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학 계절학기 중 오랜만에 번개팅으로 만난 서울대 총불 법우들 사이엔 최근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정치인의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온라인 강의와 끝이 없는 시험의 산(山)속을 헤매고, 숙소와 대학원 연구실을 맴돌며, 구태의연한 인간관계 사이를 서성이다, 지쳐서 나타난 서울대 총불 법우들의 다크서클이 표현하는 핵심감정은, 허망함과 혼란스러움이었다. “장래에 공익을 위해 큰일을 도모하려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정신건강을 잘 돌보고, 자기 안에 ‘공간’을 마련하며 살아야겠어요.” 지도법사의 조심스러운 한 마디에 쓸쓸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 

#2
“법우들! 이번 주는 어떤 한 주였나요? ‘세 줄 일기’로 나눠 볼까요?” “깨톡! 깨톡!” 단톡방을 울려오는 총불이 법우들의 세 줄 일기.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을 뭉근히 깨우는 세 줄이 있다. *이번 주 힘들었던 일 :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문득 갈수록 연로해져 가시는 것 같아, 슬펐다. *이번 주 힘 났던 일 : 이번 학기 들어 스터디원들이 네 명이나 늘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다음 주는 어떤 하루? : 더 낮은 자세로, 한 글자 한 글자 바둑의 ‘복기’를 한다는 심정으로 정진해야겠다.

복기(復期)! 바둑을 둘 때 차후 승부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이미 끝난 승부를 한 수씩 그대로 바둑판 위에 재현해 내는 과정.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는 그의 저서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에서, “복기는 유일하게 패자가 승자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라며 복기의 소중함을 짚었다.

누구나 자신이 잔뼈 굵어 온 사회의 집단 무의식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의도했든 무심했든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산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한 사건을 바라보며, 그를 통해 내 걸어온 길을 되짚어 기꺼이 복기할 수 있는 자는 진정 용기 있는 수행자다.

#3
하안거 결제(結制) 중, 머물고 있는 진주 용화사에 작은 시민선방(禪房)을 열어 승속이 어울려 참선 정진에 들어갔다. 본래면목으로 돌아가 활연(豁然)히 눈을 뜨는 길목에서 마주하게 되는 숱한 의식세계의 장벽들은, 마치 이 산 넘으면 저 산 만나듯 다차원적이라, 단발성으로 잠시 열리는 깨어남 수준의 체험만으로는 ‘일을 마친 도인(道人)’ 흉내를 내긴 부끄럽다.

알아차림은 자신을 포함한 세상 속을 도망치지 않고 활발발 살아내며, 매 순간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또렷이 눈을 뜨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일’이다. 하여, 깨달음은 통합적이고 자유로우며 그래서 애씀이 없는 자연(自然)이라고, 스승들께선 삶을 통해 증명하곤 하셨다.

시민운동가로서 행정집행가로서 획을 긋는 훌륭한 역할을 다하고도, 자신의 몸과 감정, 욕구, 영성의 눈이 통합적으로 열리지 못한 탓으로 저지르고 만 그의 어떤 행위들은, 그의 이번 생 인생학교 공부가 더 이상 ‘아름다운 소풍’으로 맺음될 수 없게끔 오염시켰다.

그 뒷모습을 향한 우리의 혼란스러움과 안타까움은 물론, 그 어떤 정략과 변명으로도 이상화 혹은 악마화 시킬 수 없는 그의 행동들을 향한 우리의 슬픔을 애도하고, ‘오염’조차도 한 생의 공부 과목이었다면, 이제 세포의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복기’할 시간이다.

연약한 한 인간 의식의 이 모든 장벽들을 건너건너 돌아 나오는 바라밀의 길목에서, 강력한 화두(話頭) 한 마디, 간절한 여름 안거(安居) 한창인 용화사 화림선원 수행자들의 용광로 속으로 산화락(散花落) 한다. “이제, 고향집에 돌아와 쉴 수 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한 바로 당신 덕분에! 고맙습니다.”

[불교신문3603호/2020년8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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