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암각화 탁본전’ 여는
조계종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

9월15~21일 아라아트센터
7000년 전 조성 암각화
탁본 60여 점 선보여
“탐욕의 문화를 넘어
생명의 문화 꽃 피길”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에 있는 암각화와 그 탁본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에 있는 암각화와 그 탁본

해인사 아래에는 암각화가 있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15년 전 지인들과 함께 암각화를 일생에 처음으로 구경했다. 그림 좀 그린다는 지인이 무슨 뜻으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알음알이를 짜내고 상상력을 보태서 부족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모여서 부족회의를 하는데, 소의 숫자나 농사의 현황, 가족의 변화를 새겨놓은 것 같다고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물음을 던진 화백은 가타부타 말없이 입가에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스님도 그러려니 했다. 그때만 해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암각화에 빠져버릴 줄은.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스님이 암각화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러시아와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을 순례하며 탁본한 암각화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다. 9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암각화 탁본전에서는 7000여 년 전 고대인들이 바위에 새긴 일상과 취향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

1990년 수계한 일감스님은 해인사를 비롯해 전국 선방을 돌며 정진한 수좌다. 삶의 근원을 알기 위해 출가한 것인 만큼 뿌리에 대한 관심도 크다. 고령의 암각화는 민족문화의 원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작은 중앙아시아의 알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2016년 여름, 휴가철을 맞아 암각화와 인연을 맺어준 화가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전화를 했다. 스님은 알타이라는 말을 듣는 즉시 거의 홀려서비행기를 탔다.

깔박다쉬, 엘랑가쉬, 차강살라, 타왕복드, 슈베트하이르항, 하르오스, 바가오이고르, 빌루트, 탐갈리, 쿨자바스이낯설고 울퉁불퉁한 지명의 고장을 타고 넘었다. 알타이산맥과 파미르고원이 스님의 무대였다. 끊임없는 동진의 여정에서 숱한 바위그림들을 만났다. 각양각색의 동물과 형상과 몸짓은 투박하고 모호했다. 그러나 거친 만큼 순수한 것임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바위에 동물을 새겨 넣은 건 흔히 말하듯 더 많은 동물을 잡게 해달라는 욕망의 발현이 아닙니다. 가죽과 고기로 생존할 수 있게 해준 동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자, 그들이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의 표현이지요.” 일례로 스키타이 사슴이라 불리는 몽골 타왕복드의 사슴보살암각화는 사냥감이 되어준 사슴이 극락으로 훨훨 날아가길 기원하는 천도재 성격의 그림이다.
 

일감스님은 지난해 가을 중앙아시아를 누비며 암각화들을 직접 탁본했다.
일감스님은 지난해 가을 중앙아시아를 누비며 암각화들을 직접 탁본했다.

탁본을 뜨게 된 까닭은 이러한 옛 사람들의 한없는 순정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다. 암각화 탁본전은 지난해 4월 알타이 유목민들의 의약품 지원을 위해 개최한 사진전 알타이, 푸른 하늘을 꿈꾸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몽골 타왕복드국립공원의 풍경과 암각화, 유목민의 모습을 담은 사진작품 100여점을 전시했다. 곁다리로 암각화 탁본 2점을 함께 소개했는데, 많은 사람이 감탄하면서 아예 암각화 탁본전을 열어보라고 권했다.

그해 가을 다지 중앙아시아를 걸었다. 한겨울 날씨에 앞뒤로 큼지막한 배낭을 멘 채 먹을 바르고 그 위에 한지를 덧대 두들기는 고행이었다. 스님은 모든 탁본은 해당 국가의 허가를 받아 진행했고, 인류의 문화유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작업했다고대인들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감상하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들끓고 있다. 생명의 소중함이 유난히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암각화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다. 조금씩 수몰되고 있는 그것은 인류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

알타이와 반구대 암각화의 주인공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늘을 경의하며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공경했기 때문에 착하게 살았습니다. 오늘날, 물질과 사상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생명은 오직 소비의 대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맑은 거울이자 미래의 지남(指南)이 될 수 있는 암각화를 통해 탐욕의 문화를 넘어 생명의 문화가 꽃 피기를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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