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천년처럼 사는 나는 하루살이”
“하루를 천년처럼 사는 나는 하루살이”
  • 정현숙 마하무용단장
  • 승인 2020.07.30 11:04
  • 호수 3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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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선화 마하무용단장이 그리는
‘나의 삶, 나의 불교’ ④ 인생 전환점


가장 행복했던 8년 전 봄
느닷없이 찾아온 암 진단
가족 친구들 덕분에 극복

또 찾아온 폐암 전이 소식
나를 찾고 열심히 사는 계기
매사 감사하며 오늘도 웃는다

2012년 7월17일 제헌절 밤 9시 무렵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한 여름인데도 추위가 엄습했다. 얼마나 떨었는지 팔뚝에는 닭살이 돋았다. 집도의 선생님은 그날 7명의 환자를 수술했는데 내가 마지막이었다. 

그해 봄은 참 찬란했다. 신록이 푸르름으로 짙어가고 온갖 꽃들이 앞 다퉈 꽃망울을 터트리며 벚꽃은 비가 되고 눈이 되어 흩날리며 화려한 엔딩을 장식하던 분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더군다나 딸아이가 출연한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쳐서 인기가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그해 5월은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으로 충만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91.0×72.7㎝.
화양연화(花樣年華) 91.0×72.7㎝.

그런데, 목젖 아래쪽이 뾰족한 몽우리가 눈에 거슬릴 정도로 자라있었다. 별 대수롭지 않게 병원을 갔는데 뜻밖에도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아, 뭔가 있구나’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미 마음 안에는 ‘암 이구나’라는 절망감이 스며들었다.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휴대폰을 쥐고 밤새도록 ‘갑상선암’을 뒤졌다. 이미 내 마음의 절반은 죽음이라는 공포가 뒤엉켰다. 여러 밤을 새우고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이 정말 길고 공포였다.

수술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친한 지인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아주 흔한’ ‘암도 아니다’ ‘착한 암’이다, ‘주위에 갑상선암 참 많다’라며 위안을 준다. 갑상선암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내가 걸린 유두암 종류는 전체 갑상선암의 80~90%를 차지하며 예후가 좋아 수술 후 치료를 잘 받으면 생존율이 높다. 

1시간이면 끝난다던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밤 9시에 시작된 수술이 2시간 넘게 걸렸다는 것을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한 뒤 알았다. 담당선생님은 개복(開腹)하니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고 갑상선 종양도 초음파로 들여다 본 것 보다 크기가 더 커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예상보다 힘든 수술이었다며 수술 시간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나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은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가족이었다. 예상보다 길어진 수술 시간에 남편과 아이들, 친정ㆍ시댁 식구들은 무슨 일이 있나 마음 졸이는,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바로 그 순간이 지옥이었을 것이다. 수술이 잘 되어 갑상선 전체를 다 제거했다고 선생님이 수술 결과를 들려주셨다. 의료진의 정성과 온 가족의 염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수술로 끝이 아니었다.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수술 3주 뒤 요오드 치료에 들어갔다. 면회가 금지된 특수시설(납병동) 병실에서 4~5일 가량을 혼자 보내는 방사성 요오드 치료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절대 고독의 시간이다. 물 1.5리터 3병, 이온음료 1병, 껌, 사탕 1봉지, 신맛 나는 과일 1개, 책과 노트북이 5일간 나와 함께 보낼 물건이다.

나는 임파선(림프절)에 전이된 상태라 고용량의 요오드를 투여해 혹독할 정도로 많은 물을 마셔야했다. 평소 물을 잘 마시는 편이지만 치료목적으로 억지로 마셔야하는 물은 쉽지 않았다. 특수 병실은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구토를 유발하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요오드 치료방법은 캡슐 1알을 먹고 30분정도 가볍게 걷는다. 2시간 이후부터 식사는 가능하며, 입원동안 계속 물 음료 사탕 과일을 먹으며 소변으로 방사성요오드를 배출시키고 침샘분비를 돕게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치료 방법이다. 

특수 병실에서 4~5일 혼자 지내니 만감이 교차했다.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게 무엇인가?’하는 안타까움과 서운함도 들고 ‘인생무상’도 느껴졌다. 결국은 나로 돌아왔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아온 인생 밖에 없었음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하고 병원을 오가며 투병하는 동안 나와함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며 함께해 준 친구들이 있다. 경미와 영심이다. 지금은 서울로 이사를 온 탓에 얼굴을 자주 못 봐서 아쉬운, 늘 고맙고 소중한 친구다. 인기 만화 주인공과 같은 이름을 가진 영심이는 만화 속 인물처럼 늘 웃고 밝고 유쾌한 친구다. 우리 집과는 거리가 먼데도 밝게 웃으며 달려와 경미를 태우고 또 다시 30분 남짓 걸리는 화순 전남대병원까지 같이 갔다.

두 친구는 앞에 앉아 톰과 제리처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웃고 차안을 행복 바이러스로 가득 채웠다. 말 안 해도 안다. 암환자인 친구가 혹시 우울할까봐, 마음 상하지 않도록 원래 잘 웃고 즐거운 친구들이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더 배려하고 평소보다 더 높은 목소리로 큰 몸짓으로 내가 조금도 우울할 틈이 없도록 노력한다는 것을. 그런 친구들 덕분에 나는 뒷좌석에 앉아 죽기보다 싫은 병원 가는 괴로움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친구들 정성 덕분에 빠르게 회복하며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방사성요오드 치료를 마치고 최종검사까지 끝낸 뒤 퇴원준비를 하는데 의사선생님이 갑자기 전신CT를 찍어보자고 한다. 결과는 참담했다. 가족 친구들의 도움과 의지로 가까스로 버티던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 한 절망감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 절벽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기분이 이럴까?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은 꿈속처럼 저 멀리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우리 셋은 흉부외과로 달려갔다. 한 생명이 오가는 순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사선생님은 냉정하고 담담하게 수술 날짜부터 꺼낸다. 갑상선암을 맞이할 때는 차라리 극락이었다. 폐암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엄청났다. 더군다나 두 번째 암이다. 수술과 식이요법 특수병동에서 홀로 지낸 5일간의 투병 끝에 희망이 아니라 더 큰 절망이라니…. 

주변 권유를 받아들여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겼다. CT촬영 결과 양쪽 폐에는 흰색 깨 모양의 작은 점들이 다발로 흩어져 있다. 나의 서울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세포 크기가 커지는지, 모양 변형이 생기는지 정기검사를 통해 추적 중인데 다행히 아직 변화가 없다. 

암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주었지만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웠고 나를 되찾아주었다. 나는 하루살이다. 내 몸 속 암은 잠시 활동을 쉬는 활화산과 같다. 언제 활동을 재개할지 모른다. 오늘 일 수도 있고 내일 일 수도 있다. 가급적 늦게 움직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다. 그날이 언제이든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 뿐이다. 어느 고승께서 노래한 대로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사는 것처럼.”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주어지는 하루를 선물로 여기며 시간을 쪼개고 쪼개 최선을 다한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며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눔 활동에 매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준 갑상선암이어서 감사하고 회복하여 활동할 수 있어 감사하다. 감사할 일이 많아졌다. 나는 오늘도 꽃단장하고 허리 곧추 세우고 미소 지으며 집을 나선다.

글·그림=정현숙

[불교신문3602호/2020년7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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