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적 지식 갖춘 교수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이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연장자에게 배운 교육 내용으로 여생을 준비하는 게 불가능한 역사상 첫 세대가 될지 모른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에서
 

 

보일스님
보일스님

➲ 4차 산업혁명시대 승가교육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 초연결의 시대, 인공지능 로봇과 공존해야 하는 시대, 창의성의 시대, 다양성의 시대 등등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표현들로 넘쳐나는 요즘이다. 이제 그 변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이 대변혁의 시대에 생존하고 미래를 선도할 인재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파괴적 혁신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이 거대한 변화는 누구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어제의 예측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권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인 학교는 어떠한가? 사각형 모양의 교실에 학생 수십 명을 앉혀놓고 교과서에 정리된 지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행된다. 학생들이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문제를 발견해가는 과정은 극히 제한적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진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입시 또는 취업이라는 목표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2020년 현재 전 세계 10대 기업 중에서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 등 무려 7개 기업이 모두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라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이 회사들은 우리나라처럼 공채로 신입사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들 잘 아실 테니,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취업에 대한 현 상황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어쨌든, 이 혁명적 변화는 불교에 있어서도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그리고 나노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기존의 고전적 인식 틀에 대한 재해석과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바깥세상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과 이해가 생겨나고 있다. 질병과 노화의 정복에 이어, 심지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시도까지 등장하고 있다. 생로병사라는 고통의 기본 구조, 그리고 윤회라는 개념에 대해서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적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는 이미 개발되었거나, 앞으로 개발될 무시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기술들에 대해서 그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종교 윤리적 대답을 준비하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책무를 우선 누가 떠안을 것인가. 바로 우리 스님들이다. 그래서 출가수행자를 길러내는 승가공동체의 승가교육에 불교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전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논의를 좁혀서 승가교육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너무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10년, 20년 뒤에 어떤 스님들을 세상에 배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일선 승가교육 현장에서 체험하고 느꼈던 단상들을 전 세계적 변화와 관련지어 몇 가지 정리해 본다. 

➲ 커리큘럼에서 프로그램으로

세계는 현재 인재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인재가 중시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단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그 변화의 내용에 따라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승가의 인재상은 어떠할까. 과거 승단 내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전승하던 시대에는 세인들로부터 그 자체로 종교적 권위를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적으로 보급된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불교지식과 교리 자체를 습득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통해 불교 경전이나 논문, 법문 등의 다양한 자료를 즉각적이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승가교육 혁신이 창종 이후 그간의 엄청난 노력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만족하거나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기본교육과정으로 제시한 커리큘럼은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설법과 토론’ 등의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목도 신설되었다. 그러나 이 커리큘럼도 사찰승가대학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서는 이행해나가기가 부담스럽거나 역부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정규 교과과정과 현실 사이의 틈을 좁히는 방법으로써 다양한 프로그램들의 개발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정규 커리큘럼을 이행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입체적으로 교과목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적극적으로 장려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간화선의 이해가 과목으로 편성된 학년에서 그해 가을에 직접 중국 선종 사찰을 방문해서 역사적 기원과 자취를 짚어보는 식이다. <화엄경> 시간에 ‘보현행’이라는 개념을 수업에서 다루었으면 호스피스 또는 복지센터 등 현장에서 어떤 맥락으로 이 개념이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체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는 ‘중도’라는 개념을 배웠다고 했을 때, 일상 속에서 어떻게 중도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프로그램화된 토론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직면하도록 하고 세상의 고통과 마주하게 과정이다. 결국 정규과목과 병행되는 프로그램의 진행 과정은 다시 역으로 교실에서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수업을 가능케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식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원하는 지식을 융합하고 연결할 수 있는 생각이 중요하다. 이것이 승가 교육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는 불교에 있어서도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그리고 나노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기존의 고전적 인식 틀에 대한 재해석과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는 이미 개발되었거나, 앞으로 개발될 무시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기술들에 대해서 그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종교 윤리적 대답을 준비하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는 불교에 있어서도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그리고 나노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기존의 고전적 인식 틀에 대한 재해석과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는 이미 개발되었거나, 앞으로 개발될 무시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기술들에 대해서 그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종교 윤리적 대답을 준비하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산문안팎 경계 넘어 현장으로

현재 사찰승가대학은 다양한 배경의 학인 스님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교실 중심의 수업에서는 고학력의 학인 스님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고 그 격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여기서 현재 제도교육의 문제점을 승가교육이 그대로 답습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해서, 현장 중심의 학습을 통해 교실 밖에서 다양한 변수에 노출된 학인 스님들은 단순히 교과서에 국한된 체득이 아닌 실질적인 경험과 사유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은 교실 수업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수업구성원들의 상호이해와 개성과 장점을 발현할 수 있도록 견인한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화엄경의 보현행을 배우는 내용에 대해 아무리 한문 해석이 뛰어난 학인이라 하더라도 현장 실습 과정에서 주저하거나 직접 헌신하지 못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는 반면, 어떤 학인은 교실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매우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과 웃은 얼굴로 환우를 돌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누가 화엄경의 보현행을 잘 이해하고 체득했다 할 수 있을까.

이제 불교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정보의 단순 전달에서 교육적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종교단체 또는 수행공동체의 수업은 실제 수행과 중생구제의 이념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식을 배울 있는 곳이어야 한다. 세상은 열린 사고와 폭넓은 사상을 가지고, 여러 가지 불교 개념들을 다양한 상황들에 적용할 수 있는 수행자를 필요로 한다.

특히 불교는 교리와 세상의 현실 상황이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히려 그 경계를 해소하고 현장에서 다양한 분야들을 연기적으로 연관 지어 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 받는 수업에서 ‘하는 수업’으로

강의 중심적 교육 방법은 높은 수치의 실패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교실에서는 배워야 하는 정보 대부분은 강의가 끝난 후, 수 주 내 잊힌다는 것이다. 강의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했으면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적용되고 발현되는지 직접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 마디로 ‘하는 수업’이란 공부한 내용을 다양한 문맥과 상황에서 직접 실천해 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면밀한 관찰을 토대로 과목 그 자체보다 학인 개개인의 개성과 근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다양성을 가진 학인들이 서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창의적인 방식의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각 교육 기관 단위로 ‘1인 프로젝트’ 또는 ‘소그룹 프로젝트’ 지원 사업을 펼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출가한 승가 공동체의 특성상 개인의 관심사를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이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에게 도움이 크다. 개인이 프로젝트의 수행 과정에서 얻은 성취들은 공동체 전체의 역량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 또는 소그룹 중심의 팀들이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해 보는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특정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를 다른 프로그램에 적용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조사한 다양한 정보와 주제에 대한 정리된 이해는 자원봉사활동 현장에서 또는 순례길에서 발현될 수 있다. 또 사찰요리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마한 실력은 봉사활동 현장에서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동적 지식을 갖춘 교수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높은 수준의 유동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자신만의 학문적 경계를 고집하지 않는 유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융합과 연결은 가르치는 스님 자신의 성취만이 아니라 그 수혜를 고스란히 학인 스님들이 받고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은 학인 스님들의 수행자로서의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이해와 경험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595호/2020년7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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