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31육군병원 6.25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다”
“통도사 31육군병원 6.25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다”
  • 이성수 기자
  • 승인 2020.07.06 15:52
  • 호수 35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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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목격담 증언 잇따라 나와
통도사 관련자 증언 청취 공개


통도사 육군병원 실체 ‘증거’
정부, 역사적 사실 인정해야
나라위한 통도사 역할 증명
최근 통도사가 공개한 대광명전 부상병 낙서 ‘통도사야 잘 있거라’의 주인공인 고(故) 고재석씨의 아들들이 증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성록씨, 고재록씨, 통도사 기획국장 지범스님, 사회과장 정대스님, 최은영 월간 통도 기자.
최근 통도사가 공개한 대광명전 부상병 낙서 ‘통도사야 잘 있거라’의 주인공인 고(故) 고재석씨의 아들들이 증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성록씨, 고해록씨, 통도사 기획국장 지범스님, 사회과장 정대스님, 최은영 월간 통도 기자.

한국전쟁 당시 국군 부상자들을 치료한 ‘통도사31육군병원(분원)’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문스님)는 7월 6일 31육군병원 본원(동래)에 근무 중 통도사 분원을 방문한 박기수 씨, 선친이 통도사육군병원에 입원했던 고성록·고해록 씨, 해동중학교 재학시절 통도사를 방문해 육군병원을 실제 목격한 김용길 씨 등의 증언을 공개했다.

이번에 나온 증언은 한국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복무한 김진조 부산 김내과 원장의 목격담과 대광명전 등에서 발견한 부상병들의 낙서를 통도사가 공개한 후 불교신문을 비롯한 교계 안팎의 언론보도를 본 제보자들이 통도사에 연락하면서 드러나게 되었다.

소식을 접한 통도사는 기획국장 지범스님과 사회과장 정대스님이 곧바로 제보자들을 직접 만나 통도사31육군병원(분원)의 실체를 확인하는 역사적인 증언을 청취했다. 이로써 한국전쟁 당시 통도사가 육군병원으로 징발되어 전선에서 부상당한 장병들을 치료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통도사는 이번 증언을 영상, 녹취, 문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해 역사적인 자료로 만들었다. 증언 청취에는 기획국장 지범스님, 사회과장 정대스님, 이수진 통도사 기획주임, 최은영 월간통도 기자가 함께 했다.
 

학도병 1기로 군에 입대해 부산 동래에 있던 31육군병원 위생병으로 군수과에 근무하면서 통도사 분원을 방문했던 박기수씨의 ‘제대증서’
학도병 1기로 군에 입대해 부산 동래에 있던 31육군병원 위생병으로 군수과에 근무하면서 통도사 분원을 방문했던 박기수씨의 ‘제대증서’

당시 분원장 ‘김승곤 중령’
트럭으로 군수물자 수송해
부상병 늘어 1951년 ‘개원’

○…학도병 1기로 군에 입대한 박기수(1932년생)씨는 부산 동래에 있던 31육군병원 위생병으로 군수과에 근무하면서 통도사 분원을 1~2회 방문했다. 박기수 씨는 “통도사 경내에 31육군병원 분원이 있었으며, 후에 31육군정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면서 “당시 분원장은 ‘김승곤 중령’이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화물트럭을 이용해 동래에서 통도사로 군수물자를 운송했으며, 통도사 분원에 서 자는 날 영축산에 있는 빨치산들의 습격을 받아 공양간 아궁이에 숨었다는 일화도 전했다.

그는 “낙동강, 팔공산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 1951년 봄 무렵에 통도사 분원을 개원했다”면서 “주로 동래정미소에서 가져온 군량미를 사람 수 만큼 운송했다”고 증언했다. 박기수 씨는 “영축산에 빨치산이 있어 통도사 뒤쪽에 경비중대가 주둔했다”면서 “한번은 양산 신기리에서 군 트럭이 공비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박기수씨(가운데)가 기획국장 지범스님(오른쪽)과 사회과장 정대스님(왼쪽)을 만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기수씨(가운데)가 기획국장 지범스님(오른쪽)과 사회과장 정대스님(왼쪽)을 만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통도사에서 통지받고 ‘전역’
보름간 입원하며 치료 받아
대광명전 낙서 ‘선친’ 필체

