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 하심 자비를 수행근본이라 일러주셨습니다”
“인욕 하심 자비를 수행근본이라 일러주셨습니다”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7.06 11:26
  • 호수 3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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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당 종산대종사 추모 특집’
종산대종사 어록 모음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된 종산대종사 영결식은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키며 엄숙하고 장중하게 봉행됐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된 종산대종사 영결식은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키며 엄숙하고 장중하게 봉행됐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물질과학이 고도로 발달됐지만 아직 평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곳곳에서 시(是)와 비(非)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답도 제시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정진해서 ‘반야’의 지혜가 열리고, 그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불만불평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무엇을 만들려고 하면 시비가 일어나게 됩니다. 물질로 해결하지 못한 세상사를 푸는 길은 우리 모두 정진해서 지혜를 여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불교신문 2127호 2005년 5월6일자 ‘봉축 특별인터뷰’ 中)

○…“불교 수행을 흔히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닦는다고 하지요. 중요한 것이 빠져있어요. 계율을 지켜야 정혜를 수월하게 닦을 수 있습니다. 계율은 특히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예요. 부처님의 말씀은 무상(無上)하고 무변(無邊)하며 무심(無深)한 것으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거스르는 것은 곧 배불입니다. 계율을 모르고, 따르지 않는다면 곧 배불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이 정혜를 올곧게 닦을 수 있겠습니까. 계율을 따르면 수행이 더 잘 됩니다. 수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마땅히 계정혜 삼학을 수행해야 합니다.”(불교신문 2588호 2009년 1월1일자 ‘신년 특별인터뷰’ 中) 

○…“원로의원 스님들 전원은 이에 수행자의 상징인 무소유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사후 개인명의 재산 일체를 종단에 출연할 것을 공표하면서 종도들 역시 작은 이유를 달아 이의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수행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처님의 참 제자로서, 종도로서 수희 동참해 줄 것을 주문하는 바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종단을 수행공동체로 완성하는 지름길이며 수행자의 근본 율장인 ‘무소유’를 실천하는 지혜의 길입니다” (불교신문 2010년 2619호 5월1일자 ‘승려 개인명의 재산 종단 출연 지지 및 독려 담화문’ 中) 

○…“노스님들이 불교신문을 보면 ‘우리신문’이라고 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불교신문이 종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언론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신문은 한국불교와 종단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하는 실록(實錄)이기도 합니다. 창간 50년을 맞이한 불교신문이 이제는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기에 와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난관을 극복하면서 정진해 온 불교신문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서, 새로운 50년을 힘차게 전진해 나가길 기원 드립니다.” (불교신문 2670호 2010년 11월10일자 ‘창간50주년 축하메시지’ 中)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세우자면, 우리 불자들이 먼저 이웃에게 자비희사의 무량한 마음을 보여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부처님처럼 먼저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은 어둠에서 광명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증오에서 화해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중생에서 부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은 우리가 이렇게 살기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 즐거운 날, 기쁜 날입니다. 우리 모두 두 손 모으고 부처님 오신 뜻을 되새기는 공양을 올립시다.”(불교신문 2718호 2011년 5월7일자 ‘봉축 특별법문’ 中)

○…“세상은 급하게 변하고 또 변하여 한편으로는 풍요하나 한편으로는 빈곤합니다. 물질은 넘치나 정신이 궁핍하고, 말은 많으나 실천이 따르지 못합니다. 유리조각이 비록 투명하기는 하나 그 날카로움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듯 백가(百家)가 쟁명(爭鳴)하여 화합할 줄 모릅니다. 상하(上下)의 분별이 없어지고 도의(道義)가 무너져 내리니 날마다 듣는 말이 전대미문(前代未聞)입니다.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바라보고 걸어야 하듯 출신활로(出身活路)를 얻으려면 현성(賢聖)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불고조(古佛古祖)는 이 길을 바로 걸어 혜명(慧命)을 이었고, 삼독중생(三毒衆生)은 집착을 놓지 못해 삼도고륜(三途苦輪)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하니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누구나 반드시 일의정법(一義正法)에 귀명(歸命)해야 할 것입니다.” (불교신문 2012년 2781호 1월1일자 ‘신년사’ 中)

○…“종도의 한 구성원으로서 종정 예하는 부디 자애를 드리운 금강 같은 가르침으로 종단을 이끌어 주시고 자비로서 일체 중생을 살펴 주실 것을 청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동참한 일체 종도와 인연 대중들은 새로운 종정 예하를 중심으로 종단의 원융산림을 완성하고 그 가르침을 받들어 종지종풍을 굳건히 할 것이며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종정예하 및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함께 5대 결사를 원만회향해야 할 것입니다.” (불교신문 2012년 2805호 4월4일자 ‘제13대 종정 진제대종사 추대식 추대사’ 中)

정리=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 종산대종사 떠나시던 날 

“명종 울리자 지리산도 흐느꼈다”

지리산 큰 어른이 홀연히 떠났다. 한국불교의 큰 스승 혜광당 종산대종사가 원적에 들었다. 6월 27일,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명종이 울리고 대종사 영결식이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조계종 어산어장 인묵스님의 영결법요 속에 문도대표들의 헌다 헌향이 이어지면서 고요하던 지리산도 흐느꼈다.

