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치료받고…병원 나가면 성실하게 살아야지”
“먹고 자고 치료받고…병원 나가면 성실하게 살아야지”
  • 손영주
  • 승인 2020.07.01 14:12
  • 호수 35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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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끝>
[참가상 수상작] 손영주 ‘지옥 같은 천국’


심심한게 최고의 적이다
내가 그동안 너무 한가하게 살아서
이런 벌을 받는가 하는 생각…
어서 빨리 가족들 기다리는
집으로 가게 해주세요 제발…

안녕하세요. 저는 교통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손영주입니다. 기독교 신자이기도 합니다. 동국대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인데 제 일기장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2019년 11월6일부터 펜을 들었습니다. 별건 아니지만 제 생활을 들어보시죠. 

2018년 5월27일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고통도 없고 기억도 없는데, 나는 병원에 있다. 그저 이상할 따름이다. 병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너무 심심하고 무기력하다. 큰 사고였다고 하는데 제일 미안한 건 남편과 자식들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기특하고 자랑스럽게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까지 받았으니 너무 행복하다. 

특히 재활의학과 이호준 교수님, 임동인 주치의 윤정원, 물리치료사 박준형, 연하치료 채우람, 언어치료 이인화, 작업치료 이한별, 보강아쿠아치료 박준형, 부담당 조성윤, 로봇대행 지성근 선생님들께 모두 감사하다. 한방재활의학과 이명종 교수님, 심혜윤, 신경과 손경락 교수님, 간호사 선생님들도 역시 감사할 따름이다. 
 

교통사로 기억상실증으로 치료를 받은 손영주 씨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편안한 병원생활에도 소중한 가족이 있기에 빨리 퇴원하려 애를 썼다.
교통사로 기억상실증으로 치료를 받은 손영주 씨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편안한 병원생활에도 소중한 가족이 있기에 빨리 퇴원하려 애를 썼다.

11월5일 화요일
세나가 퇴원을 한다. 일산중심병원으로 간다고 한다. 나도 곧 따라간다. 열심히 해서 빨리 퇴원하기를 바란다. 오늘은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모든 게 다 귀찮다. 

11월6일 수요일 
다솔이가 장학금 받는다는 편지를 보았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잘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다. 하지만 고맙고 자랑스럽다. 남편이 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 나가서 2층에 숨어있었다. 나타나는 순간 “진기야 사랑해!”라고 외치려고 했는데 “진기야!”에 그쳤다. 왜 그랬는지 아쉬웠다. 내가 빨리 나아서 집에 가야하는데…, 행복한 가정 꾸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11월7일 목요일 
|(아침) 하루가 시작되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 똑같은 일상이 지겹다. 
|(저녁) 이모랑 세나 엄마랑 나랑 셋이서 고스톱을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등을 한 번도 못하고 바닥만 쳤다. 그래도 게임이니까 우승을 해봤어야 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이모랑 함께 해서 더욱 즐거웠다. 다음번엔 꼭 이겨야지.

11월8일 금요일 
(저녁) 오늘 하루는 정말 바쁘고 힘들었다. 진기씨 오면 띵가띵가 놀자고 해야지. 

11월9일 토요일 
(점심) 소고기 뚝배기탕을 점심으로 먹었다. 맛이 있었다. 

11월10일 일요일 
(저녁)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일 아빠가 비 안 맞고 가야 할 텐데….

11월11일 월요일 
경일 아빠랑 세나 엄마랑 세나랑 이모랑 카페에서 맛있는 빵을 사먹었다. 경일아빠를 물주삼아 어떻게 놀려먹을까 고민했었는데 재미난 게 떠오르지 않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11월12일 화요일 
(아침)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나님이 원망도 많이 되지만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질 않는다. 밥 먹기 싫어서 죽을 시켰는데 그 역시 맛이 없었다.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점심) 오므라이스가 나왔다.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한술 떴는데 역시나 그저 그랬다. 하지만 한술도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11월13일 수요일 
(아침) 맛없는 아침을 깨끗이 다 먹어 치웠다. 경일이와 다솔이가 보고 싶다. 기특한 녀석들 자랑스럽다. 
(점심) 운동하다가 사진을 찍자고 선생님이 말씀하셔서 이왕이면 평상시 눈여겨 보았던 미남선생님과 같이 찍자고 하였다. 흔쾌히 같이 찍어주신 선생님께 감사했다. 무척 기뻤다. 

