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이봉주

얼마 전 윤사월 사월 초파일, 한 달 연기된 ‘부처님오신날’이다. 예전에 어머니는 절에 가시기 며칠 앞두고는 생선이나 닭고기 같은 음식을 가리시고 정육점 앞을 피해 다니셨다. 절에 오르는 어머니 모습은 늘 정갈했다.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연등이 걸린 산길을 오르던 내 코끝에서는 소풍을 가는 듯 설렘으로 꽃향내가 노랗게 피어났었다. 부처님 전에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한 마음은 경건하고, 무릎을 꿇어 엎드린 등은 늘 간절하다. 부처님 앞에 눈을 감고 앉으면 풍경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설법을 듣는 듯 마음이 청정해진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산길을 올라 부처님을 찾아뵀다. 그러나 예년에는 사람에 밀려다니던 절 마당이 한산하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흰 구름 한 점 한 점이 절 마당에 내려앉은 듯하다. 부처님오신날엔 줄 서서 타 먹는 비빔밥이 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별미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빔밥은 없고 떡과 주먹밥, 다과가 든 봉송 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부처님오신날은 절 세 곳에 가야만 복을 받는다고 했다. 내가 두 번째로 찾아가는 절은 큰 절보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작은 절을 가기로 했다. 이곳에서도 열 체크를 하고 방문자 명단 작성을 했다. 법당에 올라가 삼배를 하고 내려오는 동안 아무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절이 한산했다. 이 절 역시 올해는 떡만 준다고 했다. 세 군데 절을 다 돌고 나니 손에 든 떡 봉송 보따리는 세 개인데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어 허기가 졌다. 

함께 갔던 지인들과 헤어지고 어머니 집으로 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부처님오신날은 내가 모시고 다녔는데 구십 세가 되신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절에 다니지 못하신다. 평생을 초하루나 보름날은 물론이고 입춘, 칠석날 등 절에 가시는 날을 빠짐없이 챙겨 다니시던 어머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부처님오신날에도 절에 못 가시니 얼마나 섭섭하실까.

그 마음을 아들이 전해주는 절 떡 몇 조각으로 달래곤 하신다. 오늘은 절에 가서도 밥을 못 먹었다고 하니까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에 밥을 한가득 퍼서 있는 콩나물과 비름나물, 시금치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썩썩 비벼 내놓으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날 저녁, 아파트 주방에 탑처럼 높은 부처님 상을 모셔놓고 <화엄경> 구절구절을 나에게 설하신다.

“밥을 얻었을 때는 밥을 먹고 얻은 그 힘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뜻을 두고 정진해야 하며 음식을 삼킬 때에는 선정의 기쁨을 삼킨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노쇠한 어머니가 온몸으로 천 번 만 번을 곱씹으셔서 삭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 말씀을 듣는 이 아둔한 아들은 오늘 점심 한 끼 못 먹었다고 내심 불평했던 일이 부끄럽게 뒤통수를 친다. 그런 아들 마음에 공양이라도 내리시듯 한 술 한 술 떠 넣어 주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오늘 따라 이 속세에서 가장 따듯한 도량인 듯 느꺼워진다.

[불교신문3596호/2020년7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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