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왕실 원찰’로 창건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거치며
대처승 불법점유로 사세 급감

2011년 정화 후 대대적 불사
경로잔치와 무료자판기 등
지역민과 함께 한 자비 실천
신도 2명서 4천세대로 급성장

조선 왕실 원찰로 창건된 흥천사는 사찰과 지역,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문화생태도량으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고 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흥천사(興天寺)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7(태조 6)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왕실 원찰이다. 한양 천도 후 도성 내에 들어선 최초의 사찰로 170여 칸 규모의 전각에 기둥과 서까래까지 금단청을 할 만큼 한양 최고의 명소가 됐다.

특히 조선불교의 총본산격인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로 지정되는 등 억불숭유정책을 편 조선에서도 왕실의 지원과 장려를 통해 한국불교의 법통을 꿋꿋이 지켜왔다. 하지만 조선 중기부터 왕실의 지원이 줄어들고 2차례의 큰 화마를 입으면서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하지만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후원으로 중창불사를 펼쳤다. 고종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 씨가 아들 영친왕을 흥천사에서 낳았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흥천사에서 피난생활을 하는 등 흥천사와 왕실의 인연은 조선 말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흥천사와 그 주변에 대처승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2010년까지 이들은 조계종과 사찰관리를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흥천사는 통합종단 출범 반세기만인 20111021일 조계종 품으로 돌아오면서 중흥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흥천사는 부처님의 가피로 온 세상을 흥하게 하고(新興天下), ‘꿈을 이루어주는 도량으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20116월 흥천사 주지로 부임한 금곡스님(현 흥천사 불사도감)은 곧바로 사찰 정상화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사찰 토지를 점유한 22가구, 60세대의 주민들과 원만 합의를 통해 이주시켰다. 주지 부임 후 4개월 만에 인수인계절차까지 마무리함으로써 흥천사는 종단 공찰로 새롭게 거듭났다.

하지만 흥천사의 사세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 있었다. 사찰운영권을 넘겨받은 뒤 거행한 첫 번째 초하루법회 때 많은 불자들의 법회 동참을 예상했지만 실제 동참자는 단 2명에 불과했다. 반세기 동안 미입주사찰로 제대로 된 개보수 조치가 없었던 데다가 인수인계시 종무소에는 볼펜도, 공양실에는 수저조차 없을 만큼 모든 게 열악했다. 인수인계 당시 흥천사 1년 수입은 5천 만원에 불과했으며 전기료 납부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5년 화마로 소실됐던 양양 낙산사를 원형 복원한 경험을 갖고 있던 금곡스님은 “‘모든 일을 발원하면 흥하게 일어난다는 흥천사에서 기도하면 모든 게 이뤄지는 꿈을 이루어주는 도량으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갖고 정상화를 위해 매진했다.
 

흥천사의 자랑거리인 느티나무 어린이집.
흥천사 정상화 이전의 어린이집 부지 모습.

곧바로 도량 곳곳을 말끔하게 정비해 나갔다. 가족중심의 신행프로그램 운영과 불교대학 운영, 2~4회 경로잔치 개최, 이웃돕기 성금 연간 4천 만원 성북구청 전달, 연간 2천 만원 장학금 지원, 경로당 후원, 24시간 통행로(지름길) 개방, 무료 자판기 운영, 매일 생수 1천개 무료 나눔 등을 통해 불자는 물론 지역민의 마음을 움직여 나갔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대란을 겪던 지난 4월에는 마스크와 코로나19 극복을 염원하는 편지글, 소원지 등을 함께 동봉해 자비나눔을 계속 이어갔다.

흥천사를 정상화한 지 채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같은 노력으로 신도들과 같이 기도 원력으로 도량을 변화시켰다. 신도수도 2명에서 4천세대로 급성장했다.

흥천사 불사도감 금곡스님은 도량 정비 불사를 통해 전통과 현대문화의 조화, 사찰과 지역사회, 자연환경이 공존하는 생태공간으로 사격을 일신시켜 나가고 있다. 흥천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한 느티나무 어린이집(흥천 어린이집)은 서울시 최초의 전통 한옥식 어린이집이다.

느티나무 어린이집은 85명을 정원으로 지난 20156월 개원했다. 전통사찰 경내에 위치한데다가 친환경적인 한옥 교사(校舍), 정서순화와 생명존중을 강조한 교육철학 등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해 대기자가 끊이지 않을 만큼 인기가 높은 보육시설이다.

흥선대원군이 직접 시주하고 모연해 현판 편액까지 쓴 대방(국가등록문화재 제583)’과 보물 제1891‘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을 모신 극락보전201811월 해체 보수 불사를 회향함으로써 장엄한 제 모습을 되찾았다. 특히 흥천사 대방 해체 보수불사는 1960년대 흥천사 사진이 대거 발견된 데다가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법당과 선방, 누각 등 대방의 원래 기능을 최대한 살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게 됐다.

원형복원을 위해 전기톱 등 현대 장비 대신 옛 공사도구를 사용했으며 기와 또한 수제기와를 사용해 서울 도심 속 고찰로서의 옛스러움을 살려냈다. 앞쪽으로 기울어졌던 극락보전은 전통한옥 보수방법인 한식드잡이방식으로 해제 절차 없이 건물을 바로 세웠다. 수행 가풍 진작을 위해 삼각선원을 2013년 낙성한 뒤 올해 하안거부터 수좌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으며, 노전채와 연화대 개축도 회향했다.

