 진짜 수행자는 여용득주()’의 경지를 추구해야 하지. 여의주를 물어야 한다는 거야. 그 여의주로 신통과 조화를 부려 일체중생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그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오.”

스님은 코로나19’ 때문에 더 바빠졌다. 걱정이 많아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붉은색의 경명주사로 호랑이를 그렸다. 그 그림을 30만 장 찍어 주변에 마구마구나눠준다. ‘보호를 상징하는 호랑이 옆에는 척사현정(斥邪顯正, 삿됨을 배척하고 올바름을 드러낸다)’이라고 적었다. 정확히 말하면 퇴치가 아니라 극복이고 치유다.

무작정 쳐부수겠다는 마음으로 바이러스를 대하면 안 돼. 자비의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지. 작은 세포 하나하나에도 불성이 있는 법이오. 실수한 아이를 보듬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다가가야지. 아무쪼록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해서, 코로나19를 해탈시킵시다.” 누구나 두려워서 피하거나 죽이려고만 하는데, 함부로 헤아리기 어려운 경지다. 부적 속의 붉은 호랑이는 최대한 무서운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자세히 보면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양산=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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