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해인사 승가대학 토론대회

폭염 속 여름 안거 토론수행
라운드 이어지며 찬반 '팽팽'
논리와 유머있는 주장 '관심'
결선 회향은 10월 둘째 주에

해인사승가대학은 하안거에 즈음해 학인스님들이 참여한 토론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 7월31일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린 3라운드 모습.
해인사승가대학은 하안거에 즈음해 학인스님들이 참여한 토론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 7월31일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린 3라운드 모습.

장마와 무더위로 그 어느해 보다 힘겨운 여름을 맞이한 7월31일 해인총림 해인사(주지 현응스님) 구광루에 스님들이 모였다. 가야산에 빗줄기가 내리는 이날 해인사승가대학(학장 직무대행 보일스님)이 4회째를 맞이한 토론대회 예선 3라운드에 교수사, 학인 스님 2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승가교육기관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스님들의 위의(威儀)를 갖추기 위한 일환으로 마련한 토론대회다.

연단에는 ‘제4회 성안스님배 해인사승가대학 토론대회’라는 현수막과 더불어 토너먼트에 진출한 스님들이 앉아 주장과 반박을 거듭하게 될 책상이 마련됐다. 학인 스님들은 물론 학장직무대행 보일스님, 학감 법장스님, 교수사 심공, 현장 스님이 청중석에 앉아 토론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주제는 ‘한국불교는 전통적 채식주의를 유지해야 한다-오신채와 육식의 금식을 중심으로’이다. 학인 스님들은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2인 1조가 되어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입론(立論)에 이어 팀별로 3분씩 주도권을 쥐고 토론 한 후 마무리 발언을 형식이다.
 

토론대회에 나선 학인 스님들이 주제를 놓고 찬반입장에서 열띤 공방을 주고 받았다.
토론대회에 나선 학인 스님들이 주제를 놓고 찬반입장에서 열띤 공방을 주고 받았다.

이날 토론대회는 명경지수(승오, 만경 스님), 돌아온 뭐 먹지?(무착, 지공 스님), 죽비소리(금어, 도원 스님), 여시아문(일항, 해명 스님), 장군준비(설호, 혜원 스님) 팀이 참가해 공방을 주고 받았다.

“코로나 사태를 보면 처음 발병 원인이 인류의 무분별한 육식생활이 재앙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 육식하다 보면 그 피해는 우리들에게 오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원스님)

“극단적인 사회적 대립 속에서 한국불교는 중도적인 방안을 실천해야 합니다. … 육식 문제의 공식화는 단순히 육식과 채식,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답만을 강요하지 말고 최선책을 강구해야합니다.”(일벽스님)
 

학장직무대행 보일스님(왼쪽)과 교수사 심공스님 등이 토론대회에 함께해 심사평을 통해 학인 스님들을 격려했다.
학장직무대행 보일스님(왼쪽)과 교수사 심공스님 등이 토론대회에 함께해 심사평을 통해 학인 스님들을 격려했다.

하루 앞서 7월30일에는 법희충만(승해, 법유스님), 도찐개찐(승목, 설산스님), 패러사이트(진원, 적마스님), 겨울법당(지묘, 효중스님), 수레바퀴(공림, 일승스님), 법정휴일(휴정, 일벽스님)의 토론이 전개됐다. 재치있는 팀 이름은 스님들이 각자 개성을 살려 지은 것이다.

토론대회는 최근 개국한 '해:인싸TV'(유튜브)에서 전체를 녹화했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될 법도 한데 학인스님들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혔다. 발표 사실에 부합하는 경전의 근거를 들거나 최신 논문 또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준비해 토론하는 모습이 진지했다. 그렇다고 엄숙한 분위기만 이어지지 않았다. 유머를 곁들인 주장에 참석자들이 박수로 호응하는 등 한국불교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승가‘의 당당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학감 법장스님과 교수사 현장스님 등 교수사 스님들이 토론대회에서 심사평을 통해 학인 스님들을 격려했다.
학감 법장스님(오른쪽)과 교수사 현장스님 등 교수사 스님들이 토론대회에서 심사평을 통해 학인 스님들을 격려했다.

이날 토론대회를 지켜 본 학장 직무대행 보일스님은 “다각도로 다양한 프레임을 갖고 입론을 하고, 논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진행됐다”면서“생리학적, 영양학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진부하고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보일스님은 “율장이나 경전에 입각해 논지를 전개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학감 법장스님도 “이번에 다루는 전통적 채식주의는 앞으로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고 미래의 수행과 불교가 사회와 공존하면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식문화는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깊은 사유를 하는 시간”이라면서 “민감한 부분이기도 한데 잘 다루어 주었다.”고 평했다.

그동안 해인사승가대는 △현대사회에서 수행, 포교에 적합한 것은 선(禪)불교 보다는 정토불교이다. △현대한국 사회에서 불자 인구 수 격감의 주된 원인은 공동체 내부의 원인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 로봇에도 불성이 있다. △현대 한국불교의 기복적 요소는 바람직하다. △호국불교는 계율과 상존가능하다. 등의 다양한 주제로 토론대회를 진행했다.
 

토론대회가 열린 구광루 밖에 가지런히 놓인 학인 스님들의 신발.
이날 토론대회는 학인스님들이 직접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승가교육의 한 단면을 보였다.

이날 토론대회에 참석한 학인스님들은 공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본인 의사에 상관없이 찬성과 반대 입장 양편에 위치해 문제를 다각적으로 사고하는 기회를 줍니다. 그동안 별로 관심이 없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습니다.”(진원스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반대편 입장을 들으면서 기존에 갖고 있는 신념을 정립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논제에 대해 다른 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으며 입장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일벽스님)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스님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서 좋았습니다. 특히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자기 소신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일승스님)
 

토론대회가 열린 구광루 밖에 가지런히 놓인 학인 스님들의 신발.
토론대회가 열린 구광루 밖에 가지런히 놓인 학인 스님들의 신발.

해인사승가대 토론대회는 팔만대장경보존국장을 지내다 입적한 성안스님 도반들이 기탁한 장학금으로 예산을 마련했다. 대회 명칭에 ‘성안스님배(盃)’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1학기 초에 토론 주제를 정해 토너먼트로 예선을 진행하고 해제 즈음에 준결승과 결승전으로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이 때는 사중(寺中) 스님들과 후원회원들도 자리를 함께 한다. 올해 결선 회향은 10월 둘째 주에 열릴 예정이다.

학장직무대행 보일스님은 “한국불교는 하안거에 즈음해 수많은 스님들이 선원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전통이 있다”면서 “교학을 연찬하는 승가대학에서도 하안거를 맞아 정진하기 위한 취지로 학인토론대회를 열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해인사승가대학은 올해부터 ‘탁실라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승가교육 현장에 반영하고 있다. 엘리트들이 지성을 펼친 ‘고대 탁실라 전통’을 현대 승가교육에 구현하겠다는 원력으로 마련한 프로젝트이다.

한국불교의 유구한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학인토론대회 등 새로운 패더라임을 형성해 시대를 선도하는 승가교육의 장을 열어가는 해인사승가대학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해인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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