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광당 종산대종사 추모 특집’
진제법원 종정예하 영결 법어


본분사인 생사해탈을 위해
위법망구의 정진으로
일생일관하신 종장…

종단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원로회의 의장 소임 마다않는
대자비의 수행사 보이시어
후학의 귀감이셨습니다

진제 종정예하가 종산대종사의 원적을 추도하며 향을 사르는 모습.
진제 종정예하가 종산대종사의 원적을 추도하며 향을 사르는 모습.

옛 부처와 삼천 세계를 잡아 열고(拂開古佛三千界) 모든 중생의 한 조각 마음을 가리켜냄이로다.(指出群生一片心) 평생토록 심담을 만 사람에게 기울이니(平生心膽向人傾) 허물이 하늘에 가득함을 범하니 많고 많음이로다.(過犯彌天已不輕)

종산대종사께서는 생사무상(生死無常)의 고통을 느끼고 출가를 단행(斷行)하신 이래 본분사(本分事)인 생사해탈을 위해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진으로 일생일관(一生一貫) 하신 종장(宗匠)이셨습니다. 

또한 종단(宗團)의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원로회의 의장의 소임을 마다하지 않는 대자비의 수행사(修行事)를 보이시어 후학의 귀감(龜鑑)이셨습니다. 그러한즉, 종산대종사께서 죽었다고 하겠습니까? 살았다고 하겠습니까?

생야부도(生也不道) 사야부도( 死也不道)로다. 금일(今日) 노사(老師)가 하처거(何處去)오. 살았다고도 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할 수 없음이로다. 금일, 필경에 종산대종사가 어느 곳으로 가셨습니까? 사하동촌작우(寺下東村作牛)하여 봉초끽초(逢草喫草)하고, 서촌작마(西村作馬)하여 봉수끽수(逢水喫水)로다. 절 아래 동쪽 마을에 소가 되어서 풀을 만나면 풀을 먹음이요, 서쪽 마을에 말이 되어서 물을 만나면 물을 먹음이로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위대한 위산(潙山) 도인이 있었는데, 출세(出世)를 하니 사방에서 대중이 운집하여 1500 대중을 거느린 위대한 도인이었습니다. 임종(臨終) 시에 다달아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법문을 하시기를, “내가 이 몸뚱이를 여의고 산 아래 단월(檀越)집에 물빛 암소(水牯牛)가 되어서 오른쪽 옆구리에 ‘위산승 영우(潙山僧 靈祐)’라고 다섯 자를 쓰고 나오리니, 이러한 때를 당해서 ‘위산승 영우’라고 불러야 옳으냐, ‘물빛 암소’라고 불러야 옳으냐?” 그러자 그 당시 대중 가운데서 앙산(仰山)스님이 일어나서 여자 절을 정중히 하니, 위산 도인께서 “옳고 옳다!”하심이로다.

만약 당시에 산승이 참여했던들, ‘곤두박질을 세 번 하겠다.’ 그러면 앙산스님께서 여자 절을 하는 것이 옳으냐?, 산승이 곤두박질 세 번하는 것이 옳으냐?

시자야! 차 두 잔을 가져와서 두 분에게 한 잔씩 올려라!

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분향
 

종산대종사 친필 가르침
종산대종사 친필 가르침

종산대종사 ‘화엄문중가풍’
조실 추대 후 문도에 전해

종산대종사는 2012년 화엄사 조실로 추대되었지만 몇차례 고사 후 수락했다. 대종사는 화엄문중 문도들에게 초심을 잊지 않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정진하고, 중생 제도와 문중화합을 당부하는 가르침을 전했다. 

‘화엄문중가풍(華嚴門中家風)’이란 제목의 종산대종사 유시(諭示)는 불망초심(不忘初心), 개근삼학(皆勤三學), 요익군생(饒益群生), 화조일문(和造一門) 네 가지이다. 뜻은 다음과 같다. 

△불망초심(不忘初心) 초발심을 잊지 말라 △개근삼학(皆勤三學) 계정혜 삼학을 부지런히 닦으라 △요익군생(饒益群生)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라 △화조일문(和造一門) 화합하는 한 문중이 되라.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종산대종사 영결식에 참석한 진제 종정예하와 총무원장 원행스님 등 대중 스님들 모습.
종산대종사 영결식에 참석한 진제 종정예하와 총무원장 원행스님 등 대중 스님들 모습.

◼ 종산 큰스님을 추도하며…

○…스님이 근진(根塵)을 형탈(逈脫)하고 우리 곁을 떠나자 이 산중(山中)은 텅 비어 깊은 적막에 빠졌고, 별들은 빛을 거두어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눈앞에 가득한 청산(靑山)은 옷깃을 여미고 슬픔에 잠겼고 먼 산 뻐꾸기는 울다가 목이 메었습니다. 이처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슬픔을 참지 못해 애도하는 것은 이 산중(山中)에 주인(主人)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 스님은 오늘 적멸(寂滅)의 진상(眞相)만 남기고 무생(無生)의 세계로 돌아가 법계(法界)의 자유인(自由人)이 되셨습니다. … 이제 무생(無生)의 지혜로 사람들을 깨우쳐 안심입명(安心立命)에 이르게 하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만목청산(萬目靑山)이 대종사(大宗師)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무비종산(無非宗山)이로다. -원로의장 세민스님 추도사 中

