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는 지금 물폭탄 맞은 전쟁터
또다시 태풍소식에 주민들 망연자실
수해복구 도울 봉사자 절대 부족
화엄사 스님들 작업복입고 수해현장 방문
십시일반(十匙一飯) 보살행 실천해

구례읍 침수 소식을 듣고 화엄사 스님들이 수해를 입은 지역주민을 돕기 위해 서둘러 찾았다. 사진은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작업복을 입고 주민들과 침수된 집기를 나르는 모습.
구례읍 침수 소식을 듣고 화엄사 스님들이 수해를 입은 지역주민을 돕기 위해 서둘러 찾았다. 사진은 8월9일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작업복을 입고 주민들과 침수된 집기를 나르는 모습.

입추였던 8월7일을 전후로 연이어 500mm 물 폭탄을 맞은 전남 구례지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연상시켰다. 8월9일 낮, 구례읍내에 들어서자 거리마다 침수된 가재도구를 밖으로 끌어내며 복구가 한창이다.

구례 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자리한 ‘청소년 문화의 집’에도 화엄사 대중스님들과 재가 종무원을 비롯한 직원 등 50여명이 침수된 물품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지하와 1층이 완전히 물에 잠겨 쓸 수 있는 물건이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합니다. 그래도 내일부터 또 태풍이 온다고 하니 물에 씻어서 쓸만한 물건과 사무실 서류를 2층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화엄사 대중 스님들의 도움으로 사무실 주요 서류를 2층으로 옮기던 도운스님(구례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갑작스런 침수이지만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다”며 잠시 숨을 돌린다.

구례 ‘청소년 문화의 집’은 화엄사가 위탁운영하고있는 구례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구례군청소년상담센터가 자리한 구례지역 주민들의 보금자리이다.

구례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구례 시가지와 인근 자연마을이 침수되고 말았다. 다행히 8일 저녁부터 비가 잦아들고 범람한 강물이 서서히 빠지면서 구례 시가지가 드러났다. 그 현장은 한마디로 한바탕 싸움이 지나간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수해복구현장에서 침수된 자재들을 밖으로 끌어내던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은 “참담할 뿐이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피해규모가 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화엄사 스님들의 도움은 지역주민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
피해규모가 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화엄사 스님들의 도움은 지역주민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

이날 주지 덕문스님은 오전에 구례읍내와 인근마을을 돌아봤다. 여전히 물에 잠긴 주민들은 모두가 황망해 하고 있었다. 구례에서 화엄사로 들어가는 산문이 있는 냉천삼거리 인근 신도들의 집도 모두 잠겼다. 덕문스님은 실의에 빠진 주민들을 위로하고 물이 빠지면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화엄사는 전날부터 수재민을 위해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화엄사 아래 마산면 일대가 침수되고 이재민이 발생하자 경내 화엄원을 임시대피소로 제공했다. 몸만 피해 집을 나온 주민 29명이 화엄사에 의탁했다.

날이 새고 화엄사는 사중에 있던 쌀 50포대(500kg)를 마산면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지원했다.

점심 무렵, 범람했던 강물이 빠지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화엄사 스님들이 차량에 올랐다. 선원, 강원은 물론 한주스님과 소임자스님, 재가종무원 등 힘을 보탤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나섰다.

먼저 구례읍내로 달려갔다. 구례 수해지역에 가장먼저 달려온 봉사자는 승복대신 작업복을 입은 스님들이었다. 구례읍내에 자리한 5일장 재래시장에 이어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수해복구를 거들었다.

2시간 가까이 사무실 집기를 끌어내고 주요물품을 2층으로 옮겼건만 수해복구는 끝이 없었다. 주지 덕문스님이 교무국장 덕흥스님에게 스님 몇몇과 함께 냉천삼거리 민가를 지원토록 지시했다. 오전에 물이 빠지면 찾아오겠다고 약속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화엄사 아래 자연마을의 침수현장은 더 참혹했다. 집안의 가재도구를 끌어내던 황의현 보살 가족이 수해복구 스님들의 방문에 연신 합장만 했다. 스님들도 말없이 온화한 미소로 위로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밖에서 빨리 피하라는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밖으로 나와보니 마당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급히 집안의 물건을 꺼내오려고 하는데 물살이 무섭게 쏟아져 오는거예요. 핸드폰 하나 들고 겨우 몸만 피했습니다”

황의연 보살 부부는 이웃의 도움으로 방학을 맞아 집을 찾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찾은 집은 2층까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집안의 물건은 어느것 하나 다시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목재로 건축한 집이어서 침수된 집을 해체하고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그나마 옆에 있는 황태용 거사 집은 콘크리트 건물이어서 골조는 활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가재도구와 살림살이는 모두 쓰레기가 되고말았다.
 

일사분란하게 침수된 집기를 나르는 스님들.
일사분란하게 침수된 집기를 나르는 스님들.

구례지역 수해복구 현장은 침통함과 함께 또다른 복병이 봉사자 스님들을 힘들게 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태양이 한여름 찜통더위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깨진유리와 못 등 뽀족한 물건은 흉기가 되어 곳곳에 널려있다. 무엇보다 구례 시가지는 역류한 생활오수로 인해 고약한 냄새까지 감내해야했다.

“절 집에서 객승이 오면 각자 한술씩 보태는데 숟가락 열술이 밥 한 그릇이 된다고 하여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 합니다. 코로나19에 수해까지 겹쳐 어려운 때이지만 서로 힘을 보태면 충분히 이겨낼수 있습니다. 혹여 힘을 보태야 하는곳은 없는지 주위를 돌아보고 십시일반을 실천하는 보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수해로 완파된 신도 집에서 냉장고를 꺼내던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은 “어려울때일수록 십시일반 운동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자”며 불자들의 도움을 당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엄사 어린이법회 법우와 학부모, 선재불교대학 학인들이 봉사를 자처하고 수해현장으로 찾아왔다.

화엄사 산내암자 구층암 주지 덕제스님도 대형 살포분무기를 트럭에 싣고 침수현장을 찾았다. 수해현장에서 깨끗한 물과 분무기는 봉사자의 일손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후 12시30분부터 시작한 화엄사 스님들의 수해복구 봉사는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앞으로 며칠간 스님들의 자원봉사는 계속된다.

또한 화엄사는 8월10일 구례군청을 찾아 수해복구기금 2000만원을 전달하고 신속하고 완벽한 수해복구를 당부할 예정이다.
 

가재도구를 나르는 덕문스님의 모습
가재도구를 나르는 덕문스님의 모습
화엄사 들머리 냉첨삼거리가 침수된 모습. 사진=화엄사
화엄사 들머리 냉첨삼거리가 침수된 모습. 사진=화엄사
화엄사가 수탁운영하는 청소년문화회관을 스님들이 정리하고 있다.
화엄사가 수탁운영하는 청소년문화회관을 스님들이 정리하고 있다.
화엄사는 구례 수재민을 위해 화엄원에 긴급대피소를 마련하고 주민 29명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했다. 사진=화엄사
화엄사는 구례 수재민을 위해 화엄원에 긴급대피소를 마련하고 주민 29명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했다. 사진=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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