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붓다의 여성에 대한 인정은
근세까지의 그 어떤 종교나 철학도
따라올 수 없는
불교만의 탁월함이라고 말하곤 한다

오늘날 페미니즘 논의가
심심찮게 나오는 상황에서
붓다의 선택은
너무나도 합리적인 가치인 동시에
인간존중과 존엄의 대변이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현스님
자현스님

종교란 믿음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로 인해 특정 종교에서 최고로 치는 가치도 다른 종교에서는 하잘것없이 치부되곤 한다. 마치 이슬람이나 기독교에서 절대시하는 신의 천지창조를 다른 종교나 과학에서는 무지의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는 따위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교에는 다른 종교에서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우수성이 존재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인정, 즉 붓다께서 여성을 수행자와 성직자로 수용하신 부분이다.

이슬람이나 가톨릭에는 오늘날까지도 여성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직자는 고사하고, 가톨릭에서는 여성은 신도조차도 신 앞에 똑바로 설 수 없다. 때문에 여성은 얼굴을 가리는 미사포를 착용해야만 한다. 미사포란 현재까지 유전되는 가톨릭의 여성 차별에 대한 상징인 셈이다.

개신교는 성직자인 신부를 부정하고,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1517년 루터가 신도 중심을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이런 재가주의로 인해 목사는 신도의 리더일 뿐, 전문 성직자인 신부와는 위계를 달리한다. 그러나 재가주의를 표방했음에도 목사 중 여성으로 두드러진 인물은 500년 개신교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서구의 여성 차별에 대한 종교 인식은 뿌리 깊은 것이다.

이러한 서구의 인식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 스위스의 여성 참정권이 부여가 1971년이라는 점이다. 참정권은 국민의 가장 근본적인 기본권이다. 그런데 오늘날 최고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스위스의 여성 참정권 부여가 불과 50년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성 차별은 인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법조항 모음인 <마누법전>에서, 여성에 대한 살인은 살인죄가 아닌 상해죄로 처리된다. 또 불교의 율장에는 당시 여성만 존재하던 집은 주인 없는 집으로 규정돼 재산이 국가로 몰수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즉 여성은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아니라, 투명 인간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실제로 인도에는 최근까지도 사띠(Sati)라고 해서, 부인은 남편이 먼저 죽으면 화장하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잔인한 문화가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붓다 당시 인도에서 여성은 남성과 대등한 인격의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프라쟈파티가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하자, 붓다는 깊은 고뇌에 잠기게 된다. 당시 여성들의 지위를 고려해 봤을 때, 여성의 수용은 새롭게 시작된 불교의 발전에 악영향을 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격주의자였던 마하가섭은 여성 출가 문제를 가지고, 붓다가 열반하신 뒤에도 당시 중재자로 나섰던 아난을 힐난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그만큼 여성의 출가는 매우 힘든 과정을 거친, 고귀하고도 숭고한 가치인 것이다.

2500년 전 붓다의 여성에 대한 인정은, 1971년의 스위스 상황보다도 더 급진적이고 선진적인 선택이었다. 때문에 나는 이런 부처님의 결정이야말로, 근세까지의 그 어떤 종교나 철학도 따라올 수 없는 불교만의 탁월함이라고 말하곤 한다.

오늘날 페미니즘 논의가 심심찮게 나오는 상황에서, 붓다의 선택은 너무나도 합리적인 가치인 동시에 인간존중과 존엄의 대변이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누구나 긍정할 수밖에 없는 붓다의 혜안, 즉 시대를 넘어서는 진리의 위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594호/2020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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