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와 함께 청주를 거닐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운천동 행정복지센터 사이가 운리단길이다. 오랜 점포와 유행을 따라가는 새로운 가게 그리고 직지의 이야기가 공존한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운천동 행정복지센터 사이가 운리단길이다. 오랜 점포와 유행을 따라가는 새로운 가게 그리고 직지의 이야기가 공존한다.

때가 때인지라 서울을 벗어나 아이들을 데리고, 이야기가 있는 그리고 거닐기 좋은 곳을 찾아보았다. 청주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시작된 이번 여행의 시작점은 청주 고인쇄박물관 주차장이다. 초행임에도 주변을 살피지 않고, 그냥 오솔길을 따라 언덕배기로 올랐다. 주민들이 오르내리는 산책로였다. 덕분에 동글동글한 지붕의 박물관과 바로 옆에 자리한 흥덕사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되돌아 내려갈까? 이왕 올랐으니 오른 길을 둘레길 삼아 내려간다. 이 길은 바로 흥덕사지로 닿는다.
 

흥덕사지에 복원된 금당과 석탑. 현존하는 최고(最古) 금속 활자본을 배출한 사찰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흥덕사의 위치는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양병산 기슭이다. 고려 우왕 3년(1377)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며 세계기록유산인<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이하 직지)등을 간행한 사찰이다. <직지>는 백운화상이 석가모니와 역대 조사 스님들의 법어와 어록 등에서 선의 요체를 간추려 역은 것을, 그의 제자들이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이다.
 

금속활자라는 특색을 강조한 모형물이다. 조명을 받으면 직지라는 글자가 그림자로 나타난다.

흥덕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됐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청주 부근에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직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다. <직지> 하권의 맨 끝장 간기(刊記)에 청주 흥덕사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다. 이후 1985년 발굴조사에서 흥덕사라는 문구가 새겨진 청동금구와 청동발우 발견됨으로써 <직지>를 인쇄했던 흥덕사 위치가 확인됐다.

또한 남북 일직선상에 중문과 탑, 금당, 강당 순으로 위치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이들을 둘러싼 회랑터 일부가 발견됐다.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모습은 금당과 석탑만 복원한 것이다.
 

<직지>의 문구가 세련된 모습으로 박물관 관람객을 맞는다.

<직지>는 한국에 없다. 그나마 금속활자본은 상권과 하권 가운데 하권만이 전해진다. 흥덕사 또한 현존하지 않는다. 절터와 일부 유물만이 전해진다.  <직지>와 이를 세상에 내놓은 흥덕사, 하필 애처로운 모습이 닿아있다. 프랑스에 가 있는 것은 우리 의지만으로 될 수 없지만, 흥덕사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부만 복원된 것은 안타깝다.  
 

박물관 안에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직지>의 주조과정을 모형으로 설치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스님 얼굴인데, 수염을 그려놓아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금속활자의 도시’ 청주를 알리기 위해 1992년 흥덕사지에 맞닿은 곳에 고인쇄박물관을 세웠다. 약 40000㎡ 면적에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세미나실과 기획전시실 그리고 5개의 상설전시실을 갖췄다. 제법 큰 규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의 역사와 주조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2017년 디지털 콘텐트를 추가하고 박물관의 동선을 재구성해 볼거리도 풍성하다.
 

오래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필방. 한문과 한글로 가게이름을 나란히 걸어 놓았다.

박물관 관람까지 마쳤다면 ‘운리단길’이 기다리고 있다. 운리단길은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운천동 행정복지센터까지 약 700m 거리 일대를 말한다.
 

지자체 지원을 받아 문을 연 카페. 음료와 함께 직지라는 글씨가 새겨진 빵을 판매하는데, 지역홍보를 위해 1인당 1개의 빵을 시식용으로 나눠준다.

먼저 투박한 상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역 새마을회가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만든 ‘새마을 직지글빵 카페’다. 세련된 상점 일색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이태원 경리단길과는 거리가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운리단길 상권에 <직지>로 특화된 지역 스토리텔링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지자체에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세련된 상점은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수십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필방, 멋진 글씨를 써주는 캘리작가의 작업실을 비롯한 여러 공방들은 찾아오는 이들을 누구나 반겨준다. 물론 세련된 상점과 먹거리 가게들도 있다. 여기에 장미미용실, 멋쟁이구제, 무지개인테리어, 한영식당 등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는 터줏대감 같은 친근한 간판이름들도 공존한다.

[불교신문3596호/2020년7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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