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따라 춤추는 ‘중생심’을
‘평상심’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
수행정진 게을리 하지 않은 후에
‘평상심’ 이루게 됨을 바로 알아야

  ‌옛 선사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 하여 ‘평상시 마음이 그대로 불도’라고 한다면, 굳이 힘들게 수행할 필요가 있는가?
 

감정에 따라 춤추는 ‘중생심’을
‘평상심’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
수행정진 게을리 하지 않은 후에
‘평상심’ 이루게 됨을 바로 알아야


A    도를 아십니까? 한 때 유행했던 말입니다. 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깊은 산 속의 단어요, 신비주의적 세계에서나 사용하는 비현실적 단어쯤으로 여기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불교의 도가 ‘평상심시도’라 듣는다면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평상심시도’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 때와 같은 마음이 불교의 진리’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불교는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굳이 힘든 수행이 따로 필요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표면적인 어구 풀이만을 한다면 본래의 뜻과 어긋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 말의 원류입니다. ‘평상심이 곧 도’라는 말은 중국 조주스님과 남전스님의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제자인 조주스님이 “어떤 것이 도입니까?”라고 묻자 스승인 남전선사가 “평상심이 곧 도이니라”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남전스님의 이 대답은 육조 혜능대사의 ‘본래 한 물건도 없다’라고 하신 그 마음과, 남악대사의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는다’라고 하신 그 마음을 이어받아 ‘평상심이 곧 도이다’로 표현한 스승인 마조대사의 말씀을 또 체화하여 사용한 답입니다. 짧게는 4대에 걸친 구도의 화두가 피워낸 열매요, 길게는 부처님부터 전해진 마음공부의 핵심을 한 마디로 정리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말을 꺼낸 마조대사의 평상심에 대한 설명입니다. “일부러 조작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하지 않으며, 좋아하고 싫어하여 가지거나 버리지도 않고, 죽으면 끝으로 단절된다거나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것이 평상심이다.(마조어록).” 불도 즉 불교는 형이상학적 가르침이나 신비주의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불교를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마조대사는 ‘평상심’이 불교임을 널리 알린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에 온갖 감정에 따라 춤추는 ‘중생심’을 ‘평상심’으로 이해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마조대사가 설명했듯이 꾸민 마음 흐트러진 마음, 시시비비에 헤어나지 못하는 마음, 화내거나 분노하는 마음, 좋아서 흥분하고 싫어서 우울한 마음과 같은 중생심을 벗어나야 평상심에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해탈의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피나는 수행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은 연후에야 비로소 ‘평상심’을 이루게 됨을 올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신문3603호/2020년8월1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