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결제 한달] 대흥사 동국선원 수행 현장

산문 밖 출입‧자유 정진 금하고
하루 꼬박 8시간 이상 용맹정진

한국불교 종통 잇는 종갓집 답게
조실, 회주, 선원장, 주지 스님 등
유례없는 폭염 속 20명 수행열기

50년 넘게 수선 안거 든 정찬스님
“일구월심의 간절함으로 정진해야”

빽빽한 수림이 만들어낸 그늘과 햇살이 머리 위로 물결치듯 스친다. 반도의 땅 끝 해남에 위치한 두륜산 대흥사. 암팡지고 절묘한 형상을 이룬 구림구곡(九林九曲)의 치밀한 숲 터널, 십리를 돌고 돌아 동국선원에 이른다.

풍진 세상을 잠시 등지고 내 안의 부처를 찾기 위한 시간. 하안거 결제가 한창인 대광명전에 들어서기 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팻말이 재차 발목을 잡는다. 절기상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다. 32도까지 낮 기온이 치솟은 77, 서울에서 400km가 넘는 길을 달려 오랜 기다림 끝에야 담찬 기운이 가득한 선원 안으로 잠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큰 사진 - 경자년 하안거 결제 한달을 맞은 대흥사 동국선원. 약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해제일인 9월2일까지 용맹 정진을 잇는다. 작은 사진 - 대흥사 동국선원 전경. 조선 제일의 명필인 추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 한국불교의 종통을 잇는 종갓집 답게 대흥사 동국선원은 아직도 위계가 성성하다. 사진 오른쪽부터 조실 보선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회주 월우스님 등 어른 스님들이 안거 마다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후학들의 공부를 돕는다.
경자년 하안거 결제 한달을 맞은 대흥사 동국선원. 약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해제일인 9월2일까지 용맹 정진을 잇는다. 

눈 푸른 납자에게 세인의 방문이 반가울 리 없다. 장판 위로 발을 옮길 때마다 삐걱하는 소리에 서릿발 같은 매서움이 꽂히는 듯하다. 옷깃 사이로 스치는 바람이 거슬릴 법도 한데 선객의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다. 거대한 침묵이 가득한 선방과 달리 객들 마음자리엔 하루에도 수천번 번뇌 망상이 울렁이고, 담금질이 지날 것이라 자못 짐작만 할 뿐이다. 

코로나는 불가에도 스몄다. 감염 예방을 위해 경자년 하안거 결제는 한달 뒤로 늦춰졌다. 다행히 윤달이 들었다. 6월6일 결제해 해제인 9월2일까지 안거가 이어진다. 2000여 명 수행자가 100개 선원에서 각고하고 분투한다. 체구연마(體究硏磨)의 역사를 쌓는 귀한 시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천년 산사에 자리한 동국선원에도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안거 기간 동안 대흥사 동국선원은 새벽3시에 하루를 연다. 청소 운력과 조공, 오공, 석공 등을 제외하면 하루 꼬박 8시간 정진이다. 입방 조건은 단 하나, 동국선원의 가풍과 청규를 따를 것. 새삼스럽고 까다로울 것은 없다. ‘화두 정진 납자만 입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별한 사유 없이 자유정진을 금한다’ ‘안거하는 동안 산문 밖 출입 및 외식은 금한다’ ‘선원 유나스님과 입승의 지시에 절대 수순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승가 공동체의 위기를 말하지만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갓집 답게 여전히 위계가 성성하다. 구도의 길 앞에서 이판과 사판의 경계는 없다. 안거 때마다 조실 보선스님은 물론이고 회주 월우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주지 법상스님에 이르기까지 큰방에 모여 등을 맞댄다.

특별한 일 없는 한, 좌복을 지키는 게 불문율이다. 대흥사 큰 어른인 보선스님과 월우스님, 정찬스님이 자리를 비우지 않으니 사중 스님들도 산문 밖 출입은 되도록 금한다. 큰 방에서 대중 생활을 하며 잠자리에 들기까지 온 몸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선원장 정찬스님은 50안거가 넘도록 제방 선원에서 정진해 온 구참 수좌다. 햇수로만 동국선원에서 11년째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입방을 허용했다. 아쉬움도 크고 한편으론 안도감도 있다. 반백년 전만해도 수행 열기가 용광로 끌 듯 했다던 스님의 말에 후학을 위한 조언을 권했다. 손사래 치던 정찬스님이 어렵사리 나지막한 당부를 건넨다.
 

