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 득음 ‘아!’ 최고 단계
누구나 맛보고 싶은 경지


기도가 몸에 배인 스님의 일상 생활이
자연스럽게 보일 때 그 모습이 아닐까

선행스님
선행스님

이치를 깊이 생각하여 깨달아 지는 것이 터득(攄得)이다. 어쩌면 어느 한 경지나 경계에 다다른 일이리라. 밖에서는 한 분야에서 최고의 단계인 9단을 넘어서면 입신(入神)이라 하고, 음악에 있어서도 그 경계를 뛰어넘으면 득음(得音)의 경지라 하듯이, 수행에 있어 정진력이 더해져 어느 순간 득력(得力) 곧 법을 터득한 정진력을 갖추는 일을 그렇게 이른다.

강원시절. 3년차 경반 때. <능엄경> <금강경> <기신론>을 공부하고 열흘 여 방학을 맞아 아늑한 암자에서 기도를 하며, <원각경> 과목만을 남겨둔 일정이었기에 경전을 보는 실제 역량이 어느 정도일까 스스로 점검하듯 미리 <원각경>을 대했다. 

“아!” 스스로 감탄하고 무릎을 치며 한 말이었다. 2년여 목이 잠길 정도로 간경을 하고 3년 차에 비로소 한문 경전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인연된 <원각경>은 2006년 BBS 불교방송에서 4개월여 방송하면서 규봉스님의 <원각경 대소>를 1500매 원고로 번역했다. 이어 지난해 2개월여 한 번 더 방송을 하고, 요즘엔 <통도> 회보에 요약해서 연재를 하고 있다. 또 한 번 “아!”할 때는 의미를 꿰뚫는 터득의 순간을 기대해 본다.

일찍이 1000일 기도를 세 번이나 회향하고 지금도 여전히 기도 일념인 스님과 한 도량에서 지낸다. 어느 날 기도한 소감을 질문하자 그저 소이부답(笑而不答) 곧 빙그레 웃을 뿐 답을 듣지 못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겠다. 평소 소박하고 천진한 모습 그 자체로 말해 주는 듯하다.

수행자라면 출가해서 한 동안은 법(法)과 도(道)에 대한 이상에 치우치다가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현실 곧 일상의 삶에서 그 무엇이 와 닿게 되는 것을 체감(體感)하게 되는데, 기도가 몸에 배인 스님은 일상의 생활이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게 보이는가 보다. 득력한 모습이지 싶다.

게송을 참 많이 암송하는 도반 스님이다. 한때 <능엄경>을 수없이 간경하며 암송한 뒤로는, 접하는 게송마다 속속 와 닿아 자연스레 외우게 되었단다. 평소 철저한 계율이 몸에 배였기에 그 또한 바탕이 되었으리라. 이번 하안거는 선원에서 결제하고 있는데, 해제해서는 어떻게 체득(體得)한 모습일지 자못 기대가 된다.

평소 기타와 서예를 취미로 하고 있다. 기타의 경우 한동안 지도 받을 때는 어찌 그리도 음의 마디가 연결이 되지 않던지, 언제쯤 매끄럽게 연주가 될까 의심을 하며 중단하고픈 생각이 들곤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만 하는 여건이기에 간간이 연습하던 어느 날 음의 마디가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하!”하게 되었다.

요즘은 다소 서툴긴 해도 간단한 악보를 그런대로 즐겨가며 연주할 수 있어 흐뭇하다. 서예만 해도 그렇다. 여러 체본(體本)을 습득했기에 일정한 체라 할 수 없다. 어쩌다 예약된 글일 때는 집자(集子)해서 조합하다 보니 그러한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 있다. 터득이라고 하기엔 미흡하지만, 어찌됐든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바람이 있다. 문리(文理)·물리(物理)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반복하여 경전을 대하면서 한문 경전이 시원스레 터득되기를 발원한다. 전에 열심히 공부하던 스님은 어둠 속에서 안광(眼光) 곧 눈에서 빛이 나와 경전을 독송했다고 하는데, 다시 한 번 명심하게 된다.

힘든 시기다. 절실한 마음으로 그동안 익혀온 취미나 일들을 돌이켜 보고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 극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하는 바이다. 

[불교신문3611호/2020년9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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