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덕행으로 마음 얻는 '선재회장' 되겠다”

37년 교직 생활 후 퇴직
‘아이들 행복해지는 교육’
가치실현 위해 평생 헌신

고향에 대한 애정 깊어
구례에 남은 ‘구례 사람’
“화엄사의 소중한 가치
군민 모두가 인식해야“

지리산과 섬진강을 대도량으로 삼는 19교구본사 화엄사는 최근 내실있는 운영과 활발한 지역내 활동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살린 정성 깃든 불사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불사에 매진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람과 사람을 잇는 불사는 2018년 설립한 선재회가 한 축을 담당했다. 선재회는 장길선 전 구례교육지원청 교육장이 회장을 맡아 구례를 비롯한 재가불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해냈다. 그 결과 대도시를 끼고 있지 않음에도 올해 불교교양대학 입학생이 90명을 넘어섰다. ‘사람의 중심에 있는 장길선 전 교육장을 화엄사에서 만났다.

장길선 전 구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37년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행복지는 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지난 2월 퇴직했다. 지금은 화엄사 선재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불심을 키우고 있다.
장길선 전 구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37년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행복지는 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지난 2월 퇴직했다. 지금은 화엄사 선재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불심을 키우고 있다.

장길선 전 교육장은 지난 2월 37년간 일한 중등교육 현장을 떠났다. 정년을 3년 앞두고 있던 시점, 교직에 몸담으며 느꼈던 보람과 청춘을 다 받치며 실현하고자 했던 교육과 이루고자 했던 꿈,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던 마음까지도 모두 내려놓았다. 굳이 3년을 더 하지 않아도, 지난 37년 만으로도 잘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고 그런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똑같이 꿈을 위해 뛰는 후배들을 위한 마음도 있었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 그 선택은 아직까지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돌아보면, ‘교육이란 토마토 나무를 세워주는 지줏대 같은 것’이라며 바른 길로 가는 교육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교육과 그 가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 늘 잘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교육자의 신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그런 교육자가 되지 못했다. 학교의 아이들과 지내다보니 가정엔 소홀했다. 늘 집에 없는 남편이었고, 세 자녀와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했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교육자의 길, 가슴 한 켠에 아리듯 가족이 있다. 21평 아파트에서 19년을 살며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도 잘 자라준 아내와 아이들, 미안함과 감사함에 문득문득 뭉클해지기도 한다. 

장 전 교육장은 ‘구례 사람’이다. 구례 문척면에서 촌부의 아들로 태어나 전남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이후 많은 지역을 오갔지만 마음은 늘 고향인 구례에 있었다. 첫 근무지인 완도에서 구례로, 무안으로, 순천으로, 다시 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잦은 이동에도 고향에 대한 애정은 유달리 컸다. 교감과 교장, 장학사와 장학관을 거쳐 전남교육청에서 근무한 뒤에도 자청한 곳은 구례였다. 

애정이 크면 그만큼 시름도 깊다는 옛 말은 틀린게 없었다. 37년의 교직생활을 구례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퇴직을 1년 앞두고 구례교육지원청에서 교육장을 지내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채 순천의 신흥중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게 된 것이다. 고향인 구례를 위해 좀더 헌신하고 싶었던 마음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구례에 대한 진한 애정이 담겨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애정이 없었다면 그런 아쉬움도 없었을 것이다.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은 장 전 교육장이 선재회 창립과 함께 첫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기꺼이 수락했던 이유 중에도 구례 사람으로서 가진 화엄사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작용했다. 화엄사가 지닌 소중한 가치가 종교라는 틀에 갇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현실을 바꾸는데 동참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장 전 교육장은 “화엄사는 우리 구례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져도 될 만큼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로 가치가 큰 사찰”이라며 “구례군민들이 불자가 아니라도 지리산과 화엄사라는 국가적 보물에 대해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장길선 전 구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의 가르침처럼 말 대신 덕행으로 마음을 얻는 리더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장길선 전 구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의 가르침처럼 말 대신 덕행으로 마음을 얻는 리더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백일기도로 늦둥이로 태어난 아들이었고 역시 백일기도로 자식을 얻었으니, 불교와는 깊은 인연이 있다. 구례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1995년부터 3년간 불교학생회 ‘화엄회’ 지도교사를 맡기도 했으니 적은 인연은 아니다. 이때 화엄사 진조스님으로부터 받은 ‘혜인(慧印)’이라는 불명을 지금도 쓰고 있다. 그렇다고 불교를 잘 알거나 신심이 깊다고 할 수는 없다. 예불문과 반야심경도 알지 못한 초심자였다. 

멋모르던 초심자는 2년새 많이 달라졌다. 새벽예불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불자가 됐다. 새벽예불에 갔다가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외웠고 차에서 CD로 염불을 들으며 천수경을 익혔다. 요즘은 절에 다니면서 조급함을 내지 않으려하고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을 덜어내는 연습을 꾸준히 하다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선생님 소리를 듣고 살았던 장 전 교육장은 요즘 학생이 돼 있다. 화엄사 불교교양대학과 전통사경반 강좌에 재미가 붙었다. 십수년간 붓글씨를 써 왔지만 사경의 깊이와 매력은 또 다른 세계를 보는 듯 했다. 화엄사가 추진하고 있는 전통사경원 복원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불교교양대학과 사경반을 오가며 불심을 다지고 있다.

그는 무엇을 하더라도 똑부러지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 일도 적지않았다. 손대지 않아도 될 일에 손을 댔다가 어정쩡하게 손을 떼지 못한다. 그로 인해 시련을 겪는 일도 있었다. 그는 “시련이 닥치니까 밉고 화나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걸로 또 괴로워지는데 불교를 알게 되니까 하나둘 풀리더라”며 “선택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지고 사는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했다. 

그것은 말로 하지 않더라도 덕행으로써 감복시키는 리더다.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고사성어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 밑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길이 만들어진다’는 가르침은 지난 삶과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늘 새기고 살고자 다짐했던 좌우명이기도 하다. 

이 구절은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나온다. 한무제 때 흉노족에게 한비장군으로 불린 명장 이광에 대한 표현이다. 평소 말이 많지 않으면서도 덕행으로써 부하들의 마음을 얻어 용맹한 군대를 만들었던 덕행의 리더십을 대변한다. 

장 전 교육장은 평생 헌신했던 교육현장에서의 열정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각오와 다짐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도리불언 하자성혜’는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깊은 가르침이다.

구례=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불교신문3597호/2020년7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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