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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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멍!” 고요한 아침, 산사의 정적을 ‘보리’가 흔들었다. 보리는 우리 절에 사는 진돗개다. 요즘 매일 밥도둑 고양이를 쫓느라 신경이 날카롭다. 서른 살이 다 되었는데 보고 듣는 것이 점점 안 좋아지더니 급기야 백내장까지 왔다.

수술을 시켜볼까 하고 알아보다가 비용을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가 너무 많아 수술하기 힘들다는 수의사 의견을 듣고 포기했다. 가끔 맹인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을 보호하며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보리가 눈이 안보이니 이제 내가 ‘맹견안내인’이 되었다.

“야, 저리가. 나 아직 살아 있다구. 어딜 감히 내 밥을 훔쳐 먹어” “야, 니 먹다가 남긴 것 조금 먹는데 되게 뭐라 하네. 좀 나눠 먹으면 안 돼?” 보리는 본능적으로 제 먹이를 지키려고 하지만, 고양이는 아침 공양을 탁발하러 왔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엉뚱한 곳을 향해 짖고 있는 보리의 눈 먼 사정을 고양이가 눈치 챈 것이다.

지켜보는 나로서는 보리 편을 들고 싶지만 눈칫밥 먹는 고양이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오늘은 제법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보란 듯이 내게 꼬리까지 흔들며 지나갔다. 전에 보리한테 쫓겨 다닐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인도순례를 하다 보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모두 당당하다. 배고픈 자기한테 적선하면 당신이 공덕을 짓는 것이니까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당한 것 같지만 발상의 전환이다. 어쩌겠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먹어야 산다. 눈 먼 보리와 도둑고양이 그리고 거지와 순례자. 알고 보면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다만 먹이를 얻는 방법을 두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며 티격태격 싸운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세상, 좀 나눠먹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옥잠화 향기 뜨락 가득한 아침, 한 줄기 향 사르며 허리를 곧추 세워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림 하나 들려왔다. “그대는 지금 눈 먼 보리인가 도둑고양인가?” 이크! 차 한 잔 하다 하마터면 체할 뻔 했다.

[불교신문3597호/2020년7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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