특히 흥천사는 새로운 신행공간이자 지역민을 위한 문화·복지공간으로 흥천사 전법회관을 새롭게 건립했다. 현재 막바지 내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전법회관은 법당은 물론 강의실과 북카페 등이 들어서 불자는 물론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법회와 강연, 공연 등을 선보이는 새로운 신행공간이자 문화센터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600년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흥천사는 불자에게는 신앙적 귀의처로, 주민들에게는 언제든지 찾아와 힐링할 수 있는 쉼터로 거듭나며 꿈을 이루어주는 열린 도량으로 사격을 공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공간 부족으로 임시 천막에서 진행됐던 흥천사 경로잔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흥천사 전법회관에서 쾌적한 환경 속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반세기 암흑기 딛고 종단 품 돌아온 도량

흥천사 정상화 위한 노력 결실
종단서 토지 매각도 검토한
대표적인 종단 미입주사찰

무산스님 사찰땅 매각 안 돼
자승스님은 종무행정적 뒷받침
금곡스님 강한 추진력 결합해
서울 강북권 거점사찰로 재탄생

왕실 원찰로서 조선왕조와 흥망성쇠를 함께 한 흥천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1954년 시작된 불교정화운동에도 불구하고 흥천사는 대처승과 그 가족들이 사찰과 주변지역을 불법점유하면서 사세는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찰로서의 기능 또한 사실상 상실하면서 암흑기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2006년 종단 승인 없이 100억원대의 흥천사 소유 토지를 불법 매매 계약하는 사건마저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토지불법매매사건 이후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종회는 흥천사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지만 1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정상화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8년 제14대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구성한 흥천사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종단과 총무원 집행부, 흥천사, 개발업체가 145억 원에 이르는 새로운 매매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한데 이어 실제로 20095월 토지처분 약정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어 2011년 돈암이수지역주택조합추진위원회로부터 토지 처분 요청을 받아 검토절차에 돌입했다. 20113월 열린 제186회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해결방안을 위임받은 중앙종회 재정분과위원회는 토지 매각 없는 경우와 토지 일부 매각을 전제로 한 정상화하는 방안 등 3가지 방안을 검토했다.

이어 20114월 총무원장 스님과 중앙종회 의장단·상임분과위원장·재정분과위원·종책모임 대표·총무원 부실장 등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어 5월말까지 토지 매각 없이 정상화하는 방안을 찾되, 안 될 경우에는 일주문 옆 공원 부지를 매각해 정화비용을 마련하도록 뜻을 모으기도 했다.

한때 조계종의 뜨거운 감자였던 흥천사는 201110월 사찰 역사를 새롭게 써야할 만큼 획기적인 일이 펼쳐졌다. 20115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이 일체의 토지 매각 없이 전통사찰 흥천사를 정상화 해야 한다고 뜻을 함께 하며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변곡점을 마련한 것이다.

조계종은 2011621일 종무회의를 통해 금곡스님을 미입주사찰흥천사 주지로 임명하고, 흥천사 정화를 완료하면 그 공로를 인정해 당대에 한해 창건주 권한을 부여하기로 결의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주지 지위 보장, 정화를 위한 일체 권한 보장, 10년간 분담금 면제 및 감사 유예 등 전폭적인 행정적인 뒷받침을 해줬으며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은 제3교구본사 신흥사가 흥천사 정상화를 위해 정화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금곡스님이 흥천사 정상화에 매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단 한 평의 사찰땅도 매각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 흥천사를 정상화 하는데 크게 기여한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해 2013년 흥천사 삼각선원 낙성을 격려했다.

금곡스님은 흥천사 주지 부임 4개월만인 201110월 인수인계를 통해 사찰 운영권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전 주지의 불법 토지매매계약을 무효화하고 사찰 토지를 점유한 22가구, 60세대의 주민들과 원만 합의를 통해 내보냈다. 단 한 평의 토지 매각도 없었다. 통합종단 출범 후 50년간 방치돼 오던 흥천사가 명실상부한 종단의 강북지역 거점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셈이다.

금곡스님은 102억원 기채를 들여 흥천사를 정상화한데 이어 122억 원(기채 100억원+사찰부담 22억원)을 투입해 전법회관 건립불사를 펼친 것을 비롯해 삼각선원 낙성과 느티나무 어린이집 개원, 대방 및 극락보전 보수 등 도량 정비를 위해 총3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불사비를 투입했다. 향후 5년간 요사채와 창고 건립, 화장실 개보수 등 나머지 도량정비사업도 추가로 전개해야 한다. 은행 기채와 신흥사의 지원, 금곡스님의 화주 등을 통해 정상화 및 불사기금을 마련했으며 현재도 매월 약 5500만원(원리금 2천만원, 이자 3500만원)씩 상환하고 있다.

이 같은 흥천사의 변화의 물결은 흥천사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 일체의 토지 매각 없이 전통사찰을 보존하겠다는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설악 무산스님의 원력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행정력에서 시작됐다. 여기에다가 화재로 소실됐던 낙산사를 원형 복원한 흥천사 불사도감 금곡스님의 추진력, 흥천사 주지 정관스님의 노력과 부처님 가르침을 앞장서 배우고 실천하는 흥천사 신도들의 남다른 신심 등이 맞아 떨어져 일군 값진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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