○…최근 통도사가 공개한 대광명전 부상병 낙서 ‘통도사야 잘 있거라’의 주인공인 고(故) 고재석 씨의 아들 고성록·고해록 씨의 증언도 나왔다. 지난 7월1일 경기도 분당에서 통도사 기획국장 지범스님과 사회과장 정대스님을 만난 고해록씨는 “언론에서 본 해당 낙서가 부친의 필체”라면서 “당시 아버님은 31육군병원 분원(통도사)에 입원했고, 통도사에서 전역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필적을 감정해 부친 글씨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고해록 씨는 “아버님은 통도사에서 많은 부상병, 병사들과 보름 정도 함께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다”면서 “동료들의 이름도 몇 분 언급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해록 씨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을 통도사로 다녀오자 선친은 “내가 예전에 통도사에서 제대를 했는데 너희가 거기를 다녀왔느냐”고 말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통도사 기획국장 지범스님은 “당시 통도사 육군병원에서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전역과 복귀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통도사에서 치료받은 군인 가운데 일부가 곧바로 전역했으며, 국방부에도 전역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故) 고재석씨의 친필과 대광명전 벽에서 발견된 ‘통도사 잘 있거라’ 필체를 비교한 사진.
고(故) 고재석씨의 친필과 대광명전 벽에서 발견된 ‘통도사 잘 있거라’ 필체를 비교한 사진.

부상병 불단 위 올라가고
전각 안팎은 낙서가 즐비
용화전 ‘연기문’과 일치해
경전 찢어 ‘불쏘시개’ 사용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해동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김용길(1934년생)씨도 부산 연제구 자택에서 지범스님과 정대스님을 만나 당시 직접 겪은 일화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김용길씨는 “1951년 8월 즈음에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설암스님을 비롯한 몇몇 스님과 동행하여 통도사에 있는 육군병원을 방문했다”면서 “2시간 가량 육군병원 내부를 실제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현재 성보박물관 자리에 있던 보광중학교 앞에는 칼빈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경비를 서면서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자 설암스님이 “우리는 통도사 스님들”이라면서 “당신네들도 현역 군인이지만 앞서 통도사 스님들 가운데 독립운동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설암스님은 “통도사 사적비에는 내 이름(설암스님)도 기록되어 있고, 이전에 주지도 지냈다”면서 “통도사가 걱정이 되어 왔다”고 밝혀 출입을 어렵게 허가받았다고 한다. 당시 부상병이 치료받는 통도사 육군병원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고 회고했다.
 

1951년 해동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김용길씨가 당시 일화를 회고했다. 왼쪽부터 통도사 사회과장 정대스님, 기획국장 지범스님, 김용길씨.
1951년 해동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김용길씨가 당시 일화를 회고했다. 왼쪽부터 통도사 사회과장 정대스님, 기획국장 지범스님, 김용길씨.

김용길 씨는 “부처님 위에 올라간 군인도 있었고, 나무라는 나무는 공양간에 가져다 불을 지피는데 사용하고 있었다”면서 “용화전에는 환자들이 가득차 있었는데, 벽에는 낙서로 엉망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대광명전 불상을 비스듬히 돌려놓고 불단 위에 올라간 부상병이 여럿이었다고 했다. 당시 김용길씨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동행한 김수성 스님에게 “이래도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곁에 있던 설암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마라, 그러다 맞아 죽는다”고 답했다는 안타까운 상황을 밝혔다.

대웅전, 보광전, 방장실, 화엄전 등 통도사 경내 전각 상황도 비슷했다. 전각마다 환자들이 가득찼다. 지휘통제실로 사용하고 있던 관음전에는 책상 위에 권총이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약사전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상주했고, 보광중학교는 군병원 행정실로 사용했다.

김용길 씨는 “지장전을 교회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불상을 돌여놓은 지장전에서는 ‘할렐루야’ 노래가 나왔다”고 전언했다. 당시 소문에는 통도사 육군병원에 2800명 정도의 부상병이 있었다고 한다. 용화전 불상 연기문에는 3000명으로 기록하고 있어 내용이 사실상 일치한다,

김용길 씨 증언에 따르면 통도사육군병원은 1952년 4월경에 철수하였는데, 이는 지난해 용화전 불상 복장에서 나온 연기문의 내용과 일치한다. 병원이 철수하고 올라가 목도한 통도사의 상황은 ‘비참’ 그 자체였다.

김용길 씨는 “해동중학교 동기들과 마을 사람들이 청소하러 올라갔는데 엉망진창이었다”면서 “공양간에는 경전이 다 찢겨진 상태로 불탄 채 뒹글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불에 탄 경전과 문서를 본 구하스님이 “이놈들은 손을 안댄다 카더니 와이라 다 손을 댔노”라며 설암스님을 경책했다는 목격담도 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나온 이번 증언은 지난해 용화전 불상 연기문과 최근 대광명전 낙서, 마을 주민 목격담에 이어 통도사육군병원의 실체를 확인하는 구체적인 증거이다. 영축총림 통도사는 육군병원 존재 사실을 국가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은 “나라가 어려울 때 통도사는 기꺼이 도량을 부상병들의 치료를 위해 제공했다”면서 “그런데 정부에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지 현문스님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전투하는 과정에서 부상 당해 통도사에 치료받은 군인들을 비롯해 전몰장병을 위한 추도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국가가 어려울 때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통도사 스님과 주민들에게 정부와 국민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통도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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