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생각해서 시작한 요가
끝나면 무언가 치유되는 기분
말끔히 비워지고 무아로 빠져
언제부턴가 마음 다스리기 돼

장정윤
장정윤

요가원을 다닌 지 9개월 정도가 되었다. 요가는 명상을 비롯해 몸매 관리와 스트레칭을 하는 운동, 딱 그 정도만 알고서 요가를 시작했다. 그저 건강을 생각해서 등록한 요가였는데, 언젠가부터 몸과 함께 마음을 다스리러가는 시간이 되었다.

요가가 끝나면 무언가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 마음대로 되지 않던 내 마음이, 마치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말끔히 비워지고 무아(無我)로 빠져들었다. 요가의 의미가, 요가의 세계가, 내게 점점 중요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팬시점에서 판매하는 피규어를 구경하다 요가 하는 모양의 피규어가 있는 것을 보고 덥석 구매를 했다. 동작은 연꽃 자세, 비둘기 자세, 보트 자세, 나무 자세, 삼각형 자세, 어깨로 서기 자세로 총 6가지가 있었는데 랜덤 박스라 원하는 것을 골라 살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첫 구매에서 제일 갖고 싶었던 연꽃 자세를 뽑았다.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는 듯한 다른 동작들에 비해 고요히 가부좌를 틀고 있는 연꽃 자세는 평온한 불교 수행자를 연상시켰다. 요가의 연꽃 자세는 파드마사나(padmasana)라는 기본 명상자세로, 불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이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는 이 피규어를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으니 방 안에 귀여운 부처님이 앉아 계신 듯 했다.

어째서 요가의 동작들은 불교를 떠올리게 하는 걸까. 궁금증이 생겨 이 둘의 연관성을 찾아보고서는 이 사실을 불자로서 뒤늦게 알아차린 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요가는 과거 인도의 힌두교 수행 방법이었고, 불경(佛經)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수행 또한 요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요가는 고대 인더스 문명으로부터 시작해 여러 종교와 수행에 영향을 주었으며, 불교 역시 영향을 받았다.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에서도 요가 구절이 언급된다. 

“위대한 요가의 힘을 성취한 님을 위해서 쓰와하, 신비로운 힘의 방편을 지닌 요가 수행자의 님을 위해서 쓰와하”

‘요가’라는 낱말은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요가 수련을 통해 잡념을 소멸시키는 것을 ‘삼매’, 산스크리트어로 ‘사마디(samadhi)’라고 하는데 이 사마디에 이르는 것이 요가 수행자의 최종 목적지다. 단지 생각을 없애는 수준이 아니라 초의식 상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우주처럼 넓고 광활한 내면 속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신비로운 영역에 이르는 일이다. 

일반인들이 단순히 몸매 관리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요가는 애초에 정신을 수련하기 위한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 행위였다. 요가의 철학을 공부하자면 정말 그 깊이가 방대하다. 그 동안 요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요가를 배운다고 하고 있었다니. 사실 처음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힘든 요가는 싫었다. 하지만 요가는 곧 수련인데, 쉬운 수련이 있을 리가…. 반복된 연습으로 요가에 적응하고, 이제는 요가를 즐기게 된 내 자신이 기특하다. 

운동의 일환으로 요가를 하는 것과, 명상 수련의 마음으로 요가를 하는 것은 그 집중도와 마음가짐이 다르다. 요가의 의미와 목적을 제대로 알고 나서 요가에 임한다면, 한층 더 마음을 비워내고 내면 속 거룩한 영역인 사마디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594호/2020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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