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놓으면 모두 호시절인 것을…”

“봄에는 갖가지 꽃, 가을에는 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눈이라 마음에 걸림 없이 한가롭다면 이야말로 인간세상 호시절이라.” 이 선시는 남송시대 <무문관>의 저자이며 조주무자 공안을 참구하다 점심공양 북소리를 듣고 문성 오도한 무문혜개(無門 慧開) 선사께서 계절의 변화를 보고 느끼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경계를 대자유인의 삶의 지혜로 활활 자재를 나투셨다.

산다는 일은 정해진 답은 없지만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늘 일어나고 사라진 경계에 마음 씀이 뒷걸음으로 길을 걷는 것 같다. 무애한 세간살이 누가 묶어놓은 것도 아닌데 왜 이다지도 망념에 끌려 마음은 널뛰기하고 있는가. 이성의 힘으로 쓸데없는 일에 마음 상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지혜는 언제쯤 힘을 얻을 수 있을까. 15년 전 시골로 스스로 들었건만 왜 이다지 한가하지 않은지, 또 서재에는 읽지도 않을 필요하지도 않는 책은 왜 이리 많은가.

열어젖힌 창문으로 들이닥치는 햇볕은 티끌 하나 없이 형형하게 설하고, 무질서하게 자라난 잡초들도 제각기 터를 잡고 어느 구석 악한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 이순이 넘게 세간살이 하였건만 아무것에도 한가롭지 못한 이 공부는 어찌해야 할 것인지 묻지만 답을 찾지 못한다. 머리에 타고 있는 불도 끄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곳으로 걸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끝이 예리한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싶다.

꽃, 달, 바람, 눈 어느 하나 먼저 내세울 수 없어 몇 년 전 소품에 오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새롭다. 한 글자만으로도 작품이 되는 참으로 아름답고 중량감 넘치는 이 글자, 바람이라고 쓰면 바람 소리가 나야만 하는데 소리는커녕 획도 살아있지 못하는데 이 일을 어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서예’라는 이 한 물건 안고 산지 50년이 넘었건만 갈수록 깊어지는 것은 복중에 큰 복이다. 글씨는 바로 그 사람이기에 한 작품, 한 획이 나의 영적인 표현이고 살림살이다. 작품은 불멸의 논문이며 인문학적 소양의 무서운 척도가 된다. 

50년 살다보니 49년 헛살았다고 대성통곡한 대 선비도 환갑잔치에 59년을 헛살았다 탄식하셨다니 나의 생 내 공부는 어떠한가. 돌이켜보면 한 뼘도 안 되는 보잘것없는 지난 시절들,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이 서재에 가득하고 써야 할 먹들이 몇 십 개이며 붓은 몇 대물림 할 정도로 있으니 이 또한 나를 묶어 놓는다. 오늘부터 다시 태어나, 내 스스로 미망해 묶인 나의 망상의 철끈을 잘라버리고 대자유인의 삶으로 본래 자기 본래 성품으로 자유자재하고 싶다. 

내 서재에 ‘무우재(無憂齎, 근심 없는 집)’라는 당호를 붙였다. 욕심이 분에 넘친다. 한가함에 주인이 되고 적정함마저도 빠져 들지 않는 그런 분을 나는 가까이 두고 산다. 아껴 써야 할 만큼 귀한 시절인연이고 복이다. 그와 마주하는 순간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인다. 비어있는 옆집의 나무들이 열고 가는 허공의 길에는 걸림도 없고 주인도 없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오고 감이 없지만 당신은 어디에 마음 잡혀있는가. 한 생각 놓으면 모두가 좋은 시절인 것을.

[불교신문3602호/2020년7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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