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아노 병창’ 장르 창시한 예술가 최준

‘피아노 병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하고 감각적인 작곡능력을 뽐내고 있는 예술가 최준을 만났다. 그의 부모와 함께 사진을 찍는 최준 군(사진 가운데).
‘피아노 병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하고 감각적인 작곡능력을 뽐내고 있는 예술가 최준을 만났다.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최준 군(사진 가운데)의 모습.

안녕하세요? 저는 최준입니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또박또박 인사를 건네는 30살 청년 최준에겐 특별함이 있다. 그가 앓고 있는 중증 발달장애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바로 피아노 병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하고 감각적인 작곡능력을 뽐내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이야기다. 어느 누구보다 특별한 그와 715일 만났다.

1990년 태어난 부부의 첫 아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지만, 그 아이는 잘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또래 아기들이 하는 옹알이는 물론 앉거나 서려고 하지도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걱정에 찾은 병원에서 자폐증진단을 받는다. 최 군이 생후 30개월 때 일이다.

그 때부터 그의 부모는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치료에 매달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손가락 감각을 키우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장애를 이유로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피아노 학원에서 쫓겨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한 선생님의 도움으로 피아노 연주 능력을 쌓았다.

유독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걸 제일 좋아했다고 그의 부모는 회상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언어치료 목적으로 판소리를 배운 뒤, 그의 새로운 모습을 찾게 됐다. 한 소절씩 따라 읽으며 배운 판소리 실력이 쌓이게 되자 그는 더 이상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피아노와 판소리는 본인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이자 소중한 친구가 됐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는 피아노 병창이라는 장르를 세계 최초로 만들게 된다.
 

불교는 그의 예술적 역량의 근원이었다. 절에 다녀오면 스님의 염불소리는 물론, 법사 스님의 법문 그리고 도량 곳곳의 모습들을 대상으로 작곡을 했다.
불교는 그의 예술적 역량의 근원이었다. 절에 다녀오면 스님의 염불소리는 물론, 법사 스님의 법문 그리고 도량 곳곳의 모습들을 대상으로 작곡을 했다.

피아노 병창은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판소리의 한 대목이나 정가 단가 잡가 민요 등을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최 군은 본인이 직접 만든 곡을 공연하기 때문에 흔히 얘기하는 싱어송 라이터(Singer-song writer)’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는 이미 피아노 병창으로 2011년과 2013년에 공연을 열어 큰 호응을 받았다. 2014년엔 음반 발매 기념 발표회도 열었다. 가곡, 가사, 시조 등으로 만든 전통 정가곡창작 정가곡 앨범도 냈다.

무엇보다 그가 예술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본인이 직접 곡을 만드는 창작 능력에 있다. 20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작곡한 곡만 벌써 1000여 곡에 달한다는 게 그의 아버지의 설명이다. 집안 책장을 가득 채운 작곡노트가 이를 증명한다. 최 군의 음악적 재능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스님들의 염불 소리라고 힘줘 말했다.

최 군과 그의 부모가 불교와의 인연을 맺은 건 중증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 1~2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지인의 권유로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안양 한마음선원을 찾았다. 늘 부산스러웠던 최 군은 신기하게 법당에 들어가면 얌전해졌다. 어린 나이부터 절도 곧장 잘 하더니 108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특히 최 군은 스님들의 염불 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다. 청각에 민감한 그는 염불을 똑같이 따라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교적 소양은 단단해졌고, 어느덧 절에 다녀올 때마다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불문, 천수경, 금강경 등 스님의 염불소리와 법사 스님의 법문 그리고 도량 곳곳의 모습들까지. 사찰의 모든 것들이 작곡의 주제가 됐다.
 

8월4일 열리는 최준의 작곡 발표회 '서른 나기' 공연 포스터.
8월4일 열리는 최준의 작곡 발표회 '서른나기' 공연 포스터.

그의 아버지는 부처님 법을 만나고 난 뒤 많은 걸 깨달았다고 했다. “준이를 키우면서 정말 어려운 일이 많았죠. 장애를 향한 세상의 무수한 오해와 편견 등. 여전히 힘이 부칠 때가 있지만, 결국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가피 덕분입니다. 불법을 알지 못했더라면 지금껏 버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불교는 힘든 세상을 살아갈 원동력이 된 셈이다.

지금 최 군은 특별한 무대를 앞두고 있다. 그의 작곡발표회 서른나기공연이 오는 84일 오후730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 그가 작곡한 곡들이 선보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10년을 다시 시작하는 자리다. 그간 그의 두 눈과 가슴, 머리에 울림을 줬던 많은 순간과 소리가 국악 클래스 재즈 그리고 불교적인 음률로 표현된다.

특히 부처님 법이 담긴 무상’, () 사상을 표현한 색즉시공 공즉시색등 찬불 음악을 다수 선보인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의 아버지는 준이가 만든 불교 음악을 큰 무대에서 선보이는 첫 자리이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은 좌석 간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예방 지침을 철저히 준수한 채 진행될 예정이다.

이미 10차례가 넘는 개인 공연을 비롯해 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3주 앞으로 다가온 공연은 꽤 떨리는 모습이다. 사실 이날 최 군과 나눈 대화는 첫 인사좋아하는 프로야구 팀'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자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모든 대화는 그의 부모와 나눴다.

하지만 최 군과의 진짜 대화는 인터뷰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건넬 때 이뤄졌다. 그는 즉석에서 피아노 병창 공연을 펼쳤다. 본인이 직접 만든 곡으로 노래하는 모습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교훈이 전해졌다. ‘예술가 최준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기자에게 피아노 병창 공연을 보여주는 최 군의 모습. ‘예술가 최준’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기자에게 피아노 병창 공연을 보여주는 최 군의 모습. ‘예술가 최준’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 예술가 최준은…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비학교 판소리분야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를 각각 수료했다. 2003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첫 개인 공연을 비롯해 수십 차례의 공연을 펼치고 앨범을 발매했다. KBS ‘인간극장’, SBS ‘스타킹’, EBS ‘다큐프라임’ 등 다수의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따뜻함을 전한 바 있다.

종로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부문 중등부 우수상(2005년)을 비롯해 인천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 고등부 판소리 최우수상(2007년),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고등부 장려상(2008년), 박록주 명창기념 ‘전국국악대전’ 판소리 고등부 장려상(2009년),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기념 ‘MBC 스페셜 위대한 탄생’ 대상(2013년) 등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준이 오빠(김금숙 만화가 作)>’라는 책이 발간되기도 했으며 국내를 넘어 프랑스와 미국 등지에도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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