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12> 노악산 남장사 십육나한도
[한국 산사 불화기행] <12> 노악산 남장사 십육나한도
  • 신광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
  • 승인 2020.07.08 13:06
  • 호수 35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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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행자 나한의 모습 사실적으로 묘사

상주 남장사 조선시대 사세 커
조사 진영만 30점 이상 봉안
애석하게도 현재 대부분 도난

십육나한도 1790년에 제작
화사 상겸스님 영수스님 동참
화면마다 화승 개성 표출

기세 좋은 산수 나한 결기 상징
책거리 도상 일찍 수용한 작품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즉 “일체중생은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라한(阿羅漢), 줄여서 나한(羅漢)은 이러한 불교의 평등적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존재들이자 불자들에게는 선망과 숭배의 대상이다.

나한은 깨달음의 경지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룬 수행자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제자들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수행자, 나한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될까? 이번 회에서는 조선 18세기에 그려진 남장사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를 통해 나한의 세계와 시각적 이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7·9·11·13·15 존자), 1790년, 견본채색, 112.0×219.0cm. 영수스님과 위전스님이 그렸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7·9·11·13·15 존자), 1790년, 견본채색, 112.0×219.0cm. 영수스님과 위전스님이 그렸다.

경상북도 상주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선비의 고장이자 명찰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 상주의 노악산(露嶽山) 자락에 천년고찰 남장사(南長寺)가 자리한다. 남장사는 창건 당시에는 장백사(長栢寺)라고 불렸으며 이후 고려 12세기에 각원대사(覺圓大師)가 지금의 사명(寺名)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남장사는 조선에 이르러서도 사세가 굉장했는데, 이는 사중의 유물, 예를 들어 초상화인 진영(眞影)만 보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현재는 대부분 도난으로 소재를 파악할 수 없지만, 1990년대 초까지 남장사에는 창건주인 진감국사(眞鑑國師) 진영을 비롯하여 달마(達磨), 나옹(懶翁), 청허(淸虛), 사명(四溟)대사 진영과 남장사에서 크게 활약한 백설찬수(栢雪贊修), 만성원엽(晩惺元曄), 인월대인(印月大仁), 상남영찰(尙南永察), 백봉신엄(白峰信嚴), 취진처림(醉眞處琳), 쌍원민관(雙圓敏寬) 등 스님들 진영 30여 점이 봉안되어 있었다.

남장사 십육나한도는 절의 위상이 드높았던 조선 후기, 1790년에 제작되어 영산전에 봉안되었다. 나한은 일반적으로 십육나한이나 오백나한의 구성으로 신앙화 되는데, 조선 후기에는 십육나한 신앙이 특히 성행했다. 남장사본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장사본은 본래 총 4폭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두 폭만 남아 있다.

화면의 크기는 세로 112.0cm, 가로 219.0cm 내외로 가로의 폭이 상당히 긴 편이다. 비단 바탕에 나한이 다섯 분씩 그려져 있고 각기 나한의 위쪽으로는 존명이 기록되어 있다. 한 폭에는 제7 가리가존자(迦理迦尊者), 제9 술박가존자(戌博迦尊者), 제11 라호라존자(羅怙羅尊者), 제13 인게타존자(因揭陀尊者), 제15 아씨다존자(阿氏多尊者)라고 쓰여 있으며 홀수 존자로만 구성되어 있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8·10·12·14·16 존자), 1790년, 견본채색, 112.0×219.0cm. 상겸스님이 주관해서 그렸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8·10·12·14·16 존자), 1790년, 견본채색, 112.0×219.0cm. 상겸스님이 주관해서 그렸다.

다른 한 폭에는 제8 벌도라존자(伐闍羅尊者), 제10 반탁가존자(半託迦尊者), 제12 나가존자(那伽尊者), 제14 벌나존자(伐羅尊者), 제16 주다존자(注茶尊者)라고 기록되어 있고 짝수 존자로만 구성되어 있다. 존명은 십육나한의 소의경전인 <불설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佛說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에 근거한다.

그리고 십육나한은 불전 내에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홀수 존자, 우측에 짝수 존자가 배치되는데, 남장사본도 이러한 규범에 맞게 화면이 구성되어 있다. 

십육나한은 가사 장삼을 갖춰 입고 불자, 염주, 경전 등을 지닌 채 사자, 호랑이, 혹은 학 등을 끼고 있는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불법을 수호하는 수행자로서의 본분과 신통력으로 중생의 복덕을 돕는 성자로서의 면모가 잘 구현되어 있다. 우선 <제7·9·11·13·15 존자도>를 보면, 특히 긴 곱슬머리의 나한이 매우 인상적이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7·9·11·13·15 존자) 중에서 나한 상호. 짙은 채색이 인상적이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7·9·11·13·15 존자) 중에서 나한 상호. 짙은 채색이 인상적이다.

