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과 성취하면 산냐 불필요

초기 경전은 산냐 활용 말하고
금강경에선 버리라고 강조해
여래지는 산냐 초월했기 때문

등현스님
등현스님

<금강경>에서는 아상과 법상의 산냐(想)를 없애야 할 것을 주로 강조하지만, 또 일체의 산냐를 버려야 할 것을 동시에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초기불교의 경우에는 산냐를 3법인 등의 건전한 산냐와 자아의식을 일으키는 빠빤짜인 불건전한 산냐로 나누면서, 불건전한 산냐는 고통과 윤회의 원인이기에 버려야만 하지만, 건전한 산냐는 해탈의 원인이라 하여 계발시킬 것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부분은 첫째, 일체 산냐(想)를 모두 없애고 사는 것이 일반인들의 삶에서 가능한 것인가와 둘째, 왜 두 경전의 산냐에 대한 이해 방법이 다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먼저 결론부터 내리자면 두 경전의 산냐에 대한 이해 방법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초기 경전에서 지향하는 건전한 산냐는 수행 과정에 있는 수행자(有學)가 어떻게 산냐를 활용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수행의 과정을 다 성취한 아라한과(無學)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정견과 정사유의 실천적 방법으로 건전한 산냐를 잘 활용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것이다. 반면에 금강경에서는 일체의 보살도를 모두 성취한 여래지(如來地)의 입장에서 산냐를 다루기 때문에 모든 산냐를 초월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구차제정의 수행은 산냐(想)를 순차적으로 여의는 과정이다. 멸진정(滅盡定)은 상수멸정(想受滅定)이라고도 하며, 이때의 상태는 일체 산냐를 여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앞의 4선은 모두 정신적 즐거움과 신체적 행복감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상태가 선(禪)이고, 그러한 것들이 없으면 선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선정(禪定)의 희락은 오욕락의 욕망을 여의어야 발생하는 것이고, 더 높이 올라갈수록 수상행을 여의어 더 미세한 식을 다스리는 것이다. 

각관(覺觀, 심사(尋伺)의 구역)이라는 관찰과 사유가 있는 즐거움은 초선인 반면, 2선은 각관을 여읜 정신적 즐거움과 신체적 행복감이다. 제2선은 초선과 동일한 희와 락을 경험하지만 반면에 거친 상념을 버린 선정의 상태이다. 제3선은 관념적으로 경험되어지는 즐거움인 희(喜)를 버리고 실제 몸으로 경험되어지는 신체적 행복감인 락(樂)만을 느낀다.

그러므로 제3선은 제2선에 비해서 좀 더 순도 높은 상념의 상태임을 알 수가 있다. 제4선은 락마저 버려서 고락희우가 다 쉬어진 평정의 상태이며, 이때에 법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주관적 감정을 떠나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제4선의 상태를 초선과 비교한다면 고락희우의 감성적 산냐가 쉬어진 것을 알 수가 있다.

공무변처에서 무소유처까지의 정(定)의 상태는 공간만이 무변하다는 산냐(空無邊處)와 그 공간을 인식하는 식만이 무변하다는 산냐(識無邊處), 그리고 공간과 공간을 의식하는 식도 모두 놓아버린 아무것도 없다는 산냐(無所有處)라는 미세한 산냐들을 놓아버린 상태이고, 비상비비상처에서는 산냐도 아니고 산냐가 아닌 것도 아닌 미세한 욕구, 의도만 남아있는 행(行)의 경지를 말한다.

이처럼 4선에서는 수(受)를, 공무변처에서 무소유처까지는 산냐(想)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는 행(行)을 단계적으로 놓아가다가 멸진정에서 모두 놓아버린 것이 구차제정의 수행이다.

그러므로 초선에서 4선까지의 수행은 아직 잡아야 할 산냐가 있는 것이나, 멸진정의 상태 또는 멸진정을 체험한 자는 더 이상 잡아야 할 산냐나 행이 없는 상태이다. 멸진정을 과(果)로 본다면 멸진정 이전을 도(道)로 보아야 하고, 도의 상태에서는 잡아야 할 산냐가 필요하다면, 과의 상태에서는 일체의 산냐를 모두 놓아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일체 산냐를 여읜다’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에서 수행에 필요하다고 여기는 건전한 산냐는 수행 과정의 도를 실천하는 수행자의 입장이고, 금강경의 완전한 샨냐 척파는 수행의 과를 얻은 여래지(如來地)의 상태이므로 서로 다른 차원에 해당되기에 서로 상충되지 않는 것이다.

[불교신문3603호/2020년8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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