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문광스님
문광스님

➲ 광화문의 좌청룡과 우백호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 중심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자금성(紫禁城)과 천안문(天安門)이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천안문 광장에서 앞을 바라볼 때 왼쪽인 좌청룡에 ‘중국 국가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고 오른쪽인 우백호에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인민 대회당’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풍수지리학에서 좌청룡은 ‘정신’과 ‘기백’을 상징하고 우백호는 ‘물질’과 ‘현실’을 상징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중국 베이징의 중심배치는 매우 이상적인 것이다. 내가 몇 년 전 베이징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바로 이러한 배치가 보여주는 중국인의 줏대 있는 자존감이었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의 상황을 보면 정신을 상징하는 좌청룡 자리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이 보란 듯이 버티고 있고, 현실을 상징하는 우백호 자리에는 ‘세종문화회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 베이징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풍수학의 이론이 맞는다고 한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의 우리의 정신문명은 미국의 문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 조선 육조거리와 현 광화문거리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현재의 광화문 거리의 조선시대 모습이 궁금해졌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국가의 중추 기관인 육조 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배열을 현재의 행정기관과 배대해서 살펴보면 매우 의미 있는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에서 보듯이, 먼저 왼쪽 좌청룡 쪽에는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가 배치되어 있었다. 오른쪽 우백호 쪽에는 삼군부,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가 나란히 자리했다. 국정과 관련된 중심적인 기관들이 좌우로 총망라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의 국무총리와 부총리격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함께 국정을 수행했던 의정부 자리는 현재 건물 없이 비워져서 ‘시민 열린 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민이 곧 영의정이요, 국민이 국정을 직접 수행하는 민주사회가 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 다음으로 오늘날 국내 행정을 총괄적으로 관할하는 행정안전부에 해당하는 이조(吏曹)가 위치하고 있었고, 지금의 주한 미국대사관 자리에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한성부(漢城府)와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경제기획원 역할을 하던 호조(戶曹)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대사관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지 한 눈에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대편에는 지금도 정부청사의 일부와 외교통상부가 남아서 조선시대의 예조(禮曹: 교육부, 문화부, 외교부), 삼군부와 중추부(군사와 왕명 출납), 사헌부(감사원)의 터전을 지키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국방부와 법무부에 해당하는 병조(兵曹)와 형조(刑曹)의 자리를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한국의 힘은 무력과 형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서 나오는 것임을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문화저력인 한류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이유가 어쩌면 국가의 중심축이자 생활과 현실을 상징하는 우백호의 핵심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을 두었던 한국인의 문화 사랑에서 기인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계의 문명이 무(武)에서 문(文)으로 전환되어 가는 것을 우리 한국인은 특유의 지혜로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광화문 세종로 거리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는 세종문화회관과 주한미국대사관. 사진=crowdpic
광화문 세종로 거리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는 세종문화회관과 주한미국대사관. 사진=crowdpic

➲ 美대사관 서풍과 처가살이

미국에서 해외포교를 하던 숭산스님과 국내에서 <화엄경>을 번역하던 탄허스님이 만나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 차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숭산스님이 세계적인 대국인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을 벌인다고 하자 탄허스님은 단호하게 미국이 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단다. 당시 미국이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세월이 흘러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자 숭산스님이 선배인 탄허스님에게 어떻게 그것을 미리 알았냐고 물었다. 탄허스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역학(易學)에 입각해서 볼 때, 미국은 서방(西方)으로 쇠(金)를 상징하는 태방(兌方)이고, 베트남은 남방(南方)으로 불(火)을 상징하는 이방(離方)이므로, 쇠가 불에 들어가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미국이 베트남으로 들어가서 전쟁을 할 경우에는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는 말씀이었다.. 

이처럼 탄허스님은 역학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인연법에 대해서도 설파한 적이 있었다. 미국은 태방(兌方)으로 소녀(少女)를 상징하고, 한국은 간방(艮方)으로 소남(少男)을 상징하므로, 젊은 선남선녀의 만남과 같아사 가장 이상적인 궁합을 가진 부부의 인연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역학에서는 ‘간태합덕(艮兌合德)’이라 하는데 간방과 태방이 본래 찰떡궁합이라는 의미이다. 