역대 나한 도상을 보면, 간혹 이국적인 이미지에 긴 곱슬머리를 한 모습으로 표현된 분들이 있다. 이는 십육나한 대부분이 본래 인도의 승려들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서역인의 이미지를 묘사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다음으로 <제8·10·12·14·16 존자도>의 경우, 맹수인 호랑이를 복종시켜 옆에 끼고 앉아 있는 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나한이 맹수인 호랑이도 귀의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도설한 것이다. 그리고 나한이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영지를 들고 있거나 백학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나한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그림에서 나한은 심산(深山)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경전이나 문헌을 보면, 나한이나 고승들은 대부분 깊은 산중에서 거주하며 수행한다. 예를 들어 십육나한 중 제9존자는 향취산중(香醉山中), 제12존자는 반도파산(半度波山), 제13존자는 광협산중(廣脇山中), 제14존자는 가주산중(可住山中), 제15존자는 취봉산중(鷲峯山中), 제16존자는 지축산중(持軸山中)에 머문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의 산수(山水) 표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장사본은 특히 소나무와 암석이 기세 있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마치 불제자 나한의 결기를 보는 듯하다. 게다가 청록산수에 오색의 꽃, 그리고 다채로운 구름까지 더해져 전체적으로 배경이 매우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에는 ‘책거리’도 등장한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 불화 중 책거리 도상이 매우 빨리 수용된 작품이다. 책거리란 책, 혹은 책과 관련된 장식물들을 의미한다. 이 그림에서 제13 인게타존자와 제15 아씨다존자는 경책을 들고 있거나 경전을 베껴 쓰고 있는데 그 뒤로 경전을 말아서 모아 놓은 꾸러미도 보이고 그 옆으로 경책도 쌓여있다. 그리고 제12 나가존자와 제14 벌나존자 사이에도 책가(冊架)가 자리하고 있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의 책거리 일부.
남장사 십육나한도의 책거리 일부.

물론 이 그림 이전에도 일부 고승 초상화에 벼루와 연적, 그리고 붓 등 문방사우가 표현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를 본격적인 책거리 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여수 흥국사 십육나한도를 비롯한 이전의 십육나한도에도 경전만이 일부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남장사본은 책거리에 대한 인식과 표현이 구체적이면서도 적극적이다. 

남장사본의 현존하는 두 폭 중 하나는 화승 영수(影修)스님과 위전(偉全)스님이 함께 그렸고, 다른 하나는 상겸(尙謙)스님의 지휘 아래 계관(戒寬)스님 등 네 분이 동참해서 그렸다. 영수스님과 위전스님은 주로 경북 내륙에서 불화를 제작했던 분들이다. 반면에 상겸스님은 봉선사나 용주사 등 서울·경기의 왕실 원찰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때론 안동, 예산, 그리고 상주 등으로 초빙되어 불화를 그렸던 분이다.

특히 상겸스님은 활동 지역이 매우 광범위한데 상주와도 인연이 깊다. 스님은 1786년 상주 황령사의 아미타설법도와 신중도를 그렸고, 1788년에는 남장사의 영산회괘불도를 주도해서 그린 적이 있다. 이러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2년 후에도 남장사의 십육나한도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영수스님과 상겸스님은 모두 ‘수화사(首畵師)’로 활약하던 저명한 스님들인데, 이들이 함께 한 점의 십육나한도를 그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역할을 나누었을까? 그 답은 그림 속에 있다. 남장사 십육나한도를 보면, 화폭별로 화풍이 다르다. 한 폭은 세필에 먹을 많이 사용해서 그렸고 다른 한 폭은 진한 채색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즉 상겸스님과 영수스님은 십육나한도의 화폭을 나누어 그림을 그렸으며, 각기 화면에 본인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8·10·12·14·16 존자) 중에서 나한 상호. 가는 먹선의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남장사 십육나한도(제8·10·12·14·16 존자) 중에서 나한 상호. 가는 먹선의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상겸스님은 신체를 비교적 길게 표현했으며 얼굴은 상당히 갸름하게 그렸고 이마와 정수리 부분을 크게 강조했다. 또한, 주름진 골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머리카락과 눈썹, 수염 등은 가늘지만 힘 있는 먹선으로 강렬하게 그렸다. 반면에 영수스님은 전체적으로 윤곽선이 굵고 진한 편이며 채색의 대비가 매우 두드러지고 문양도 다양하게 그렸다. 

십육나한은 석가모니로부터 ‘미륵이 올 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이 땅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수기를 받은 열여섯 명의 불제자들이다. 남장사 십육나한도는 십육나한의 성격과 특성이 구체적으로 잘 구현되어 있다. 그리고 저명 화승들이 동참해서 그렸는데, 각기 개성을 표출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로운 조선시대 나한도의 명품 불화이다. 

[불교신문3596호/2020년7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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