○…편안하고 가장 즐거운 일! 대종사께서는 수행과 정진을 항상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고행정진을 멀리하려는 저희 후학들을 크게 경책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 나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대종사께서는 한평생 나보다 못한 사람, 나보다 공부가 덜 된 스님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적에 드시는 그 순간까지도 대종사께서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단순한 겸양과 하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에야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 대종사께서는 법당 기둥에 난 풀이 곧 심인화(心印華)임을 알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염치없지만 그것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임종게를 남기셨습니다. 저희들은 대종사께서 다시 ‘지혜의 큰 빛으로(慧光)’ 사바세계에 나투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혜광당 종산대종사’이시여! 속환사바(速還娑婆)하시어 광도중생하소서. -총무원장 원행스님 영결사 中 

○…대종사께선 자신을 끝없이 낮추는 수행을 통해 가장 우뚝한 선지식으로 숭앙받으셨습니다. … 대종사께서 걸으신 참 수행자의 길은 이제 종단의 역사이자 수행자의 거울이 됐습니다. 이제 모든 수행자와 사부대중이 대종사의 자취를 따라 수행에 더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서 대종사와의 세연이 다한 슬픔을 새로운 희망으로 꽃피워내야겠습니다.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아 원왕생 원왕생 비옵나이다.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 조사 中

○…큰스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보이셨던 구도자로서의 행장과 참 모습은 불교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인천의 사표이자 민족의 스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 이제 애통한 마음으로 큰스님을 떠나보내는 저희 후학들이 올리는 공양을 받으시고, 적멸의 그윽한 법향 속에서 잠시 쉬셨다가 불보살로 화현하시어 어리석은 중생들의 길잡이가 되어 불조의 혜명이 이 땅에 현현하도록 하소서.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정묵스님 조사 中

○…큰스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스님께서 일구어 놓으신 보살행의 발자취를 후대에 올곧게 전하며 종단의 외호단체로써 더욱 정진하여 불자로서 본연의 목적을 구현하겠습니다. … 큰스님의 지혜가 메마른 대지에 꽃비 되어 내리듯, 이 땅에 다시 왕림하시어, 오늘 이 추도의 자리가 큰스님과 저희가 다시 만나는 장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기흥 중앙신도회장 조사 中

○…오늘 우리는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의 천년고찰 화엄사 청정도량에서 한 생명이 세상의 몸을 벗은 슬픈 대종(大鐘)소리를 듣습니다. … 저희들은 다시금 큰스님의 열반송을 되새기며 한없이 겸손하고 자애로운 스님의 미소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큰스님의 자성청정한 본래면목으로 무명중생들을 자비로서 섭수하여 주십시오.-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 中

정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사형인 종산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지킨 명선스님(맨 앞).
사형인 종산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지킨 명선스님(맨 앞).

◼ 화엄문도회 문장 명선스님

“사형 스님은 종단 법계질서 바로잡은 종도들의 거울”

“사형(師兄) 스님의 장례를 종단장(宗團葬)으로 봉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방의 원로대덕 스님들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두루 오셔서 대종사의 마지막 떠나시는 길에 추도의 뜻을 전해주셔서 문도로서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명선스님(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은 6월27일 화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엄수된 종산대종사 영결식에서 문도대표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감사인사를 건넸다. 

여수 흥국사에서 주석하고 있는 명선스님은 6월23일 원적에 든 종산대종사의 법구가 청주 보살사에서 이운해 화엄사에 도착할 때도 직접 화엄사를 찾아 사형 스님의 법구를 맞았다. 

특히 우리 나이로 85세 고령에 보름 전 발목을 다쳐 지팡이를 짚는 등 거동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원적 사흘째인 6월25일부터는 분향소를 지켰다. 스님은 분향소가 설치된 화엄사 ‘화엄원’과 조문을 오는 원로 스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다각실로 마련한 ‘덕장전’을 오가며 조문객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손수 준비해 온 향(香)을 종산대종사 영단에 올린 스님은 6월25일 오후부터 조문객을 직접 맞이하기 위해 상주석을 지키면서 분향소 운영과 영결식 준비를 지도하는 등 종산대종사의 마지막 길에 소홀함이 없도록 정성껏 살폈다.

명선스님은 “종산대종사가 종도들의 거울이 되고 종단에 크게 기여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대종사(大宗師) 법계 품서제도를 도입해 종단의 법계질서를 확립하는데 기여한 일을 제일 큰 업적으로 꼽았다. “우리 종단의 큰 어르신이신데, 큰 기둥이 넘어간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특히 원로의장 소임을 맡고 계시던 2004년, 종단의 공식적인 제도로서 대종사 법계를 품서할 수 있도록 앞장섰습니다. 부처님의 계맥(戒脈)을 오늘날까지 잇는 물꼬를 트시는 등 종단의 법계질서를 잡아 놓으셨지요.” 

명선스님은 종산대종사를 위해 만장에 담을 ‘再明大事 普利群生之大願(재명대사 보리군생지대원)’이라는 글을 통해서도 사형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는 “일대사인연을 다시 밝히시고 뭇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결식 후 다비장을 찾은 명선스님은 스님의 법구를 모신 연화대에 거화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화엄사=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불교신문3596호/2020년7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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