영결식에서 종산대종사의 행장 첫 머리는 함께한 대중들의 가슴을 울렸다. “스님께서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절친한 벗이 병고로 세상을 일찍 떠나자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보다는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출가하셨습니다….”

또한 죽기 살기를 각오하고 수행하던 큰 스님의 용맹정진은 오늘을 사는 후학들에게 귀감으로 다가왔다. “널빤지에 못을 박아 앞에 세워놓고 수행 하다, 긁히고 찔리고, 심지어 피가 군데군데 엉겨 붙어있던 도반의 얼굴을 통해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 깊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영결사와 조사에서 평생 수행정진하신 종산 대종사의 본분사가 하나둘 소개됐다.

“나는 한평생 나보다 못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기를 원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조차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존경합니다.” “수행자는 계율을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내 허물을 보고 참회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평소 ‘산승은 산중에 살며 계정혜 삼학을 지키고 사는 것이 본분사’라 하셨던 종산 대종사 마지막 길에도 가사 한 벌이 전부였다. 큰스님 법구는 인로왕번, 삼신불번, 만장의 인도로 각황전 앞 영결식장을 떠나 보제루, 천왕문, 금강문을 지나 일주문 앞에 잠시 멈췄다. 대웅전 부처님께 이승에서의 마지막 예를 올렸다.

다시 하얀 부도를 형상화한 연화대까지 가는 길 내내 진제 종정 예하를 비롯한 대중이 뒤를 이었다. 그 길에는 지역 포교사들도 수백 장의 만장을 들고 큰스님의 법구를 장엄했다. 승속이 하나 되어 큰 스승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애도했다. 

“불 법 승,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연화대에 불이 붙여지고 대중들의 ‘나무아미타불’ 염불이 이어졌다. 연화대의 열기는 지리산이 온통 불에 타는 듯 했다. 큰 스님 법구가 화염에 쌓이고 화엄문도회 문장 명선스님 곁으로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말없이 다가와 합장했다. 두 스님은 연화대 불길이 사그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불길속의 큰 스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대중도 두 손을 모으고 큰스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역대전등(歷代傳燈),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렇게 큰 스승과 어른스님에 이어 후학들에게 이어져 가고 있었다. 

화엄사=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maha0703@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종산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합장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종산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합장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종단장 집행위원장 덕문스님  

“큰스님 본받아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엄격하셨지만 남에게는 굉장히 자애로운 분이셨습니다.” 원로회의 사무처장으로 종산대종사를 가까이서 모신 종단장(宗團葬) 집행위원장 덕문스님(제19교구본사 화엄사 주지)은 “몸이 편찮으실 때도 의복을 정제(整齊)한 후에 손님을 맞이하셨다”고 대종사를 회고했다.

덕문스님은 “종산대종사는 후학들에게 말씀을 낮추신 적이 없다”면서 “조카 상좌이니 저에게 말을 편히 하셔도 될법한데, 한 번도 그리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타인을 배려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크셨다”면서 “본사(화엄사)에 자주 내려오시라고 말씀드리면, ‘대중이 불편 할 수 있어요’라고 답하셨다”고 전했다.

2011년 도천스님이 원적하고 이듬해인 2012년 화엄사 조실로 추대됐지만 종산스님은 거듭 사양했다. “문도들이 찾아뵙고 여러 번 간청 드리자 ‘그럼 이름만 잘 간직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화엄사는 1984년 도광스님 열반 후 ‘그 자리는 어른의 몫’이라는 뜻으로 조실채를 비워놓는 전통이 있다. 도천스님에 이어 조실로 추대된 종산스님도 조실채에 입주하지 않았다.

덕문스님은 “법상(法床)에 올라 말씀으로 전하시는 것보다, 항상 실행을 위의(威儀)로 삼으셨다”면서 “책을 내시거나 거창하게 법문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평소의 삶 자체가 간결한 수행자”라고 종산대종사를 기억했다. “문중의 어른으로 법문을 내려달라고 말씀을 올려도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결제 법문을 간결하게 써주시고, ‘화엄문중가풍(華嚴門衆家風)’을 전하셨을 뿐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참선수행을 강조하셨습니다. 항시 화두를 들라고 하셨는데, 차로 이동하면서도 화두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덕문스님은 “어른 스님은 철저하게 인욕, 하심, 자비를 수행의 근본으로 삼으라고 하셨다”면서 “큰스님을 본받아 수행하고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소임을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평상시 하시던 말씀을 후학들이 잘 따르는 것이 큰스님 유지를 올바르게 계승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덕문스님은 대종사의 종단장을 원만하게 봉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스님은 “종단장이기에 종단에서 주최하지만 화엄사의 가풍을 가미하여 전통식으로 위엄 있게 장례를 모셨다”면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여법하게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해준 화엄사의 스님, 직원, 신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인사했다. 

한편 덕문스님은 분향소에 조화(弔花)를 안 받으려고 했지만 코로나 19로 화훼농가가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문도와 사중(寺中) 논의를 거쳐 입장을 바꾸었다. 

화엄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3596호/2020년7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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