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2월11일 ‘신춘탐방’
“배우처럼 집착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정법 흥하면 나라가 발전하고
사견외도 성하면 나라 병들어
세상만사는 사람에 달려 있어
인재양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

착한 일 하되 相내면 죄만 늘고
지혜 있어도 ‘막행’ 하면 마구니
구도자는 도와 몸 바꾸려는
결연한 의지와 실천력 필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평생 수좌로 수행한 혜암스님은 하루 한 끼의 공양(一日一食)과 자리에 눕지 않고 꼿꼿이 앉아서 밤새워 정진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평생수행지침으로 삼아 이를 몸소 실천했다. 불교신문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평생 수좌로 수행한 혜암스님은 하루 한 끼의 공양(一日一食)과 자리에 눕지 않고 꼿꼿이 앉아서 밤새워 정진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평생수행지침으로 삼아 이를 몸소 실천했다. ⓒ불교신문

요즘도 부다가야로부터 날아온 깨달음의 소식을 듣고 있음인지 가야산은 적멸(寂滅)의 즐거움으로 막바지 겨울눈을 녹이며 봄맞이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가야산 기슭에 아늑히 자리 잡은 해인선원에서 42명의 납자들은 오늘도 이웃을 위한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하며 용맹정진을 거듭하고 있다. 종정 스님을 보필하여 해인선원에서 납자들의 공부를 점검하기에 여념 없는 해인총림 부방장 혜암스님을 찾아 옥음(玉音)을 청했다. 

- 어제(1월29일)는 예부터 면면히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민족의 축일(祝日)입니다. 정묘(丁卯)년 첫 새벽을 맞아 이 나라 종교지도자의 한 분으로서 먼저 종도와 국민들에게 인사말씀 해주십시오. 

“새해에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온누리에 비추기를 빕니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다 같이 도심(道心)을 발하여 자력갱생의 대자유 해탈(解脫)의 길로 갈수 있게 되기를 삼보전에 기원합니다. 산승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가 새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며 재미있게 노는데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분에 따라서 수도인들은 작년에 못했던 공부를 결정코 성취할 것이오. 국민들은 작년에 못다 한 일들을 기필코 설계하고 실천하는 뜻 깊은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 땅을 지상의 극락으로 가꾸느냐, 지옥으로 만드느냐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달려 있음을 인식해주시기 바랍니다. 

한마디 이르겠습니다. 

‘해마다 해마다 꽃의 모양은 같으나/ 해마다 해마다 사람의 모양은 같지 않더라/ 사람들은 어느 곳으로 가느뇨/ 복사꽃은 예와 같이 봄바람에 피누나(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人面不知何處法 桃花依舊笑春風)’.” 

- 요즘처럼 다종교사회에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종교인들 서로가 남 헐뜯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종교인의 바람직한 자세라면? 

“종교는 여러 가지이지만 진리는 하나라 생각합니다. 종교의 대의는 ‘절대적인 자기완성’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산승은 ‘심외무불(心外無佛) 심외무법(心外無法)’이라고 설파한 고인(古人)의 가르침에 공감합니다. 따라서 종교인의 근본은 마음을 깨닫는 것이고 종교인의 할 일은 남을 위해 사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 견성오도는 수행인이 체득해야 할 명제입니다. 스님께서는 30여년 장좌불와로 정진해온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얻으신 경험적 지혜로써 수행자들에게 견성의 방법을 제시해 주십시오. (혜암스님은 26세 때 해인사에서 인곡스님을 은사, 효봉스님을 계사로 출가하여 당시 효봉스님으로부터 무자 화두를 간택 받아 40여 년 동안 거의 눕지 않고 용맹정진해왔다) 

“견성에 얽힌 녀석이 또 하나 왔구나. 견성을 굳이 말하자면 다만 알 수 없고 얻을 바 없는 것이 바로 견성이니라(但知不會 是卽見性). 요즘 간혹 납자들이 경계가 일어나는 것을 오도견성으로 오해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다만 경계일 뿐 견성은 아니지요. 산승의 경험담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처음에 무자화두를 드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하늘을 봐도 하늘이 아니고 땅을 봐도 땅이 아니며 낮인지 밤인지를 모르겠고 밥을 먹어도 아침인지 저녁인지를 모르고 길을 가면서 목적지를 지나쳐버리기 예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오매일여(寤寐一如)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지금도 병신을 못 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마디 이르지요. 

‘눈으로 보는 상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로 듣는 상이 없으니 시비가 끊어졌네/ 시비와 분별을 다 놓아버리매/ 가야산은 고요하고 밤 달은 밝더라(目無所見無分別 耳聽無聲絶是非 分別是非都放下 伽倻山寂夜月明)’ 

요약해 말하자면 도(道)라는 것은 무심(無心)을 배우는 것입니다. 말로 할 수 없이 무심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심 자리가 ‘대도’라고나 할까요.” 

