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옻칠 민화전’ 한 달 연장
방장 성파스님 100여 작품 전시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 줄 이어

영축산 녹음(綠陰)이 짙어지면서 여름이 성큼 다가왔지만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들어서면 무더위는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한다. 1층 기증유물실과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 작품을 감상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코로나 19로 여행이나 문화생활을 즐기기 어려운 요즘, 이만한 피서와 호사가 없다. 5월29일 개막한 이번 특별전의 부제는 ‘2020 세계문화유산 통도사와 함께하는 치유와 상생을 위한 기획전’이다. 개막 이후 부산, 대구 등 인근은 물론 서울과 광주 등 경향 각지에서 관람객이 줄을 이어 8월16일까지 한 달 연장했다. 

특별전의 대표작 ‘미륵존’ 80cm×68cm, 옷판에 옻칠을 한 성파스님의 작품이다.
특별전의 대표작 ‘미륵존’ 80cm×68cm, 옻판에 옻칠을 한 성파스님의 작품이다.

특별전이 성황을 이룬다는 소식을 듣고 통도사 서운암에서 친견한 영축총림 방장 성파스님(조계종 원로의원)은 “옻칠은 불교문화와 인연이 깊다”면서 “부처님을 모신 불단이나 스님들이 사용하는 주장자도 그렇지만, 발우만 보더라도 불교와 옻칠의 연관성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불교 전래 이후 스님들의 공양 도구인 발우에 옻칠을 하여 사용했다는 것이다. 방장 성파스님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만 해도 승려 숫자가 대단히 많았다”면서 “그 사례만 들더라도 옻칠을 한 목(木)발우는 절집에 상당히 많았다”고 부연했다.

이에 비해 민가에서는 양반이나 부유층이 제사 때 옻칠한 제기(祭器)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성파스님은 “사찰에서 산에 옻나무를 재배하기도 했다”면서 “이러한 사실만 봐도 옻칠은 불교문화와 연관이 깊다”고 강조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사진출처 = <통도사옻칠민화특별전(도록)>

이번에 특별전을 마련한 까닭도 옻칠문화의 뿌리가 불교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성파스님은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스님과 신도들이 많지 않다”면서 “지금은 발우를 사원(寺院)에서 직접 만들지 않고 밖에서 구입해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사중(寺中)에서 옻칠 공방을 운영하는 사찰은 영축총림 통도사가 유일하다. 성파스님은 “원래 우리 불교 것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데, 지금은 ‘남의 손’을 빌리고 있는 것이 실정”이라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하고자 하는 바도 있지만 불교문화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옻칠에 관심을 갖은 배경을 설명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성파스님의 옻칠민화 특별전에는 금강산도(金剛山圖),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연화도(蓮花圖), 책가도(冊架圖), 문자도(文字圖), 화조도(花鳥圖), 서수도(瑞獸圖), 어락도(魚樂圖), 약리도(躍鯉圖), 설경(雪景), 감오여재도(感慕如在圖), 고사인물도(古事人物圖) 등 100여 점에 이르는 옻칠민화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을 받으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륵존’ 작품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부처님과 가섭존자의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花微笑)’를 연상시킨다. 코로나 19로 몸과 마음이 지친 관람객들에게 “괜찮아, 힘내”라며 응원하는 것 같다.

대승불교 반야사상의 핵심인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옻판에 옻칠을 하고 쓴 여섯 폭 병풍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또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금강계단과 달밤의 진신사리탑은 1350년이란 오랜 역사를 지닌 통도사의 위의(威儀)를 대변하는 것 같다.
 

