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한글화 원력’ 불교설화와 저술로 회향

해인사에서 세운 원력 이어
동국역경원서 경전번역 몰두
불교신문에 쉬운 글로 게재

13편의 글 설화집으로 출간
송재운교수 “냉철한 글쓰기와
쓴 글에 책임지셨다“ 회고

법정스님이 초기부터 참여해 온 경전번역의 메카였던 동국역경원이 발간한 ‘한글대장경’ 전집.(일부)
법정스님이 초기부터 참여해 온 경전번역의 메카였던 동국역경원이 발간한 ‘한글대장경’ 전집.(일부)

해인사에 머물던 법정스님은 글과 인연을 맺으며 서울을 드나든다. 통도사에서 운허스님을 도와 <불교사전>을 편찬한 뒤 계속된 원고지와 인연은 서울나들이를 자주하게 한다. 서울에 올라오면 특별히 머물 곳을 정하지 않았고, 조계사와 선학원이 위치한 서울 종로 인근에서 며칠씩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영혼의 모음>에 수록된 ‘신시 서울’에는 종로 삼청동의 칠보사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보인다. 뚝섬 봉은사에 거처를 마련하기 이전 시절로 보인다.

처음 서울에 올라온 계기는 운허스님을 도와 경전번역에 대한 일들 하는 게 주 목적이었다. 그 본래의 일은 법정스님 스스로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했고, 저술로 성과가 나타났다. 그 중간 기착지가 대한불교(불교신문 전신)였고, 1963년 4월 1일 ‘어진 사슴’을 연재하며 법정스님의 글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진 사슴’ 이외에도 1963년에는 4편의 설화가 더 게재됐으며 불교신문에는 총 13편의 설화가 들어있다. 이때도 법정스님은 대장경의 한글화를 위한 경전번역에 몰두한다. 불교신문에 게재한 원고 역시 대장경을 번역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불교설화 ‘어진 사슴’은 고려대장경(해인사 팔만대장경)에 들어 있는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내용이 담긴 <불설구색녹경(佛設九色鹿經)>을 번역한 것이다. 방대할 뿐 아니라 해석하기 어려운 한문경전을 알기 쉬운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은 법정스님의 뛰어난 경전해석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두 번째 불교설화는 ‘조용한 사람들’이다. 1963년 6월1일자에 게재한 이 설화 역시 대장경의 내용을 쉽게 옮겨놓았다.

“어느 달 밝은 보름밤의 일이었다. 포근한 달빛 아래서 사람들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가슴마다 부풀어 올랐다. 젊은이들은 마음 하는 이를 찾아가 그리움을 나누었고 늙은이는 그들대로 지나온 인생살이에서 겪은 잊을 수 없는 달밤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새삼 젊어지려했다. 그리하여 궁중에서도 임금님이 많은 신하들과 함께 어떻게 했으면 이 밤을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하고 의논하게 되었다. 신하들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렇게 아름다운 달밤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노는 것이 가장 즐거울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신하는 달이 밝기 때문에 들길을 거닐으면 마음이 상쾌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 기왕 거닐 바에야 마을 곁 숲속에서 수행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설교를 듣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고 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마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신하만은 처음부터 잠자코 말이 없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설화에서 임금님은 잠자코 있던 신하의 말을 들어 부처님이 수행하고 있는 숲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임금은 조용한 숲속에 12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경탄하기도 한다.

“오오 부처님이시여! 저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여러 가지 법을 만들어 백성을 다스리고 있음니다만 제가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 제 명령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복종하고 있는 군대라 할지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이와 같이 조용히 있게 할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셔서 이렇게 조용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부처님은 조용히 대답한다. “임금은 사람들의 겉모양만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사람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는 하지 않고.”

법정스님은 글을 맺으며 자신의 창작성을 더했다. “이 말을 듣고 난 임금남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보름달처럼 조용하면서도 밝은 빛이 번지고 있었다. 신하들도 임금님 곁에서 빙그레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부드러운 밤바람은 나뭇잎을 스치고 신하들도 임금님 곁에서 빙그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조용한 사람들’ 설화는 대장경에 들어있는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 ‘20’권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렸다. <비나야파승사>는 고대 인도불교의 비구계율을 언급한 내용의 율장이다. 여기에서 법정스님은 승가화합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간파해 전체내용을 흐트리지 않는 가운데 불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윤문했다.