- 요즘 참선에 대한 관심들이 계속 높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선을 그저 명상법 정도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전통적인 참선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참선한다고 말할 때 대개 묵조선(黙照禪)을 의미하더군요. 우리나라 전통 참선법에 비추어 그것을 말한다면 사구(死句)에 해당 될 겁니다. 활구(活句)는 곧 간화선(看話禪)인데 간화선에서는 의정(疑情)이 생명입니다. 의정이 없는 공부는 생명력이 없게 되고 그러한 참선은 정신통일의 힘이 약한 것입니다. 염불이나 묵조선 수식관(數息觀) 등은 비교적 하기는 쉽지만 반면에 정력(定力)이 쌓아지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화두 참구 방법에 대해서 옛 선사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참선을 하려거든 조사관을 뚫고/ 도를 배우려거든 마음 길 끊어진 데서 찾으라/ 사량분별 끊어질 때 온전히 드러나나니/ 물을 먹어봐야 차고 더움 알리라/ 본모습 드러남을 관찰할지라(參禪須透祖師關 學道要窮心路斷 心路斷時全體現 如人飮水知冷暖 到此田地莫問人 須參本色呈機關)’

화두 참구에 있어서 나름대로 사족(蛇足)을 붙여본다면 사요(四要)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고해중생(苦海衆生)을 제도하려는 대원(大願)이 있어야 하고 둘째 내 마음을 깨치면 곧 부처라는 신심(信心)이 있어야 하며 셋째 저이는 장부인데 나는 어찌하여 무명으로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가 하는 분심이 있어야 하고 넷째 화두는 의심이 생명이니 의심을 낼 일입니다. 의심이 있으면 활구요, 의심이 없으면 사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오늘의 세계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빈곤의 시대라 합니다. 불확실한 시대, 정신적 빈곤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삶의 좌표로 삼을 만한 마음의 양식을 선물해 주십시오. 

“우리들이 물질의 가치에 치우친 나머지 밝은 마음을 등지고 암흑세계로 향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산승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마음을 깨치기 전에는 밝은 빛을 볼 수 없다고 봅니다. 마음 밖에 따로 진리가 없다고나 할까요. 마음을 깨치려면 일어나는 마음(경계를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일어나는 마음을 돌이켜(廻光返照) 깨달아야 합니다. 욕심에 물든 보편적인 마음을 여일뿐 따로 성인의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옛 어른들은 이를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라는 말로 표현했지요.” 

- 가야산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성지인 부다가야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가야산에 주석하면서 멀리 부다가야로부터 깨달음의 소식을 듣고 계시는지요? (스님은 빙그레 웃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어 큰소리로 일갈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운데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넘어간다 이놈아! (스님은 이 말에 이어 8·15광복 직후에 겪었던 한 가지 사연을 들려준다. 전혀 사오간도 없는 것 같은 얘기지만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으리라는 짐작이다.) 

당시 화물차 칸에 몸을 싣고 부산을 떠나 서울로 향할 때였어. 그 때 화물칸에는 30여명의 기독교신자들이 주변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찬송가를 부르며 가더니 어느 장로가 내개 와서 혀를 차는 거야. ‘스님을 보아하니 젊은 양반이 불쌍하군요. 금을 캐러 다니며 금맥을 모르고 다니니 말이요….’ 이 말에 나는 거듭 고맙다고 치하하고 나서 ‘그럼 한 가지 묻겠는데요, 예수님은 어디서 나오셨습니까’라고 물었지. 그 장로가 ‘예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신데 나오고 말고 할 게 있냐’고 대답하기에 나는 재차 ‘만약 제게 그러한 질문을 해주신다면 예수는 내 아들놈이라고 하겠습니다’라고 하였지. 

그 장로 되게 화를 내데. 그래서 그들 30명이 모여 앉은 곳으로 가서 ‘속 시원한 해명을 해주겠다’고 하니 그들은 한 번 들어보자고 합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지.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도 내 아들놈이오. 이제 속이 시원합니까? 이 범부가 어찌 성인들께 욕을 하겠소. 다만 여러분들이 우상, 우상하면서도 참으로 우상을 모르기에 말씀드린 것이외다. 별보고 진리를 깨달은 정반왕의 아들 싯다르타 태자의 육체가 성인입니까? 그 육체는 고깃덩이요, 그 마음이 예수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서울 도착할 때 까지 조용히 갑디다.” 

- 오늘날과 같은 가치관의 혼돈기를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죄를 짓고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천만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따질 수 있는 법칙은 허망한 꿈속의 일이므로 착한 일을 하더라도 상(相)을 내면 죽음으로 가는 죄만 더욱 쌓는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위선일다(爲善日多) 유다생사(猶多生死)’ 라는 말은 바로 그 뜻이지요. 그러니 바로 사는 요점은 착한 일을 하되 상이 없이 연극배우처럼 집착 없는 멋진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이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요? 

“지금까지 가르쳐줬어도 모르겠나? 본다는 말만 있을 뿐 무엇을 보는가? 보고 듣는 이것이 부처이면서도 부처가 아닌데 어떻게 보겠는가! 기자! 저 물속에 가서 달그림자나 건져보게…” 

-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는 독특한 가풍을 지닌 스님들이 많습니다. 스님의 가풍은?

