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코로나19라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제시한 수행법이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바라는 것은 사경 자체가
무겁고 엄숙한 것이 아니라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들어가는 모습
고리타분하지 않고
현대적인 문화로 널리 퍼지는 것

지용스님
지용스님

싱가포르, 마카오 같은 매우 서구화된 지역에서는 사찰들도 과거와 미래가 세련되게 조화를 보여줘 흥미롭다. 그 중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사경 수행’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여느 법당처럼 화려하고 엄숙하게 꾸며진 공간에 도서관 열람대처럼 사경을 위한 책걸상이 줄지어 있고, 또 도서관처럼 고요하다. 사람들이 능숙하게 들어와 자리를 잡는데, 사물함에 보관된 사경집을 꺼내거나 가방에서 꺼내어 펼치고는 별다른 절차 없이 독서하듯 바로 사경에 몰입한다.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방금 퇴근한 듯한 차림의 사람들이 몰려와 짧게는 10여 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의 사경 시간을 가진 후에 가벼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그 공간만 벗어나면 일반 사찰들처럼 염불소리와 목탁소리 울려 퍼지는 우리와 비슷한 풍경이다. 오직 사경 전용 공간만이 그 속에 다른 세상처럼 존재하며 새로운 느낌의 신행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요즘은 한국에도 사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찬란한 예술문화와 함께 발전한 우리의 전통사경은 현대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수준이 높았다. 그러한 전통사경 기법과 문화를 복원하고 널리 펼치는 일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일상 속에서의 사경 수행, 혹은 사경 문화를 통해서 만나는 불교에 대한 것이다.

과거에는 ‘일자삼배(一字三拜)’ 혹은 ‘일자일배(一字一拜)’ 등으로 대표되는 조금 부담되는 사경의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사경 책자들이 개발되면서 사경의 문화 또한 많이 변했다. 이제 사경은 집이나 사무실에서 자투리 시간에 몰입할 만한 수행으로서 점점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시대에 들어오면서는 전에 없이 적절한 수행법으로 훨씬 주목도 받고 있다.

군불교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발 빠르게 <법구경 사경집>을 편찬해 전국 군법당에 배포했다. 이 책은 5, 6월의 법회 공백기 동안 기대 이상의 주목을 받으며 많은 불자들에게 새로운 신행문화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지금은 그 후속 사경집을 연구하면서 어렵게 일어난 사경 수행의 신심들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경집을 기획하기 위해 요즘 사경 수행을 하는 불자들의 의견들을 들어보면 이러하다. 우선 사경하는 경전이 유려한 우리말로 돼 있어 이해와 감동을 직접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경전 본문만이 아닌 해설이나 주석들이 있다면 경전공부도 함께하는 효과가 있다.

크고 두꺼운 책자보다는 가볍고 크지 않아서 어디서든 편안하게 지참하고 다닐 수 있는 책자라면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것이다. 다른 불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현대불자들은 단순히 사경의 기능 뿐만 아니라 책의 디자인도 세련되기를 바라는 의견도 공통적이다. 

처음엔 코로나19라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제시한 수행법이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바라는 것은 사경 자체가 무겁고 엄숙한 것이 아니라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들어가는 모습, 고리타분하지 않고 현대적인 문화로 널리 퍼지는 것이다. 마치 싱가포르의 사찰에서 보았던 퇴근하는 불자들의 경쾌하고 진지한 사경수행 풍경처럼 말이다.

[불교신문3596호/2020년7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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