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흥당 백운대강백 추모 특집’
백운대강백 어록 모음

1970년대 중반 백운스님 모습.
1970년대 중반 백운스님 모습.

○…“저에게는 기쁨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섭니다. 본시 자신(自信)을 갖고 응모(應募)한 글이 못되어서 별로 기대(期待)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저의 글을 뽑아주시니 오히려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심사위원(審査委員) 선생님네께서 잘못 선정(選定)하신 것이 아니라면 필경 저에게 큰 책임감(責任感)과 사명감(使命感)을 깨닫는 계기(契機)를 마련해주신 것으로 여깁니다.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이 악혜(惡慧)에 악혜(惡慧)하여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지금 세대(世代)는 물질문명(物質文明)의 황금기(黃金期)로서 정신문명(精神文明)이 어느 시대(時代)보다도 빈약한 이때 우리가 선조(先祖)에게로 눈을 돌린다는 것은 큰 의의(意義)가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 조상(祖上)에게는 인간(人間)의 좌표(座標)인 도덕(道德)이 있고 자비(慈悲, 사랑)가 있으며 흐뭇한 인간미(人間味)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상(祖上)의 면목(面目)을 이웃들에게 알려드리고자 제가 감히 붓을 들었습니다만 역량(力量)이 부족(不足)하여 본래 의도한 바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달을 보고 손가락을 잊는(見月忘志) 예지로 읽어주시고 미숙한 저에게 많은 편달을 주시기 바랍니다…”(1967년 ‘편양선사(鞭洋禪師) 평전’ 가작 수상 소감 중에서)

○…“노덕 스님네는 짬만 나면 옛날 수행 잘하신 스님이나 학덕이 높았던 스님네의 얘기를 곧잘 들려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럴 적마다 저도 그분네 같은 선지식(善知識)이 될 것을 마음 속 으로 굳게 다짐하였던 것입니다. 고존숙(古尊宿)이 남긴 어록, 전기, 설화 등을 통하여 그분들에게 친근승사(親近承事)하는 사이 그분들의 참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에게서는 언제나 그윽한 향기가 풍겨 나옵니다. 그분들은 항상 무한한 자비와 근엄한 훈계로서 후생을 어루만지시고 채찍질하여 주심을 역역히 봅니다. 이제 그분들의 모습을 붓으로 옮겨보았습니다. 워낙 크신 모습이므로 무딘 솜씨로써 온전히 그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외람되이 손을 댄 것은 제게 주어진 숙명적인 사명감을 자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귀사에서 전년에 이어 재차 선(選)해주신 것도 바로 이 점을 저에게 일깨워주신 뜻으로 알고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1968년 불교신문 ‘제5회 학예(學藝) 현상모집(신춘문예)’ 입선 소감문 중에서)

○…“중노릇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요즘에 나이 칠순 되니까 느껴져요. 중노릇이 어렵구나. 젊어서도 유혹도 받고 유혹에 빠져보기도 했습니다만, 중노릇 지금까지 한 것이 지금까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어려웠던 것인가를 항상 반성합니다…”(2001년 화엄사 보살계 수계법회 법문 중에서)

○…“만약에 교가 선보다 못하다면 교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가 없어요. 선으로 다 만들어 버리죠. 또 마찬가지로 선이 아니면 교를 또 말할 수가 없어요…”(2006년 10대 강백 초청 봉선사 강설대법회 법문 중에서)

○…“스승이신 동산스님이 당시 방에 붙여 놓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으신 글이 있습니다. ‘서리 이고 있는 소나무의 깨끗한 지조(霜松潔操) 물속의 달은 옷깃이 비었더라(水月虛襟).’ 출가수행자는 이 글귀처럼 살아야 합니다. 요즘 절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그렇게 좋아진 환경인데, 스님들의 공부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여 대각을 성취하려고 출가한 것이지 어디 재물을 갖고 농락하려고 출가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2008년 부산일보 인터뷰 중에서)

정리=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 영결사

극락세계에서
적멸의 열반
연꽃을 피우십시오

흥교스님
흥교스님

사바의 인연은 가고옴이 이치이고 출가본분사의 도리는 본래 그 자리일진대 오늘 영결을 고해야 하는 스님의 본래 모습은 어디에 계십니까.

스님 진성이 생멸이 있습니까. 참으로 제행이 무상합니다. 스님께서는 수많은 업적과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막상 스님을 보내는 저희 마음이 허허롭지 못한걸 보니 참으로 인연이 깊었나 봅니다. 생사의 근본이 부처님 본분상에서 본다면 슬픔마저 허물이 된 것 같습니다.

스님, 이제 사바의 모든 인연을 다 떨쳐 버리고 본분사를 마치신 스님은 홀가분하시겠습니다.

지금은 극락세계에서 적멸의 열반락을 누리시겠지요.

스님, 남은 인연이 있거들랑 거두어 제자들에게도 문도에게도 남기지 마시고 적멸의 열반의 연꽃을 피우십시오. 서산에 졌던 해는 오늘 이렇게 다시 떴습니다. 

스님도 그러하시겠지요. 

불기2564년 6월22일
범어사 원로 흥교 분향

조계종 교육원장 진우스님이 지흥당 백운 대강백 영결식에서 문도를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장 진우스님이 지흥당 백운 대강백 영결식에서 문도를 대표해 인사를 하고 있다.

◼ 문도대표 진우스님

“은사 스님 유지 받들어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좀 더 잘 모셨더라면 충분히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셨을 텐데, 저의 성의와 노력 부족으로 잘못 모신데 대해 깊은 자괴감과 아울러 참회의 심정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6월22일 장성 백양사 대웅전 앞에서 엄수된 지흥당 백운 대강백 영결식에서 문도대표 진우스님(조계종 교육원장)은 참회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하지만 은사 백운스님에 대한 진우스님의 효심(孝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부산 미륵사와 담양 용흥사에서 정성을 다해 시봉한 것은 물론 그 이후에도 은사 스님의 쾌유를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진우스님은 영결식을 마치면서 “앞으로 은사 스님의 49재를 원만히 잘 봉행하겠다”면서 “깊이 참회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재차 밝혔다. 

백양사와 범어사가 합동으로 원만하게 문도장을 봉행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진우스님은 “은사 스님의 장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백양사 소임자 스님들과 신도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면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 없이 영결식과 다비식을 거행한 것은 사부대중의 관심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인사했다.

이어 진우스님은 “경향 각지에서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분향소를 직접 찾아와 조문해 주시고, 조화를 보내주신 사부대중에게 문도를 대표해 인사드린다”면서 “그분들의 은혜를 평생토록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일을 치르면서 많이 부족하고 잘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양해와 너그러운 용서를 바랍니다. 상좌들을 은사 스님께서 당부하신대로 참선 정진 열심히 수행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백양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3594호/2020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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