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해충 하나도 싫고 좋은 건
그만큼 나를 떠나지 못했다는 것

혜인스님
혜인스님

결국 새벽에 불을 켜고 한바탕 모기를 잡았다. 나도 웬만하면 안 죽이려고 한다. 특히 정진할 때는 아무리 달려들어도 스스로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모기 한 번 쫓다가 집중력이 더 달아나니까. 산이다 보니 방에도 벌레가 많이 들어오지만, 건들면 죽을 것 같은 연약한 애들은 놔두고, 건들 수 있는 녀석들은 밖으로 보내 준다. 그런데 어젯밤엔 직접 ‘에프킬라’를 손에 들었다.

‘천연오일을 함유한 내츄럴 허브향’이라니 우습게도 다소 안심이 된다. 따끔하고 가려움에 자꾸 잠을 깨는데 귀에 앵앵거리는 소리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모기들은 불을 켜면 사라지고 안 보이니 온 방안을 구석구석 쑤시고 들춰내, 숨어있던 모기가 날아오를 때마다 칙- 치익-.

며칠간 모기들 덕분에 잠을 설쳐도 꾹 참아보려 했더니, 그사이 방 안에 들어와 있던 모기가 일곱 마리, 여덟 마리…. 다 잡고 나니 이제 겨우 푹 잘 수 있겠구나 하고 안심하는데, 몇 십분 째 온 신경을 집중해서 잡다 보니 잠이 달아나 버렸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모기 밥이 되는 새벽 기도시간이지만 집중이 아주 잘 된다.

아이고 모기 보살님. 감사합니다. 목숨 바치면서까지 제 잠을 쫓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모기 보살님. 말로만 기도한답시고 폼 잡고 잠에 빠져있는 저를 좀 깨워주세요. 말로만 부처 된다 하고 이불(離佛) 속에서 부처 떠나고 있는 이놈 좀 물어가세요, 모기 보살님. 기도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미칠 때가 있다.

참아보려, 막아보려 해도 모기들은 언제나 몰래 방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한다. 방법이 없다. 물려서 아프거나, 죽여서 업을 짓거나, 아예 못 들어오게 해서 굶겨 죽이거나. 어차피 죽을 모기 따위는 마음에 걸림 없이 그냥 얼른 죽이고 정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럴 거면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나.

문제는 모기가 아니고 아상(我相)이야. 부처님은 전생에 사지가 찢기면서도 고통이나 원망은커녕 보살의 마음을 내셨잖아. 내가 작은 모기 하나도 싫어지고 좋아지고 하는 건 그만큼 좋고 싫은 나를 떠나지 못했다는 거잖아. 이 아상이란 놈도 걸리면 괴롭고, 죽일 순 없고, 버려지지도 않고. 딱히 방법이 없다.

그 덕분에 닦는다. 몰래 마음에 들어오는 번뇌가 없으면 난 마음 편히 퍼질러 잠이나 잘 테니까. 모기 보살님이 따끔하게 혼내 주셔서 얼른 일어나 닦는다. 번뇌 보살님이 괴롭혀 주시는 덕분에 닦으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감사해도 모기는 아랑곳 않고, 번뇌도 나를 괴롭힐 테지만, 덕분에 보살의 마음을 내라는 부처님 말씀이 더 사무친다. 어떤 대왕 모기도, 어떤 치성한 번뇌와 아상도 뚫을 수 없는 금강(金剛)과도 같은 튼튼한 마음. 반야의 마음. 바라밀의 마음.

아이고 모기 보살님. 제 피를 빠는 잠깐의 순간이라도 긴장하거나 불안해 마시고, 편안하게 배불리 빨다 가세요. 몸과 마음이 연결돼있다면, 그래서 핏속에도 마음이 깃들 수 있는 거라면, 저는 금강 같은 마음으로 금강같이 튼튼한 피를 만들어 놓을게요.

모기 몇 마리에 이렇게 좋고 싫어하며 번뇌로운 생각을 일으키는 건 팔자 좋은 수행자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목숨 걸고 피 빠는 것에 삶을 바치는 치열한 모기의 삶 앞에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요즘은 이렇게 팔자 좋은 수행자로서의 삶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다든지, 소중하고 보람차게 보내야겠다든지 하는 기대가 많이 사라진다. 수행자라는 상(想)도, 보살이라는 상도 치성한 번뇌 앞에선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다 모기 보살님 덕분이다.

[불교신문3595호/2020년7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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