스님의 이러한 역학적 견해를 수용한다면 그동안 우리 한국은 가난한 신랑 집이었고, 미국은 부유한 처갓집인 셈이고 불가피하게 처가살이를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6·25한국전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미동맹을 맺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은 불가피하게 처가의 덕을 본 것이 맞다고 봐야 한다.

일제강점기와 6·25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우리는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이든 잡아야 했다. 한미 양국 간의 상호협력은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미국은 우리가 선망할 만한 선진국이자 모범국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한 미국대사관 자리도 국가의 중심 자리에 잡도록 허락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곳이 정신과 기상을 상징하는 좌청룡 자리가 되다 보니 반세기동안 미국 바람인 서풍(西風)이 심하게 불어 닥쳤던 것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야 큰소리 좀 칠 수 있게 되고, 영어를 좀 할 줄 알아야 어디서든 명함을 내밀 수 있었으며, 개화된 사람이라면 교회나 성당에 좀 나가야 되는 줄 아는 사회가 되었다. 

엄연히 우리의 땅인데도 불구하고 한여름에 비자를 받겠다고 미국 대사관 밖에 겹겹이 줄을 서서 진땀을 흘리며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주한 미국대사관도 광화문 세종로를 떠나 용산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여느 부부의 인연이 그러하듯이 한국과 미국 역시 그동안 많은 애증이 교차해 왔다. 한 쪽에서는 반미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성조기를 들고 행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광화문 세종로의 배치와 조선시대 육조 거리(오른쪽)를 비교해 보면 많은 상징성을 발견하게 된다.일러스트=한성대 이상원 교수
현재의 광화문 세종로의 배치와 조선시대 육조 거리(오른쪽)를 비교해 보면 많은 상징성을 발견하게 된다. 일러스트=한성대 이상원 교수

➲ 미군이전과 민족주체성 회복 

한국을 둘러싼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대한 탄허스님의 역학적 분석의 결론은 이러하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열강 가운데 한국이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하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며 앞으로도 미국과의 관계는 절대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나라로 철저히 실리적인 면을 고려하되 ‘불가원(不可遠) 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장남(長男)을 상징하는 진방(震方)인 중국이 가지고 있는 갑질의 DNA는 통일대국이 될 때 항상 지배 야욕으로 한반도에 표출되었기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러시아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주변 강대국 가운데 그나마 믿고 의지하며 우호와 동맹을 유지할 만한 나라 1순위는 미국이라는 것이 탄허스님의 지론이었다. 그러한 전제하에서 우리 국민이 또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속담에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말이 있듯이 미국이 아무리 우리에게 소중한 인연이라고 해도 주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제의 한국보다 내일의 한국이 더욱 찬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명석하게 해결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한민족의 중요한 터전인 용산(龍山)에서 미군이 이전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될 숙원사업이었다. 나는 해방 이후 국가에서 잡은 터전 가운데 가장 잘한 것이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용산이라는 위대한 땅을 우리 민족이 제대로 활용해본 적이 없었다.

13세기 몽고의 쿠빌라이 칸이 일본 원정을 위한 병참 기지로 활용한 이래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의 고니시(小西行長)와 가토(加藤淸正)가 군대를 주둔시켰고, 임오군란 뒤에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용산에 주둔하면서 명성황후 시해를 주동했고 식민 수탈의 교두보로 활용하며 용산의 힘을 자신들의 지배에 적극 활용했다.

해방이 되어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나 했더니 미군이 지금까지 용산을 차지하고 사용해 왔다. ‘용산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지리학의 전언(傳言)이 있다. 앞으로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고 그곳이 민족 공원으로 변모되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니 참으로 경사스런 일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 땅의 위대한 힘을 더욱 더 실감해야 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 훨씬 더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젠 서서히 서풍(西風)이 잦아들고 동풍(東風)이 몰아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각 계의 리더들은 동양적 안목과 전통적인 지혜를 갖추고 세계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주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지성을 갖춘 이 땅의 국민들이 마르지 않는 슬기와 지혜의 안목을 제공해 주리라 믿는다.

[불교신문3603호/2020년8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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