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돈 주고 사시겠습니까?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 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
-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글 중에서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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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화가의 출현

당신이라면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을 돈 주고 사시겠습니까? 호기심에 그냥 적당한 가격이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적당한’이란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지난 2018년, 뉴욕의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장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크리스티 경매장은 소더비 경매장과 더불어 전 세계 미술품 경매의 양대 축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당시에 인공지능이 그린 ‘에드먼드 데 벨라미(Edmond de Belamy)의 초상화’라는 제목의 작품 가격은 무려 43만2500달러(한화 약 5억원)에 달했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인공지능과 예술을 연구하는 예술가 그룹인 ‘콜렉티브 오비어스(Collective Obvious)’가 개발한 알고리즘에 의해 탄생한 창작물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계산이나 논리적 추론, 사물 인식 능력의 정확도까지야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끄덕일 수 있겠지만,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인간을 자못 심각해지게 만드는 순간이다. 이대로 가다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예술품을 통해 감명받고, 인공지능에 그 권위를 부여하고 나중에는 인간의 예술에 대한 가치 평가를 인공지능이 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우연인지, 당시에 같은 경매장에서 세계적 팝아티스트로 유명한 앤디 워홀의 작품은 한화 약 8500만원에 낙찰되면서 묘한 대비를 보여줬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의 완승이라고 해야 하나. 이세돌을 눈물 흘리게 만든 알파고에 이은 인공지능 업계의 쾌거라고 해야 하나. 지능과 감성까지 모두 갖춘 인공지능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점점 난감해진다.

인공지능은 이제 지능을 넘어 감성까지 인간을 넘어서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 작곡가, 인공지능 소설가, 인공지능 무용가 등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주체가 된 예술작품이 고액으로 거래되고, 인간이 창작한 것인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히 인공지능의 창작활동을 예술로 볼 수 있느냐는 정도의 고민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기술은 상상을 뛰어넘어, 어쩌면 세상의 예술적 판단기준마저도 인공지능에 의지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함께 한다. 날로 정교해지고 고도화되는 인공지능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은 예술 그 자체는 물론 예술의 주체 그리고 예술의 소비 행태까지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 인공지능, 고흐와 렘브란트를 불러내다

위대한 빈센트 반 고흐가 죽지 않고, 아니 요절하지 않고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어떤 그림이 더 그려졌을까. 또는 빛의 달인이라 불렸던 바로크 시대 렘브란트의 매혹적인 초상화 스타일을 인공지능이 학습한다면 어떤 느낌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구글은 2016년 인공지능 화가 ‘딥드림(Deep Dream)’을 발표했다. 마치 꿈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딥드림’은 고흐의 작품들을 딥 러닝 기술을 통해 학습시켜서 고흐의 화풍을 따른 새로운 회화를 그리게 하는 기획이다. 예를 들어, 이미 입력된 고흐의 다양한 작품들 데이터에다가 ‘별이 빛나는 밤’을 연결해서 고흐의 화풍이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마치 고흐의 미공개 작품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다.

같은 해 4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연구진의 기획했던 프로젝트인 인공지능 ‘더 넥스트 렘브란트’이다. 렘브란트의 작품 346점을 딥 러닝을 통해 학습하고 렘브란트 특유의 화풍을 살린 초상화를 완성해 냈다. 인공지능을 안면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의 내용과 구도 등을 분석해서 렘브란트 그림만의 공통된 특징값을 도출해 낸다.

그리고 그 특징값을 바탕으로 드로잉 방식이나 채색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 거기다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유화의 질감까지도 그대로 살려낸다. 그 완성물을 렘브란트의 초상화 컬렉션에 포함해서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을 찾아내 보라고 한다면, 여간해서는 판별해 내기 쉽지 않을 정도이다.

딥러닝을 통해 특정 미술가의 전작들이 데이터로 주어진다면, 인공지능이 원작자의 화풍을 그대로 따른 새로운 그림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된다.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슷한 그림을 만들어낸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즉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과의 바둑 훈련이 대세가 되었듯이, 인공지능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화풍이 제시되고 주도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이런 예는 어떨까. 최근에 고흐의 생애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감독, 2017)’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2011년부터 무려 6년에 걸쳐서 125명의 화가가 매 장면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총 6만5000여 개의 프레임이 사용되었고, 각 프레임은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

공력이 많이 들어간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이런 작업을 인공지능 화가가 대신한다면, 딥러닝으로 초단시간 안에 고흐의 화풍을 학습하고 나머지 프레임들도 인간의 개입 없이 완성해 낼 수 있게 된다. 
 

