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4년 경자년 하안거가 9월2일 해제(解制)됐다. 전국선원수좌회가 전국 선원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경자년 하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전국 총림 7곳, 비구선원 57곳, 비구니선원 30곳 등 모두 94개 선원에서 1894명의 대중이 정진했다. 

좌복에 앉지 않더라도 모든 일상 매순간 화두를 놓지 않고 탐욕과 분심을 버리고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 본다면 머문 그 곳이 선원이며 그 순간이 결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함께 정진하며 해마다 두 번씩 모이고 흩어지는 수고를 1000년 넘도록 놓지 않는 이유는 대중이 곧 스승이기 때문이다.

승가는 독립된 개인이 함께 모여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부담하는 수행공동체며 그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되는 곳이 바로 선원이다. 승랍이나 세속 나이, 종단 직위 같은 조건을 일체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하나 이상의 소임을 부여하고 공부 깊이 위주로 좌차(座次)를 따지며, 대방(大房)이라 부르는 한 공간에서 똑같이 정진하고 쉬는, 짧게는 1000년, 길게는 2600년 넘게 내려오는 수행을 그대로 지키는 완벽한 무소유 수행공동체가 선원이다. 

이 생활은 그러나 결코 녹록치 않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 생활을 해야 하루가 편안한 유형도 있다. 누군가는 딱 맞는 방안 온도가 다른 사람에게는 낮거나 높을 수 있다. 성향과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사람 10여 명이 한 방에서 90일간 무탈하게 정진하려면 자기를 버리는 길 밖에 없다.

그래서 대중이 바로 경책하는 죽비며 바른 길로 이끄는 스승이다. 1894명의 결제 대중은 그 어려운 과정을 보냈다. 우리 종단과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대들보며 기둥이다. 결제 대중을 환영하고 존경하여 공양 올리는 이유다. 

선원에서 자신과 싸우며 화두삼매에 빠져 있는 동안 세속은 코로나19, 유례없는 긴 장마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90일이 지났지만 전염병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경제사정도 나아지지 않았다. 불행히도 1, 2차 코로나 유행이 모두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어 종교를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이 그 어느 때 보다 차갑고 따갑다. 불교는 특정 종교와 달리 코로나 예방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서고 어려운 국민들을 돕는데도 나서 호평 받고 있지만 국민적 신뢰와 영향력은 종교를 떠나 전부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불교를 비롯해 종교가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존속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 선(禪)수행이다. 코로나 이후 종교는 집회 위주의 구복(救福)에서 홀로 혹은 소규모 명상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화두선으로 본성을 찾는 불교는 사람과 접촉을 줄여야 하는 코로나19 이후 사회에 가장 적합한 종교다.

이를 이끌 주인공이 결제철마다 화두 정진하는 수좌들이다. “화두와 씨름하며 견성하겠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진제 종정예하 해제법문처럼 수좌 스님들이 결제 동안 깨달은 크고 바른 가르침이 널리 울려 퍼져 코로나와 장마로 지친 국민들에게 힘이 되고 등불이 되기를 기대한다.

[불교신문3611호/2020년9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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