큰 사진 - 경자년 하안거 결제 한달을 맞은 대흥사 동국선원. 약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해제일인 9월2일까지 용맹 정진을 잇는다. 작은 사진 - 대흥사 동국선원 전경. 조선 제일의 명필인 추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 한국불교의 종통을 잇는 종갓집 답게 대흥사 동국선원은 아직도 위계가 성성하다. 사진 오른쪽부터 조실 보선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회주 월우스님 등 어른 스님들이 안거 마다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후학들의 공부를 돕는다.
동국선원이 있는 대광명전 별원 영역으로 들어가기 전.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발목을 잡는다.
큰 사진 - 경자년 하안거 결제 한달을 맞은 대흥사 동국선원. 약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해제일인 9월2일까지 용맹 정진을 잇는다. 작은 사진 - 대흥사 동국선원 전경. 조선 제일의 명필인 추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 한국불교의 종통을 잇는 종갓집 답게 대흥사 동국선원은 아직도 위계가 성성하다. 사진 오른쪽부터 조실 보선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회주 월우스님 등 어른 스님들이 안거 마다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후학들의 공부를 돕는다.
 대흥사 동국선원 전경. 조선 제일의 명필인 추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일구월심(日久月深)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 첫 시작은 간절한 발심에 있습니다. 화두 발심이 없으면 1시간이 아니라 10분도 지겹고 힘든 법이지요.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견성을 향해 화두를 들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다보면 날마다 환희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부처님 법을 깨치는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동국선원이 남도 제일의 수행처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는 비단 서산대사의 의발이 봉안돼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청우스님, 기산스님 등 내로라하는 당대 선지식들이 끊임없는 사유와 정진으로 자리를 지켰으리라.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이라며 의발을 전한 서산대사의 법맥은 13명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해냈다. 선(禪)과 교(敎)의 종원(宗院)으로 동국선원이 한국불교 종통을 잇는 도량이라는 수식어가 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산대제 국가 제향 복원을 추진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회주 월우스님도 어김없이 안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월우스님은 “올해는 서산대사 탄신 50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로 대흥사로서는 특히 의미가 있다”며 “이번에 동국선원에 방부를 들인 스님들 또한 서산대사의 호국정신과 국난극복의 뜻을 가슴에 새기며 용맹정진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찌는 더위, 화두가 전부인 선승을 외호하는 건 주지의 몫이다. 100일 동안 안거 대중이 먹고 자고, 입는 뒷바라지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럼에도 주지 법상스님은 “수행에 크게 불편이 없길 바라는 마음뿐”이라며 “화두 일념에만 힘쓸 수 있도록 보필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국불교가 살아있음을 실감케 하는 건 결국 화두를 품고 모인 선승의 결기다. 세간의 숱한 유혹과 흔들기에도 납자들은 흔들림 없이 구도의 길에 나선다. 화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래야 깨치고 중생을 교화할 수 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普提 下化衆生). 지금 이 순간에도 2000여 명 납자들이 문 없는 문을 열고 구도의 길을 걷는 까닭이다. 동국선원에서 날마다 공부를 점검하는 죽비소리가 끊이지 않듯, 유례없는 폭염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조실 보선스님을 어렵게나마 뵈었다. “무엇하러 이 먼 곳까지 왔냐”는 말에 수행하는 스님들 찾아 왔노라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었다. “봤으니 되었지? 그만 내려가보시게.” 담백한 답이었다. 산란한 마음이 일었다. 스님은 더 말이 없었다. 그랬다. 봤으니,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큰 사진 - 경자년 하안거 결제 한달을 맞은 대흥사 동국선원. 약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해제일인 9월2일까지 용맹 정진을 잇는다. 작은 사진 - 대흥사 동국선원 전경. 조선 제일의 명필인 추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 한국불교의 종통을 잇는 종갓집 답게 대흥사 동국선원은 아직도 위계가 성성하다. 사진 오른쪽부터 조실 보선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회주 월우스님 등 어른 스님들이 안거 마다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후학들의 공부를 돕는다.
한국불교의 종통을 잇는 종갓집 답게 대흥사 동국선원은 위계가 성성하다. 사진 맨 앞 오른쪽부터 조실 보선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회주 월우스님. 대흥사 어른 스님들도 어김없이 안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큰 사진 - 경자년 하안거 결제 한달을 맞은 대흥사 동국선원. 약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해제일인 9월2일까지 용맹 정진을 잇는다. 작은 사진 - 대흥사 동국선원 전경. 조선 제일의 명필인 추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 한국불교의 종통을 잇는 종갓집 답게 대흥사 동국선원은 아직도 위계가 성성하다. 사진 오른쪽부터 조실 보선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회주 월우스님 등 어른 스님들이 안거 마다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후학들의 공부를 돕는다.
입선해 수행중인 스님들.
큰 사진 - 경자년 하안거 결제 한달을 맞은 대흥사 동국선원. 약 20명이 방부를 들였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해제일인 9월2일까지 용맹 정진을 잇는다. 작은 사진 - 대흥사 동국선원 전경. 조선 제일의 명필인 추사가 쓴 편액이 걸려있다. / 한국불교의 종통을 잇는 종갓집 답게 대흥사 동국선원은 아직도 위계가 성성하다. 사진 오른쪽부터 조실 보선스님, 선원장 정찬스님, 회주 월우스님 등 어른 스님들이 안거 마다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후학들의 공부를 돕는다.
대흥사 동국선원 선원장 정찬스님.

 

■ 대흥사 동국선원은...

대흥사 별원, 대광명전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불교계 정화 바람이 불면서 동국선원도 한 때 문을 닫았다가 1970년대 이르러 다시 개원했다. 청우스님, 기산스님 등이 옛 동국선원 건물에 가부좌를 틀면서 선원도 점차 활기를 띄게 됐다. 서옹스님, 천운스님 등이 조실로 있으며 후학을 양성했고 현 조실 보선스님 또한 안거 마다 빠지지 않고 동참하며 법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동국선원은 다성(茶聖)으로 일컫는 초의선사가 주석하며 동다송을 집필했던 곳이기도 하다. 동국선원의 현판은 초의선사와 교류했던 조선 제일의 명필 추사 김정희가 썼다. 제주도 유배시절 추사의 제자였던 신관호 전라수군절도사가 추사의 방면을 기원하면서 대광명전을 짓는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추사가 쓴 동국선원(東國禪院)’이라는 편액은 백지에 흑서로 반양각해 김정희의 꾸밈없는 필체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전해진다.

본디 선원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흥사는 동국선원 ‘7번방만큼은 특별히 개방하고 있다. 7번방은 문재인 대통령이 1978년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8개월 간 머물렀던 곳이다.

대흥사=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maha0703@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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