고흐의 작품이 소중한 이유는 단지 비싼 금액으로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후기 인상주의의 특징이 고흐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즉 미술사적 가치가 그 작품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심미안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인간의 안목이다. 하지만 이대로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한다면, 창의성의 판단기준과 평가 주체가 바뀔 수도 있다. 출처=www.shutterstock.com
고흐의 작품이 소중한 이유는 단지 비싼 금액으로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후기 인상주의의 특징이 고흐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즉 미술사적 가치가 그 작품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심미안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인간의 안목이다. 하지만 이대로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한다면, 창의성의 판단기준과 평가 주체가 바뀔 수도 있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인공지능 로봇, 예술을 조각하다

대형 산업용 로봇이 분주히 움직인다. 전체 시스템이 자동화된 공장에서나 봄 직한 커다란 로봇팔이 이리저리 스티로폼을 섬세하게 깎아가며 정교한 형상을 만들어간다. 바로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으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다. 로마에서 발굴되어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트로이 신관이었던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고통받고 있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뱀에 칭칭 감겨 공포에 질린 아들의 얼굴, 그리고 몸이 뒤틀리고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뱀의 목을 움켜쥔 라오콘의 손아귀는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그 와중에도 뱀은 사정없이 라오콘의 허벅지를 물어 재끼려 눈을 부라리고 있다. 마치 인간의 고통과 절망의 표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로봇 팔을 통해 신화 속 이야기가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조각되고 있는 광경이다.

실물과 다른 점이라면, 대리석이 아닌 스티로폼이라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 정도이다. 이것은 예술가 다비드 콰욜라(Davide Quayola)의 새로운 창작이다. 콰욜라의 새로운 시도가 흥미로운 것은 로봇을 통한 창작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콰욜라는 전시 현장에 없고 그가 송출한 데이터에 의해서 로봇이 실시간으로 작업을 하고 그 과정이 전시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전통적 관점에서의 창작활동과 전시라는 개념이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게 된다. 

➲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인공지능 화가의 작품에 대해서 아직은 창작물이 아니라 미리 인간이 제공한 데이터에 따른 조합에 불과하다는 인식도 있다. 인간만의 고유한 창의성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사실 인간의 창의성이라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심지어는 부모의 유전자부터 시작해서 성장 배경, 교육환경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모차르트나 고흐 같은 천재들이 가진 창의성은 날 때부터 타고났거나 아니면 부모의 유전자 영향을 받았거나 만약 그도 아니면 전생을 믿는 관점이라면 이전 생에서 이미 훈련된 재능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최근 스탠퍼드 의과대학의 뇌과학 실험 연구에서는, 인간이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기억을 상기하는 부신수질호르몬이 감소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대로라면, 인간의 창의성이 발현될 때, 기억이나 경험을 토대로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라는 말이 된다. 결국, 현재까지는 창의성이 발휘되는 원인과 경로 전체에 대해서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창의성’이란 것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인간만의 능력일까? 단지 피카소나 고흐만의 특유한 화풍을 모방하거나 새로운 창작물 속에 그 느낌이 드러난다고 해서 미적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기술적 유사성 즉 색채, 구도, 원근법이 유사하다고 해서 다가 아닌 것이다. 가치가 공감되고 인정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고흐의 작품이 소중한 이유는 단지 비싼 금액으로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후기 인상주의의 특징이 고흐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즉 미술사적 가치가 그 작품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심미안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인간의 안목이다.

하지만 이대로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한다면, 창의성의 판단기준, 평가 주체가 바뀔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예술작품에 대해 창의성이 있는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업계 내부의 전문가 집단 또는 법원의 판사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그 지위마저도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 아닌 인공지능이 만들고 인공지능이 인정해주는 상황 말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들끼리 다 하는 것이다. 인간들한테는 일종의 악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불교신문3597호/2020년7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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