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14> 보성 천봉산 대원사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
[한국 산사 불화기행] <14> 보성 천봉산 대원사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
  • 신광희 중앙승가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20.08.12 13:06
  • 호수 3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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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관음이고 관음이 곧 달마이다”

전라남도 보성군 천봉산(天鳳山) 자락에는 천년 고찰 대원사(大原寺)가 자리하고 있다. 순천 송광사의 말사로, 주암호에서 천봉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5km 남짓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산사이다. 대원사를 찾아가는 그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선정되어 있을 만큼 예쁘고 찬연하다. 절에 도착하면 먼저 티베트박물관이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 일주문이 보인다. 혹자는 대원사를 한번 가면 잊히질 않을 사찰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절집이다.
 

달마대사도, 1766년경, 흙벽에 채색, 세로 292.5cm, 가로 234.5cm, 대원사 극락전.
달마대사도, 1766년경, 흙벽에 채색, 세로 292.5cm, 가로 234.5cm, 대원사 극락전.

대원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 때 5교9산 중 열반종(涅槃宗)의 8대 가람 중 하나로 꼽혔던 참선도량이었다. 고려에 들어와서는 1260년 송광사 제5대 국사인 자진원오(慈眞圓悟)스님이 크게 중창하면서 사명을 죽원사(竹原寺)에서 대원사로 개칭했다.

이후 임란을 거치며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17~18세기에 탁오(卓悟), 태연(泰演), 위청(渭淸)스님이 차례로 법당을 짓고 불상과 불화를 조성해 봉안했는데, 그중 일부가 지금도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상당수 소실되었지만, 1990년에 현 주지 현장스님이 주석하면서 복원, 중창을 거듭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원사의 주불전은 극락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1767년 3월에 쓴 ‘보성천봉산대원사대법당시왕전여중료중창급단청겸지장개금화각첩기문(寶城天鳳山大原寺大法堂十王殿與衆寮重刱及丹靑兼地藏改金畵各帖記文)’을 보면, 1766년에 불사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따라서 극락전 역시 이때 중수된 것으로 판단된다. 대원사는 극락전과 더불어 내부의 벽화가 유명하다.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로, 극락전이 중수된 1766년경에 그려진 것이다. 보물 제1861호이기도 하다. 

불전 내 중앙의 부처님을 바라보고 섰을 때, 우측인 동벽 상부에는 달마대사(達磨大師)가 그려져 있다. 동토로 온 서천(인도) 28조, 9년간의 면벽 수행, 절로도강(折蘆渡江) 등 달마대사는 위대한 행적과 무수히 많은 서사를 지닌 선종의 초조(初祖)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는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조각이나 그림으로 시각화되었다. 달마대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한국에서 그려진 달마도는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세간에 유명한 김명국의 달마도, 심사정의 달마 절로도강도 등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면 의외로 떠오르는 그림이 별로 없다. 더욱이 불가(佛家)에 남아 있는 것은 작례가 적다. 이런 상황에서 대원사의 극락전 내부에 벽화로 그려진 달마대사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대원사 달마대사도는 흙벽에 붉은색, 녹청색, 백색, 그리고 먹을 주로 사용해서 그려졌다. 화면의 크기는 세로 292.5cm×가로 234.5cm로 상당히 크다. 달마대사는 산중에서 건장한 체구로 눈을 부릅뜨고 앉아 계시고 그 옆에는 팔을 잘라 바치는 신광선사(神光禪師)가 자리하고 있다. 선사의 옆에는 ‘神光禪師斷臂’라고 글씨로도 적혀 있다.

‘신광이 눈 내리는 긴 겨울밤을 선 채로 새우며 법을 청했으나, 대사가 얕은 마음으로 큰 지혜를 얻고자 하느냐며 꾸짖자 자신의 결의를 보이고자 칼로 왼쪽 팔을 잘랐다. 이때 땅에서 파초잎이 솟아나 팔을 받쳤다. 이후 대사께서는 그의 입문을 받아들여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주었다’는 그 유명한 고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광선사단비’ 장면, 대원사 달마대사도 부분.
‘신광선사단비’ 장면, 대원사 달마대사도 부분.

