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법과 현상 근본은 無

인연따라 존재해 자성 없고
본질 없어 때마다 달리 보여
사물 본래적 상태 ‘절대 무’

등현스님
등현스님

공의 의미는 단순하지가 않아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도 공이 어렵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반야경에서의 공은 크게 존재의 현상적 측면, 의미적 측면, 본래적 측면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다룬다.

현상적 측면의 공은 사물들이 현상적으로 존재하지만 인연 따라 드러나기에 자성이 없다는 측면의 공이다. 의미적 측면의 공은 사물의 존재가 나와의 주관적 인연에 의해서 전혀 상반된 모양으로도 보여진다는 가치적 측면의 공이고, 본래적 측면의 공은 사물들의 본래적 상태는 ‘절대무’라는 측면의 공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세 가지 양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오온, 12처, 18계, 12연기, 4성제 등의 법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오온은 나를 구성하는 요소이고, 12처는 세상의 구성요소, 18계는 의식의 발생하는 처소를 말한다. 12연기는 이 모든 것들의 발생하고 소멸하는 순서이고, 4성제는 본래적 상태로 회귀하는 방법론이다.

한마디로 ‘나’와 ‘세상’과 ‘의식’이 무자성으로 존재하고, 인연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보이지만, 본래는 없다는 것이다.

‘오온 자성개공 도 일체고액’은 지금 현재 내가 경험하는 좋거나, 나쁜 상태가 실체가 없이 인연따라 존재하는 것이기에, 집착을 놓아버리면 경계들로부터 발생하는 고통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온에는 고락이라는 수, 시비라는 상, 호오의 행, 이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 고락과 시비, 호오에 자성이 없다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인연의 프리즘을 통해서 경험되어지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을 바꾸고 집착을 놓아버리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것이 바로 공의 첫 번째 측면인 ‘오온 자성개공 도 일체고액’의 뜻이다. 

또한 인연 따라 형성되어졌다는 것은 그 인연이 바뀌면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되기도 하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제 학파에서는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물질과 정신 또는 오온이 독립되어서 의존함 없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인연생 인연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이 바뀌면 유익한 것이 해롭게, 해로운 것이 유익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공의 두 번째 측면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즉 좋고 편안한 환경 때문에 무능력자가 되기도 하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실력과 겸손한 성품을 갖추기도 한다. 괴로움이 즐거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연에 의해서 만물이 발생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공’ 가운데 고와 락이 없지만, 인연에 의해서 고통과 즐거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에서 업을 빼버리거나, 인연들을 제거하고 나면 실제로는 고통도 즐거움도 없다는 것이 바로 ‘절대무’라는 측면의 공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에는 고락도 시비선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인연에 의해서 선과 악도 발생하고, 인연에 의해서 복과 화도 존재하지만, 그 인연들을 제거한 본질적 상태는 선악 시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법과 현상들의 근본은 ‘무(無)’이다. 자성의 본질이 없기 때문에 인연 따라 여러 모양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자성이나 본질이 있다면 인연이 바뀐다 하여도 그 대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의 세 번째 측면인 ‘공중 무색성향미촉법’에서 ‘역무노사진’까지이다. 

금강경 18장에서의 “①마음의 흐름은 ②마음의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 ③마음의 흐름이라고 한다”는 구절은 법의 이러한 세 가지 측면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즉, ①의 ‘마음의 흐름’은 ‘현상적 측면’의 마음을 말하고, ②의 ‘마음의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는 마음의 본질적 측면인 ‘절대무’를 말하고, ③의 ‘마음의 흐름’은 마음이 본래 없는 상태를 경험한 자가 마음의 흐름을 보되 집착이 없는 마음의 ‘의미적 측면’이다. 

이처럼 공에는 무자성의 연기적 측면,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고 하는 상대적 측면, 그리고 본래 무라는 본질적 측면, 이렇게 세 가지의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금강경 논리의 골자를 이루는 것이다.

[불교신문3595호/2020년7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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