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정] 인공지능과 선사의 설법
[수미산정] 인공지능과 선사의 설법
  • 황건 논설위원 ·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20.07.11 14:55
  • 호수 35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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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이 잠수함 속에서
기능 정지되는 것으로 끝나는
원작소설(A.I.)을
이천 년 뒤에 단 하루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보도록
제작한 영화감독의
뛰어난 상상력 밑바탕에는
아마도 하루가 천년이며
천년이 하루 같다는
시간을 초월한
불교적 세계관이 있지 않았을까?
황건
황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도 도입돼 환자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진단을 내린 후 치료방침을 알려주는 ‘의료 로봇’도 이미 등장했다. 언젠가는 나를 포함한 의사들은 그들에게 직업을 내어주어야 할 때가 올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의사는 경험과 연수, 실습 등을 통하여 얻어진 그 무엇, 즉 직감이나 직관력이 있다. 이는 인공지능은 결코 획득할 수 없는 능력으로서 특히 환자가 병원을 찾은 첫날 또는 이틀간의 입원 기간 중 의사가 환자의 데이터를 충분히 얻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내가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2001년 개봉한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에이 아이(A.I.)’를 보았을 때이다. 과학문명이 발전해 사람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의 봉사를 받으며 생활을 하는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 중 감정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게 프로그래밍된 최초의 어린이 로봇 ‘데이빗’이 어느 가정에 입양된다.

한동안 잘 지냈지만 불치병에 걸렸던 진짜 아들이 돌아오자 입양 부모에게서 버려진다. 데이빗은 만일 진짜 사람이 되면 엄마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 줄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선다. 침수된 도시의 놀이공원에서 푸른 요정에게 소원을 빌던 중 그의 전신 기능이 정지된다.

시간이 흘러 빙하기를 거쳐 1800년 후에 데이빗은 진화된 새로운 종족에 의해 발견돼 기능을 회복한다. 데이빗의 기억을 복구해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보존된 머리털을 이용해 ‘엄마’를 만들어 내지만 그녀의 수명은 단 하루였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하루를 지내고 밤에 잠들면 적멸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신 인류가 말한다. “너의 엄마가 복구되면 단 하루 밖에는 머무르지 못해.” 데이빗은 대답한다. “제가 기다린 2000년도 단 하루 같아요. 그러니 내가 원하는 대로 엄마를 만나게 해주세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엄마가 데이빗에게 묻는다. “오늘이 며칠이지?” 2000년을 기다려 엄마를 만난 아들이 대답한다. “오늘은 오늘이에요.”

20년 전에 보았던 영화 ‘A.I.’를 다시 보며, 2018년 입적하신 무산스님이 몇 년 전 흥천사 삼각선원에서 하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지인들과 이야기하시다가 문득 “나는 이제 갈 때가 되었다. 어서 가고 싶다”고 하셨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황건이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스님의 말씀에 동의하면 ‘빨리 죽으세요’라는 말이 되고, 오래 사셔야 한다고 하면, 바람에 거스르는 셈이 됐다. 왜 하필 내게 물으셨는지?

중국 송나라 때 간행돼 선종(禪宗)의 중요한 공안집(公案集)으로 내려오는 <벽암록>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서기 788년 마조선사가 병상에 눕자 원주(院主)가 물었다. “요새 건강이 어떠하십니까?”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다.” 일면불은 약 이천 년을 사는 부처님이고 월면불은 하루를 사는 부처님이다. 그 스님이 쓴 해설에 ‘일면불 월면불’의 의미는 ‘오늘 죽어도 괜찮고, 내일까지 살면 더 좋고’라고 적혀 있었다. 

나도 되뇌었다. “일면불 월면불입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좌중은 조용해졌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스님이 설명해 주셨다. “일면불 월면불이라고 있어, 내가 벽암록에 소개한 화두야.”

데이빗이 잠수함 속에서 기능 정지되는 것으로 끝나는 원작소설을, 이천 년 뒤에 단 하루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보도록 제작한 영화감독의 뛰어난 상상력 밑바탕에는 아마도 하루가 천년이며 천년이 하루 같다는 시간을 초월한 불교적 세계관이 있지 않았을까?

[불교신문3597호/2020년7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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