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김영

타 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부근에 사는 이모가 생각났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지난 명절에 찾아뵙지 못했고 어수선한 시절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집으로 향하던 남편도 흔쾌히 방향을 바꾼다.

마침 눈에 띄는 과일가게에서 부랴부랴 수박을 한 덩이 사서 이모님 댁으로 달려간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할 일이 많은 이모라 혹 부재중이면 어쩌나 싶어 전화를 먼저 걸어본다. 이모는 벌써 자리에 누웠다며 오지 말라고 하신다. 이렇게 전화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완강하게 방문을 막으신다. 

벌써 주무신다니 우리를 못 오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모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계속 일을 하고 있어서 정말 피곤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겠다고 그러고는 일단 전화를 끊었다. 난데없이 잠결에 조카사위를 맞이하는 일이 번거로우실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열 살이나 되었을까,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내 발걸음은 늦은 나이에 갓 결혼한 이모 집으로 향했다. 이모는 시어른을 모시고 살았는데, 그분들은 농사를 짓는 것도 모자라 젖소도 여러 마리 키웠다. 이모는 때마다 시마다 얼마나 해야 할 일이 많았을까.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시골 이모 집을 찾아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이모는 혼자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곳에서 사돈 어르신의 대접 아닌 대접을 받고 다시 도시의 우리 집으로 돌아올 때 이모는 내게 적잖은 용돈까지 쥐여줬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이모 집을 찾았으니 참 철없던 시절이었다.

남편이 골목 한 귀퉁이에 주차한다. 인터폰 소리에 잠옷 차림을 한 이모가 맨발로 밖으로 뛰어나온다. 온몸으로 맞아주는 이모의 모습에서 엄마의 실루엣을 본다. 이모는 그 어느 때보다 생전의 엄마와 닮았다. 이모의 말투와 목소리는 영락없는 엄마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다. 엄마, 그곳에서 아버지와 잘 계시는 거 맞죠? 

여전히 활기차고 혈색이 좋아 보이는 이모가 미리 준비한 듯한 김치와 밑반찬을 챙겨 두 손에 가득 들려주신다. 아닌 밤중에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철없는 조카 부부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뱉으시면서. 

[불교신문3602호/2020년7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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