한달 후인 1963년 7월1일 게재한 설화 ‘겁장이들’ 역시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 一切有部毘奈那)>의 내용을 재미있게 구성한 작품이다.

“어느 강기슭에 울창한 야자나무 숲이 있었다. 그 숲에는 여섯 마리의 토끼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바람기도 없이 고요한 어느 밤 수풀 아래서 토끼들이 자고 있을 때 익을 대로 익은 야자 열매가 제물에 겨워 강물에 떨어지면서 ‘풍덩!’ 큰 소리를 내었다. 걸핏하면 놀라고 하는 꼬마 토끼들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뛰어 달아났다.”

이렇게 시작되는 설화는 숲속의 모든 동물들이 혼비백산해 달아나다가 결국 아무 일 없이 평온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에서 법정스님은 다음과 같은 각주를 달아 글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하기도 한다.

“사람인 우리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있지도 않은 일에 겁을 내거나 기뻐하거나 하는 일이 많다. 잘 살펴보면 그와 같은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을.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다면 명예라든가 재산이라든가 죽음이나 모든 것은 시기하거나 겁내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르게 사물을 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또한 그러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경전에서는 말하고 있다.”
 

법정스님이 경전번역에 몰두하고 있을 때인 1960년대의 모습.
법정스님이 경전번역에 몰두하고 있을 때인 1960년대의 모습.

법정스님의 불교설화는 1964년 10월 4일까지 13편이 게재됐다. 이들 설화 역시 대장경에 수록돼 있는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대위덕다라니경(大威德陀羅尼經)> <장수왕경(長壽王經)> 등에서 가져와 법정스님 특유의 창작성을 발휘해 재미있고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이들 불교설화는 불교신문사가 지난 5월에 <법정스님이 세상에 남긴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로 엮어 출간했다. 지난해 법정스님 원적 10주기를 추모해 불교신문에 남겨 놓은 68편의 원고를 모아 출간한 <낡은 옷을 벗어라>에서 설화부분만 발췌해 삽화를 넣어 보급용으로 제작한 것이다.

법정스님은 불교신문(당시는 ‘대한불교’라는 제호였다)에 많은 원고를 썼다. 시기도 길어 1963년부터 1977년까지다. 정확한 시기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1960년대 말과 1970에는 주필 겸 편집국장을 맡아 활동한다. 1970년대 초에는 ‘논설위원’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법정스님은 동국역경원과 불교신문에서 번역과 언론인으로 글쓰기를 병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신문에는 경전번역, 불교논단, 에세이 등 다양한 영역의 글을 게재했다. 이러한 법정스님의 글쓰기는 불교신문은 물론 일간 매체와 타종교 매체에까지 영역을 넓혀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해인사 시절 큰 원을 세워 진행했던 대장경 번역사업은 동국역경원 활동으로 이어져 <숫타니파타> <신역 화엄경> <부처님 일생>(후에 <불타 석가가모니>로 개정 출간) <우리말 팔만대장경> <우리말 불교성전> 등 수많은 경전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으며 전법(傳法)의 횃불을 들어올렸다.

1960년대 말 불교신문에 재직했던 송재운 전 동국대교수(주간 및 편집국장 역임)는 “법정스님은 성격부터 깐깐하셨고 글쓰기도 여간 냉철한 게 아니였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책임을 지려하셨다. 뚝섬 봉은사에서 출, 퇴근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신문사에 와서 글을 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법정스님이 번역해 출간한 동국역경원 발간의 ‘신역 화엄경’.
법정스님이 번역해 출간한 동국역경원 발간의 ‘신역 화엄경’.
법정스님이 불교신문에 게재한 불교설화 13편을 엮어서 만든 책 ‘법정스님이 세상에 남긴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 표지.
법정스님이 불교신문에 게재한 불교설화 13편을 엮어서 만든 책 ‘법정스님이 세상에 남긴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 표지.

취재협조 : (사)맑고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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