통도사 금강계단. 옷판에 옻칠을 했다. 120cm × 100cm
통도사 금강계단. 옻판에 옻칠을 했다. 120cm × 100cm

방역 대책 수립 후에 ‘관람’
옻칠 불교 인연 매우 깊어
수행과 예술 자연스레 결합

이번 특별전에 선보이는 성파스님의 ‘옻칠민화’는 불교에 뿌리를 둔 ‘옻칠’과 ‘민화’가 결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이다. 사실 통도사는 명부전, 해장보각, 용화전 등 각 전각에 다양한 민화(民畵)가 그려져 있다. 도량 자체가 ‘민화갤러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방장 성파스님은 “소박하면서도 파격적인 형식, 멋들어진 해학(諧謔), 부처님의 가르침과 민중의 염원 등이 잘 담긴 민화들이 통도사에 있다”면서 “사납고 무서운 호랑이가 사람과 더불어 유순하게 살아가는 내용, 상상과 은유가 담긴 문학적 내용과 철학적 이야기 등을 민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물도. 옻판에 옻칠을 한 성파스님 작품. 146.3cm × 97.2cm
인물도. 옻판에 옻칠을 한 성파스님 작품. 146.3cm × 97.2cm

성파스님은 지난 2월 불교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서도 “민초(民草)들의 애환을 담은 민화(民畵)의 뿌리는 불교미술”이라고 밝힌바 있다. 당시 스님은 “조선 후기로 들어가는 18세기는 사회혼란으로 억불(抑佛)이 극에 달할 때 민화가 세속에 등장했다”면서 “사회가 어려워지고 경제도 나빠져 사찰 불사(佛事)까지 힘들어져 불화(佛畵) 장인들이 밖으로 나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민화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사찰의 화원(畵員)들이 전통을 바탕으로 시류(時流)에 맞게 그린 그림이 오늘날 민화가 된 것이다.

방장 성파스님은 1985년 일본에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조선의 민화>를 읽으면서 민화가 불교미술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지난 2월 불교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서 스님은 “서양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동양 국가에는 없는 화풍”이라면서 “민화가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다소 창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앞으로는 민화인(民畵人)이 늘어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발열 체크와 인적사항 기록 후에 마스크를 반드시 쓴 상태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성파스님의 ‘통도사 옻칠민화 특별전’은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발발한 이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심신(心身)이 약해진 국민에게 ‘치유와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사바세계의 고해(苦海)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고 용기를 주는 불교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편이다. 성파스님의 수행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옻칠민화는 불자들에게는 신심을 불러 일으키고, 일반인들에게는 경이(驚異)로움을 전달하며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도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
처처가 예술의 근본자리

현문스님
현문스님

방장 성파 대종사의 정신세계와 예술혼은 당나라 보화(普化) 선사의 게송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이 앉아계신 그 자리, 계시는 처처(處處)가 바로 예술 창작의 근본 자리이다.

민초들의 애환을 담은 민화에 옻칠을 더한 방장 스님만의 독보적 영역을 펼치는 특별전이다. 민화의 보고(寶庫)인 통도사에서 열리는 의미 있는 전시를 관람하며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쉬라.


■ 정재숙 문화재청장
지친 국민들 마음 달래

정재숙
정재숙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한국 전통미술의 맥을 지켜 오신 영축총림 방장 성파 큰스님께서 창안하신 옻칠민화가 코로나 19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불화의 선명한 색채와 과감한 구도, 살아 있는 이들의 복을 기원하고 망자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은 민화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이처럼 불화와 그 뜻이 일맥상통하는 민화에 옻칠이라는 우리 전통 공예 기법을 더한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 오신 성파스님께 문화재청장으로서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새로운 옻칠문화 펼쳐

윤범모
윤범모

옻칠의 장점을 살려 미술재료로 삼아 발전시키는 과업은 매우 소중하다. 방장 스님은 옻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새로운 옻칠문화를 펼치고 계신다.

코로나 19 시절의 어려운 이때, 스님의 그림은 치유와 상생을 위한 커다란 가르침의 하나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
민화의 예술 감성 향상

윤열수
윤열수

옻칠민화의 역사는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하여 한국 민화의 예술적 감성을 향상시켰으며, 민화계에 혁신적 신풍조를 이룩하였다. 옻칠민화가 더욱 다양한 장르로 발전하여 영구 보존 보호되어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이번 전시가 새 시대의 예술적 감성과 기능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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