한편 달마대사의 맞은편, 즉 서쪽 벽 상부에는 관음보살이 그려져 있다. 백의(白衣)를 입고 보관에는 화불(化佛)을 모신 관음보살이 기암괴석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파도 위 암석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 뒤로는 선재동자가 서 있으며, 관음보살 앞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조선 후기에는 백의관음도가 특히 성행했다. 대원사본 역시 당시의 경향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는데, 도상에 변화를 주어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관음보살의 상체를 부각해서 그린 점, 청조(靑鳥)를 선재동자가 안고 있는 모습 등은 기존 도상과 크게 차별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대원사에서 불전 내에 달마대사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당시 불교계의 조사(祖師) 숭배 및 대원사의 정통성과 연관이 있다. 조선 17~18세기에는 선문조사예참문(禪門祖師禮懺文) 등 의식문을 간행해 신앙의례를 행할 정도로 조사 신앙이 성행했으며, 해인사, 대흥사, 송광사, 선암사 등에서는 삼십삼조사도(三十三祖師圖)를 제작해 봉안하기도 했다.

또한, 선문염송(禪門拈頌)도 활발히 간행했다. 선문염송은 송광사 16국사 중 제2대 진각국사 혜심이 선문의 공안 1125칙에 게송을 붙여 판에 새긴 것이다. 총 30권 10책으로 편찬되었다. 고려와 조선의 선어록 가운데 최고로 치는 불서이다. 현재 고려의 초간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조선 1499년 석수암(石水庵) 개판본, 1549년 신흥사(神興寺) 개판본, 1566년 법흥사(法興寺) 간행본, 1634년 용복사판(龍腹寺板), 1636년 천봉산 대원사 개판본, 1682년 천봉산 대원사 간행본, 1707년 능가사판(楞伽寺板) 등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바로 대원사에서 선문염송을 두 차례나 간행했다는 점이다. ‘崇禎九年丙子(1636)春 全羅道寶城地天鳳山大原寺開刊, 慧伯明眼書, 貞祐14年(1226)丙戌仲冬 海東曹溪山修禪社 無衣子序’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대원사에서 간행된 선문염송 30권 판본은 규장각에 한질, 고려대학교박물관에 한질이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선풍이 바탕이 되어 불전에 달마대사의 모습과 신광선사단비 장면을 그려 숭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달마대사와 관음보살을 마주 보게 배치한 것은 어떤 연유일까? 이 역시 달마대사의 행적 및 달마대사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달마스님은 중국에 와서 양(梁) 무제(武帝)를 만났다. 그때 쓸모없는 의론과 형식을 따지는 무제에 실망하여 숭산 소림사에 가 9년간 면벽수행을 한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달마대사가 떠난 후 무제는 지공대사(志公大師)에게 대사에 관해 물었는데, 지공은 달마를 가리켜 ‘관음대사(觀音大師)’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달마대사와 관음보살을 동일한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간화선(看話禪)을 완성한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게로 이어졌다.

대혜스님은 관음달마상대상(觀音達磨相對像)이라는 글에서 ‘달마는 관음이고 관음은 달마로서 한 몸에 두 개의 이름을 가졌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점이 바탕이 되어 대원사에서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서로 마주 보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원사는 자진원오국사의 중창 후, 정토신앙과 참선수행을 함께하는 선정쌍수(禪淨雙修)의 도량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도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관음보살도, 1766년경, 흙벽에 채색, 세로 305.0cm, 가로 229.5cm,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도, 1766년경, 흙벽에 채색, 세로 305.0cm, 가로 229.5cm, 대원사 극락전.

마지막으로 대원사의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는 누가 그린 것일까? 벽화에는 화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 하지만 불전의 중창 때 함께 그려진 지장보살도(1766)와 시왕도(1766)의 화풍과 견주어 보았을 때, 비슷한 부분이 꽤 많다.

예를 들어 관음보살과 신광선사의 형상 및 세부 기법은 지장보살도의 관음보살이나 도명존자의 표현과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달마대사의 모습은 시왕도 중 변성대왕이나 사자(使者)의 얼굴과도 흡사하다. 지장보살도와 시왕도는 대화사 색민(色旻) 스님이 주도해서 그린 것이므로, 관음 달마도 역시 색민스님이 그린 것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보성 대원사는 창건 이후 참선 수행 도량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지켜온 고찰이다. 그곳에서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와, 단비를 통해 결기를 보인 신광선사의 모습을 그린 벽화를 만나게 된 것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게다가 관음보살과 함께 그려 모신 것은 ‘달마가 관음이고 관음이 곧 달마이다’라는 인식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산사 벽화의 걸작인 동시에 한국불교의 선풍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보물 중의 보물이다.

[불교신문3604호/2020년8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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