“선지식의 가풍은 81풍이나 되지. 역경법(逆境法), 순경법(順境法나) 등등. 나는 법은 대법을 쓰되 중생들을 위해 행은 소승행을 쓰는 것을 정법이라고 봐. 법력은 없으면서 음주육식(飮酒肉食)이 무방반야(無妨般若)라 외치며 자신과 중생들을 타락시키는 자가 고금(古今)으로 많거든. 있더라도 막행막식(莫行莫食)하는 자는 마구니왕이라고 하셨어. 그러나 해행(解行)에 있어서는 너무 계법에 집착해서만도 안 돼.” 

- 육신이라는 옷을 언제쯤 벗으려 생각하십니까?(이 질문에 스님은 주먹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알겠는가? 그러나 여러분들을 위해서 한마디 이르겠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공자(孔子)의 말씀은 나의 뼈대를 이루고 있어. 위법망구(爲法亡軀)로 내 몸과 도를 바꾸려고 생각할 뿐이야.” 

-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국민의 자세라면?

“정법이 흥하면 나라가 발전하고 사견외도(邪見外道)가 성하면 나라가 병들게 되지요. 세상만사는 사람에 달려 있는 만큼 인재양성이 가장 급선무일 겁니다. 부처님께서도 ‘무유정법(無有政法)’이라고 하셨듯이 법보단 인간의 마음이 우선이지요. 그리고 나라전체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작은 이익은 잊어야죠. 근대 선지식 혜월(慧月)스님은 언젠가 논 열 마지기를 팔아서 그 값으로 산골 논 다섯 마지기를 산 일이 있었는데 제자들의 왜 손해 보는 짓을 하느냐는 힐책에 ‘사중으로 봐서는 다섯 마지기 손해났지만 국가에서 볼 때는 다섯 마지기 이익 났을 터이니 그럼 족하지 않은가’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참으로 고매한 생활철학이라 하겠습니다.” 

- 피로를 무릅쓰고 긴 시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87년 2월11일자 불교신문 3면에 실린 해인총림 부방장 혜암스님 ‘신문탐방’ 기사. 당시 김윤세 기자가 인터뷰 했다.
1987년 2월11일자 불교신문 3면에 실린 해인총림 부방장 혜암스님 ‘신문탐방’ 기사. 당시 김윤세 기자가 인터뷰 했다.

■ 혜암스님은…

1920년 출생. 1945년 일본으로 유학, 동서양의 종교와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어느 날 선가(禪家)의 책 <선관책진(禪關策進)>을 읽고 크게 발심해 출가를 결심하고 귀국했다. 

1946년 해인사 인곡(麟谷)스님을 은사로 출가. 법명은 성관(性觀). 해인총림 선원에서 수선안거 이래 한암, 효봉, 동산, 경봉, 전강선사 회상에서 일일일식과 장좌불와로 수행 이래 45하안거를 용맹정진했다. 1947년 문경 봉암사 결사에 참여한 이후 범어사 금어선원, 통영 안정사 천제굴, 설악산 오세암에서 3년 안거했다. 1954년 오대산 서대, 태백산 동암 등에서 3년 안거하고, 1957년 38세 때 오대산 사고암 토굴에서 용맹정진 중 심안(心眼)이 크게 열려 게송을 읊었다. “미혹할 땐 나고 죽더니/ 깨달으니 청정법신이네./ 미혹과 깨달음 모두 쳐부수니/ 해가 돋아 하늘과 땅이 밝도다(迷則生滅心 悟來眞如性 迷悟俱打了 日出乾坤明).” 스님의 오도송이다. 

1961년 오대산 오대(五臺)를 시작으로 해인사 선원, 통도사 극락암 선원, 묘관음사 선원, 동화사 금당선원, 천축사 무문관 등에서 3년 안거 정진했다. 48세 때인 1967년 해인총림이 발족됐을 때 성철스님이 초대 방장을, 혜암스님이 선원 유나를 맡았다. 1968년 지리산 상무주암 안거정진에 이어 지리산 문수암, 인천 용화사, 해인총림 퇴설당에서 정진했다. 1970년 해인사 주지, 1971년 문경 봉암사 백련암, 남해 용문사 선원에서 안거, 1973년 태백산 동암, 송광사 선원에서 안거했다. 

1977년 해인총림 유나, 1978년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안거했다. 1979년 해인사 조사전에서 3년 결사를 시작한 이후 해인총림 선원에서 1990년 71세까지 12년간 안거정진 했다. 1980년 해인총림 유나, 1981년 해인총림 수좌, 1985년 해인총림 부방장, 1987년 조계종 원로의원, 1991년 원로회의 부의장, 1993년 해인총림 제6대 방장 취임(~1996년), 1994년 원로회의 의장(~1999년)을 거쳐 1999년 조계종 제10대 종정에 추대됐다. 2001년 12월31일 오전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서 열반에 들었다. 법랍 56년, 세수 82세. 

“나의 몸은 본래 없는 것이요/ 마음 또한 머물 바 없도다./ 무쇠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돌사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도다(我身本非有 心亦無所住 鐵牛含月走 石獅大哮吼).” 스님의 임종게다. 

정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3611호/2020년9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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