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뮤지컬”
“흔들림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뮤지컬”
  • 김종섭 월간 리뷰 대표
  • 승인 2020.07.31 17:56
  • 호수 3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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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종섭 월간 리뷰 대표의 불교 뮤지컬 ‘싯다르타’ 리뷰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싯다르타가 한층 더 발전된 모습으로 지난 717일부터 군포에서 전국 순회공연을 재개한 가운데 김종섭 월간 <리뷰> 대표가 뮤지컬을 보고 난 뒤 본지에 기고를 보내와 전문을 싣는다한편 뮤지컬 싯다르타는 오는 814일부터 16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순회공연을 이어간다.

뮤지컬 '싯타르타'의 공연 모습.

세상 모든 사람들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

군대에 입대하면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깨닫고, 젊은 날 지나치게 방종했음을 반성하기도 한다. 간혹 부모님 사랑해요, 앞으로는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며 편지로 다짐의 마음을 예술가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체험적으로 깨닫는 게 아니라 군대 고참으로부터 원산폭격(元山爆擊, 뒷짐을 진 채 몸을 굽혀 머리를 땅에 박는 동작)을 비롯해 혹독한 훈련, 구타를 당하면서 문득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분은 역시 부모라는 걸 알게 된다.

빡빡 민 머리의 정수리를 땅에 꼰아 박고 360도 회전을 하면서 '어머니 은혜'를 노래 부르라 하면 각개전투장에서는 고통의 신음소리가 아니라 부모님 생각에 흐느끼는 곡소리가 진동한다. 지금이야 그럴 리 없겠지만 옛날에는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철이 든 듯 했던 아들이 제대 후 3개월이 못되어 철없던 옛 시절로 급 회귀한다. 어쩌다 성숙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또다시 부모 속을 활활 태우고 만다. 이를 어쩌랴. 왜 그럴까?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이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노래했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세상 모든 인간들의 마음이란 이렇듯 흔들리는 갈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혜해탈과 심해탈의 차이

교도소에서 종교에 귀의하는 등 개과천선한 출소자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 아니 작게는 담배가 얼마나 몸에 좋지 않은지 폐암환자의 수술을 지켜본 후 금연했던 친구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도 저 제대자와 출소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환경에 그만큼 연약한 동물이다.

반성하는 듯 하면서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해탈을 예로 들면서 깨달음을 두 종류로 설명한다. 혜해탈과 심해탈이 그것이다. 혜해탈(慧解脫)해탈이란 일체의 장애로부터 벗어나는 것임을 지식으로 깨우치는 것이다. 심해탈(心解脫)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과 지식이 융합해 뼛속까지 깨우치고 바른 선정(禪定)으로써 원융무애(圓融無礙)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성추행이든 성폭행이든 인간의 추악한 짓임을 지식으로 알고 있지만, 특정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러저러한 유혹에 쉽게 넘어지는 이유는 심해탈과 같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심해탈처럼, 탐진치(貪瞋痴)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바람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환경에 휘둘리지 않을 수는 진정 없는 걸까?
 

뮤지컬 '싯타르타'의 공연 일부분.
뮤지컬 '싯타르타'의 공연 일부분.

전륜성왕이 돼 다스려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

심해탈의 경지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딪히는 모든 사람과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늘 고민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인간이었다. 그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떤 경험을 통해 심해탈에 이르렀고, 어떤 사건을 통해 탐진치의 족쇄에서 열반에 이르렀는지 한번 알아보고 싶었기에 뮤지컬 싯다르타를 감상해보기로 했다.

도대체 우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라는 이름 아래, 예수의 일생처럼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배울 수 없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생과 깨달음의 과정을 뮤지컬에서 다루었다. 지난 718일 오후6, 그리고 19일 오후2'뮤지컬 싯다르타'(극본 연출 성천모, 작곡 조범준)가 군포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펼쳐졌다.

불과 열두 살의 나이로 카필라바스투의 태자로 즉위한 싯다르타(김보강)는 수레바퀴에 올라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나온 싯다르타는 약육강식의 자연을 목격하게 되고 사색하는(생각하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열아홉 살 때 혈족 야소다라(허윤혜)와 결혼하지만 그의 마음은 천민들의 삶에 천착돼 있었다.

너무도 고통스런 천민들의 삶을 보면서 비통한 삶을 살아야 하는 천민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자신 역시 삶은 곧 고통이라는 생즉고(生卽苦)의 늪에 빠져있음을 깨닫고 각성자로 나선다. 자신이 전륜성왕이 되어 노예를 해방시키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다 한들 그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싯다르타' 공연 일부분.
뮤지컬 '싯다르타' 공연 일부분.

권력과 욕망, 모든 것은 제행무상일뿐

뮤지컬 싯다르타의 원작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배고픔을 견디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릴 줄 아는 존재라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 이야기처럼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 기아와 병마를 선택한다. 인간이 부딪치는 최악의 상황인 배고픔을 견딜 수만 있다면 웬만한 미혹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그는 고행이나 선정이 주는 카타르시스 역시 마음을 흔드는 요체일 수 있기에, 이 모든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중도(中道)라는 길을 선택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열반의 세계 말이다.

싯다르타는 산스크리트 언어로 목적에 도달한 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린 시절에 붙여진 예언적 별칭이다. 불교란 고등종교이며 종교란 절차와 예례가 있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무수한 계단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규례와 장식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의 인간이 만든 절차일 뿐 싯다르타는 결코 그런 절차를 만든 적이 없다. 예수가 건물로서의, 직책으로서의 기독교를 만들지 않았듯이.

뮤지컬 싯다르타는 불교의 원리와 근본을 논하는 게 아니라, 깨달음의 핵심을 노래할 뿐이다. 미투와 성희롱과 성폭행이 난무한 이 세상 속에서, 오늘 존재하다가 내일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쓸모없는 비판과 갈등. 혹세무민의 각종 정책과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자들의 꼼수, 인간사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건만 이 덧없음을 심해탈처럼 깨닫기란 쉽지 않다.

흔들림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강력 추천

'단식을 할 줄 알고 강물과의 대화를 통해서' 오늘 살아가는 이 현재도 결국은 과거가 되고, 아직 붙잡지 못한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다시 오늘이 되는 이 윤회의 세계를 알기만 해도 우리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작은 부처들이 될 수 있다.

2600여 년 전 사키아 민족의 후예이자, 옥카카 왕의 후손이며, 카필라의 태자와 슛도다나의 장자였지만 보리수 아래에서 인류 최초로 스스로 깨달은 자가 되었던 싯다르타, 붓다와 짧게나마 동행했던 뮤지컬 싯다르타.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한편의 뮤지컬에 불과하지만 흔들림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심해탈의 선물이 되었던 작품이 아닐까 싶다.

2008년에 설립, 10여 년간 어린이뮤지컬, 홍길동, 온조, 스타라이트 등 다양한 창작뮤지컬의 제작 활동을 해 온 엠에스엠시(프로듀서 김면수)가 무대에 올린 뮤지컬 싯다르타는 하반기에도 대구, 부산에서도 순회공연을 할 계획이다. 미혹에 쉽게 빠져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싯다르타 부산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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