11월14일 목요일 
(아침) 아침에 눈을 떴는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용기를 얻자고 남편한테 전화를 했는데 그 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밥도 맛이 없고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 
(저녁) 카페에서 이모가 사주신 아메리카노를 남김없이 마셨다. 뭐든 왜 이렇게 맛이 없는지 모르겠다. 맛있게 좀 먹어 봤으면….

11월15일 금요일 
기분 좋게 시작하려고 아침인사를 또박또박했다. 내일이면 지인들도 만나고 기분 좋다. 
(점심) 스파게티가 나왔다. 내 입맛에는 맞질 않았다. 그래도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시원한 대변을 보기 위해서…. 내일이 기다려진다. 
(저녁) 콩나물비빔밥이 나왔는데 왜 이렇게 맛이 없던지 먹어치우기도 힘들어서 그냥 남겼다. 

11월16일 토요일 
(아침) 오늘은 집에 가는데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실수할까봐…. 경일이와 다솔이도 봤다. 참 기쁘다. 

11월18일 월요일 
오늘 병실을 옮긴다.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너무 심심해. 진기씨 화이팅! 나 잘해서 가는 거지? 더 열심히 해서 빨리 퇴원할게. 

11월19일 화요일 
(아침) 밥이 너무 맛이 없었다. 앞에 있는 언니는 반찬이 다를까 해서 물어보았는데 똑같았다. 에구! 어찌 참고 먹는지…. 이모 말이 오늘은 바쁘다니까 참 다행이다. 바쁘게 살아보자. 기분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11월20일 수요일 
(아침) 운동평가를 했다. 반복해서 힘들게 하는 게 평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했다. 오늘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11월21일 목요일 
(아침) 호박죽을 먹었는데 너무 달았다. 간신히 먹었다. 내 가족들도 아침을 맛있게 못 먹었겠지…. 내가 얼른 나아서 같이 먹어야지. 그럼 좀 낫지 않을까? 그 녀석들 맛이 없어도 잘 먹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너무 큰 바람인가? 
(점심)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참치집이었다. 전화번호가 언제 바뀌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엄마가 병원에 계시다고 하는데 대화는 되는건지 궁금하다. 엄마! 보고 싶어요! 아빠랑 통화를 했다. 아빠도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고 엄마도 그렇고 마음이 아프다. 효도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11월22일 금요일
(점심) 드디어 내일이 토요일! 대전에 가자고 말해봐야지. 
(저녁) 대전에 못가고 형석이 엄마랑 약속이 잡혔다. 내일 즐겁게 놀아야지! 

11월23일 토요일
(아침) 오늘 처음 사과를 한번 깎아봤다. 칼이 좀 조심스러웠지만 깎을만 했다. 오늘 형석이 엄마 고정희를 만나기로 했는데 기대가 된다. 보고 싶은 정희! 

11월25일 월요일 
밥이 너무 맛이 없다. 간신히 먹었다. 어제 형석이 엄마를 만났는데, 먼 옛날 같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형석이, 형준이가 모두 미대쪽 이라는 것 밖에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왜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우리 가족만 생각하면 여긴 지옥이고, 나 개인만 생각하면 천국이다. 아니 천국 같다. 뭐든 불편하면 쉬고 속편한 운동만 하고 졸리면 잔다. 심심한 게 최고의 적이다. 먹고 치료받고 자고, 먹고 치료받고 자고…. 지겹다. 내가 바쁘게 안 살아서 이런 벌을 주시나? 이제 성실히 살겠습니다. 집으로 가게 해주세요!

[불교신문3594호/2020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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