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기심 이상적멸
강의하면서 배운다


“미워하지 않았고 외로움도 주지 않았는데
오늘 내 가슴에 쏟아지는 비, 누구의 눈물…”

선행스님
선행스님

강의(講義)는 곧 강석(講釋)ㆍ강설(講說)ㆍ강해(講解)이다. 교수(敎授)하는 이의 설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수업이겠다. 

그동안 강원에서 10여년 강의를 하면서 다분히 원전 곧 한문으로 된 경전이었기에 전통방식에 의한 강의였다. 강원에 처음 입방한 학인은 <치문(緇門)>을 공부하는데, 공교롭게도 백양사와 선운사에서 강주 소임을 볼 때는 경반(화엄경 공부)과 함께 <치문> 과목도 동시에 강의를 했다.

특히 치문을 공부하는 학인은 당일 배운 대목을 다음날 어김없이 암송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4~5개월 동안 함께 외워서 인지, 자연 암기력뿐만 아니라 여타의 일까지도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어쩌면 지금의 글을 쓰면서 새록새록 지난 일을 상기(想起) 할 수 있는 것도 그때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하다. 

당시의 학인은 강원 스님들이 한데 모여 연례적으로 행사하는 경전 경시대회에서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덩달아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강의하는 경전마다 <화엄경>은 물론 사교(四敎) 과목인 <능엄경> <금강경> <기신론> <원각경>을 학인 스님들과 함께 간경하듯 전체를 공부했다.

일찍이 어른 스님과 앞선 스님들로부터 경전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그러한 믿음과 확신은 불자들을 상대로 누차 경전을 강의할 때면, 많은 이들로부터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집스레 한문 원전으로 강의했다. 게다가 재미없다는 말과 함께.

이번 하안거 결제를 하면서 사중에 포교국 소임을 보고 있다. 승가에서는 경전을 공부하거나 여타의 소임과 무엇을 하든 간에 ‘본다’는 표현을 한다. 그것은 곧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마음을 챙기며 정진하는 자세로 임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한다.

포교국에서는 사중에서 매달 발행하는 <통도>의 편집과 불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대학을 관장하고 있다. 처음 회보를 편집하면서 말미에 후기를 적었다. 현 세태와 함께 편집을 하게 된 감상을 나름 정리했다.

“꽃 진다고 아쉬워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성한 잎에 토실해지는 열매가 채워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잃었다기보다는/ 진일보(進一步)의 마음이 절실한 때입니다./ 어우렁더우렁 지내온 날들이여/ 또다시 한바탕 어우러져 볼거나/ 그 속에서 편집도 한 몫 할까 보다”

불교대학은 전부 12반으로 편성하여 800명이 조금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거듭된 연기로 예정보다 다소 늦게 개강하여 방역 준칙을 준수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런 소임으로 전담하는 3반과 입문과정 4반의 특강을 담당하고 있는데,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이지만 많은 보람을 느낀다.

처음 강의하는 <금강경>을 공부하는 반에서는, 마침 밖에 촉촉한 비가 내리고 있어, 비에 관한 노래를 한 곡 할 심사로 “비는 하늘에서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에도 비가 내립니다.” 뜬금없는 한마디에 일부 뜨악한 표정 속에 한 곡 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외로움도 주지 않았는데 오늘 내 가슴에 쏟아지는 비 누구의 눈물이 비되어 쏟아지나…”

부드러운 분위기에 ‘항복기심(降伏其心)’ 대목을 설명했다. 중생을 제도했다는 마음과 누구에게 보시했다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는, 이상(離相) 곧 상(相)을 여의는 의미와 통한다는 내용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효학반(斅學半) 곧 강의하면서 배운다는 말을 실감한다.

[불교신문3597호/2020년7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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