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지 않으면 공멸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무비스님의 대표적인 법제자
30년간 경학 연찬한 권위자
유튜브 ‘용학스님목어TV’ 인기
실시간으로 만나는 불전 강의

“화엄경을 따르는 삶이란
고통과 슬픔을 분담하는 삶…
중생을 믿고 함께 정진하는 것
진정한 불교와 시대의 길”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용학스님이 화엄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의 배경은 방대한 화엄경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표.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용학스님이 ‘화엄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의 배경은 방대한 화엄경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찰 승가대학의 모습마저 바꿔놓았다.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용학(龍學)스님은 동화사에서 강의하지 않는다. 승가대학도 인강(인터넷 강의)’이 대세가 됐다. 부산에 있는 처소인 수암(水巖)선원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학인 스님들을 만난다. ‘역병은 한걸음 나아가 스님에게 또 다른 탁마(琢磨)의 기회를 부여했다. 실시간 강의에 도전하고 유튜브를 운영해야겠다는 계기가 됐다.

용학스님이 5월에 개설한 용학스님목어TV’는 한문불전을 라이브로 배울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이다. 목어(木魚)라는 이름엔 열심히 경전을 공부해서 불교의 용()이 되라는 격려가 담겨 있다. 스님은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편집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는 유튜버. 학인 스님들만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해외에서도 들어와 경전을 공부하고 법문을 듣는다. 유튜브는 시공을 초월한 화엄세계를 실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다. 재미도 보람도 크다.

스님은 20대 초반에 출가했다. 처음엔 전국을 만행하며 도()를 구하는 대자유의 선객을 꿈꿨다. 그러나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좌선을 할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경()의 도인이 되었다. 30년간 전통 경학 연구에 매진해 강백(講伯)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시대의 대()강백 무비스님의 대표적인 법()제자다.

종단 인재의 요람이었던 은해사 승가대학원 1기생으로서 대학원장이었던 어른과 처음 만났다. 부산 문수선원에서 스승을 도와서 시민들에게 전통강원교육을 맛보게 해준다.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법을 편다. 웃으면 더 이상 순박할 수 없는 얼굴은 스님의 마음결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4년 전에 만났을 때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의미에 대해 주로 물었다. 고대 인도의 논사 마명(馬鳴)이 저술한 논서다. 특히 부처님의 말씀인 이 아닌 데도 역사적으로 수많은 주석서가 나왔다. 불교를 믿는다는 게 진정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번에는 경전의 왕()이라 불리는 <화엄경(華嚴經)>을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님의 거처에는 사람 키만 한 도표 두 개가 붙어 있다. 하나는 화엄경의 요의를 압축한 약찬게를 해설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아예 80권 화엄경 전체를 스스로 풀이한 내용이다. 그만큼 화엄경에 대한 안목과 사랑이 깊다. 약찬게 해설집 2만부를 찍어 무료로 나눠주고 있기도 하다. ‘

임의대로 복제 가능합니다. 널리 배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책 뒷장의 안내문에는 당신의 넉넉한 성격과 부처님의 말씀으로 절대 돈벌이는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녹아있다. 이번에도 스님은 확실한 답을 주었다. “화엄의 삶이란 고통을 분담하는 삶이고,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릴 줄 아는 삶이다.”

용학스님은 20년 만에 열린 5월 수원 봉녕사 화엄법회에서 첫 번째 법석에 올랐었다. 화엄경의 권위자가 말하는 화엄경은 거룩한 깨달음의 세계를 다양하게 찬탄하고 설명하는 노래다. 그리고 혼자서 유유자적하고 안빈낙도하는 삶을 아름답다고는 해도 거룩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열반은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화엄경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고 지적합니다. 열반에 안주하지 않고, 중생계로 돌아와 중생을 보듬고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불교의 본령입니다. ‘보현행원(普賢行願)’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자비가 없는 지혜는 잔기술에 불과하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이를테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면서 홀로 여유롭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소승(小乘)의 깨달음이라면, 자연인의 기를 받아 중생과 함께 생멸의 바다에서 출렁거리는 것이 대승(大乘)의 깨달음입니다.”

존재의 동시구족(同時具足)과 중중무진(重重無盡)과 상입상즉(相入相卽)을 입증하는 것이 화엄경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함께 어울려야만 영원히 환희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경전이다. “부산 앞바다의 물도 짜고 태평양 한가운데의 물도 짭니다. 압록강은 서쪽에서, 두만강은 동쪽에서, 낙동강은 남쪽에서 태평양을 향해 갑니다. 큰 바다로 들어가면 어느 지역이든 어느 계층이든 어느 이념이든 다 융화됩니다.”

바다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려면 그 어떤 시련도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용기와 저력이 필요하다. “파도가 치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누가 배를 몰지 못하겠습니까? 평시(平時)에 누가 장군을 못하겠습니까?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이고 거칠고 모진 바다 속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게 마련입니다. 불교의 주인은 부처님이 아니라 중생이에요. 부처님을 믿기에 앞서 중생을 믿고 그들과 더불어 정진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입니다.”

역대 선사들은 도()는 어디에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인터넷방송에도 도가 있다. “유튜브를 하려면 일단 컴퓨터가 멀쩡해야지요? 랜선도 깔려 있어야 하고, 인공위성도 부지런히 돌아가야 합니다. 웹캠(web-cam)도 필요하지요? 네트워크 회사도 건실하게 잘 운영돼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개체와 개체, 조직과 조직이 원활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해야만 온라인 강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약 모든 장비가 다 갖춰졌다 하더라도 전기가 나가면 그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사람의 세상도 이러한 모습이고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공존하지 않으면 공멸하는 것이 필연이고 순리예요.”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도 확실히 알려주었다. 화엄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것을. “나 혼자만 조심하면 병에 안 걸립니까?”

바이러스는 한편으로 반면교사다. 그들이 인간을 공격할수록 인간은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야할지 분명해진다. “가장 훌륭한 법은 편법이고 사리사욕 채우는 걸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짓밟으니까 병균마저도 인간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닌지.

화엄경에, 상덕성문(上德聲聞)이라도 두시청어가회(杜視聽於嘉會)라고, 제아무리 뛰어난 아라한이라도 화엄법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는 화엄보살의 틈새에도 낄 수가 없어요. 몸이 아니라 삶에서 향기가 나야만 진짜 화엄행자입니다. 모자란 사람을 나무라면 그 사람이 더 모자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을 나무라지 않아요.” ‘내 두레박 끈이 짧은 걸 탓해야지 우물이 깊은 걸 탓할 수는 없다는 스님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용학스님이 말하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정신은 망부석의 정신이다. “올 사람을 기다리는 건 쉽습니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게 인생의 참맛이지요.” 웃고 떠드는 삶이 재미있을지언정 그것을 가치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비장한 삶만이, 부딪혀도 무너지지 않는 삶만이, 상처받더라도 다시 사람에게 다가가는 삶만이 빛나는 법이다.

원력으로 사는 사람은 절대 악독하지 않습니다.” 스님의 티 없이 맑은 웃음이 이를 증거한다. 천성산 자락에 놓인 수암선원은 길의 끝에 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마주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스님의 원력처럼 보인다.

 

스님은 유튜브 ‘용학스님목어TV’를 운영하고 있다.
스님은 유튜브 ‘용학스님목어TV’를 운영하고 있다.

용학스님은...
1986년 해인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통도사와 범어사 중강을 역임했다. 조계종립 은해사승가대학원을 마치고 무비스님에게서 전강한 후 범어사 승가대학장으로 일했다. <불광대사전 전8권 한글색인집> <불조직지심체요절 상하권 역주> <대방광불화엄경 전80권 대역본>을 비롯해 다수의 승가대학 교재를 펴냈다. 현재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으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부산=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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