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정확한 암기보다 ‘문제 발견 능력’이 관건

보일스님
보일스님

“인공지능이 우리한테 무슨 상관이 있죠? 우리는 심지어 출가한 수행자인데요.” 승가대학에서 인공지능 강의를 하고 비유를 하다 보면 학인 스님들로부터 종종 이런 도전적인 질문을 받곤 한다. 하긴 그렇다. 몰라도 된다.

굳이 뭐 인공지능을 잘 알아야만 수행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옛날에 큰스님들은 인공지능이 없던 시절에도 잘만 깨치고, 자비행을 실천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을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 붓다의 깨달음이 그러했듯,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상관없는 것은 없다.

붓다의 가르침은 우리 삶의 이야기이고 역사이다. 그 삶이 변화하고 있다. 그것도 크게 말이다. 4차 산업혁명 또한 우리 삶의 내용이자 변화 그 자체이다. 그 변화의 폭은 인연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우리를 자각하듯이, 하나의 은유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저 유용한 방편에 불과하다.

➲ 혁신은 환영받으며 오지 않아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얘기하다 보면 결국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오히려 자신을 분석적으로 비추어 보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냥 바로 방편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안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미안하지만 세상이 이미 바뀌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모든 혁신과 혁명은 환영받으면서 오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세대는 이미 우리와는 다른 세대임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방식대로, 우리의 학인 스님들을 또는 우리의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난 1년 동안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다양한 사건과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의 내용과 방향을 더듬어 봤다면,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인재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꼭 필자가 승가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어서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속해있는 회사나 가정, 또는 전통마저도 지켜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쩌면 지루하고 골치 아픈 주제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바로 교육이다. 4차 산업혁명하면 우선 기술이 떠오르지만, 그 기술은 교육에 바탕하고 있다. 교육은 해마다 각기 다른 교육자, 정치가, 행정가들이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안하고, 적용하고, 문제점이 발생하면 폐기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교육은 어렵고 아무리 시간과 재원을 쏟아 부어도 금방 티가 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들 하지 않는가. 

세상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지루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를 논의하다 보면,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에 다다른다. 그 문제는 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어떻게 가르쳐서 이 시대와 미래를 준비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교육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의 교육이 주어진 지식을 빨리 정확하게 외우는 것과 틀리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들에게는 문제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 지식은 언제든지 검색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식을 배포하는 것은 인터넷이 하는 일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이러한 디지털 생태계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데이터의 소비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들에게 더는 개별 지식 자체의 전달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전통시대의 교육이 주어진 지식을 빨리 정확하게 외우는 것과 틀리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들에게는 문제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 지식은 언제든지 검색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식을 배포하는 것은 인터넷이 하는 일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이러한 디지털 생태계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데이터의 소비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들에게 더는 개별 지식 자체의 전달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우선 우리가 교육할 세대가 어떤 사람들인지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는 말이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를 통칭한다. 미래학자인 마크 프렌스키(Marc Prenski)에 의하면 1979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규정한다. 이 기준에 따른다면 필자도 나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안하게도 아닌 것이 분명해진다. 어쨌든, 이들에게 디지털은 기술이나 기기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삶을 이루는 하나의 환경인 것이다.

디지털 스크린에 익숙한 이들은 엄청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생태계에 매우 익숙하며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소통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이들이 주로 이 세대에 해당할 것이다. 전통시대의 교육이 주어진 지식을 빨리 정확하게 외우는 것과 틀리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들에게는 문제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 지식은 언제든지 검색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식을 배포하는 것은 인터넷이 하는 일이다. 그건 너무나 쉽게, 실시간으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무료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이러한 디지털 생태계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데이터의 소비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들에게 더는 개별 지식 자체의 전달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네이티브’들을 상대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 지식을 재구성하고 통합하면서 창의적인 질문과 구상을 끌어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고 중시된다. 머지않아 학교에서는 교사를 도와주는 학습 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는 로봇과 대화 연습을 할 수 있고, 수학을 배울 때는 로봇이 문제 풀이를 도와줄 것이다. 그렇다고 교사가 필요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교사들은 더 고차원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교사들은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다. 

‘미네르바 스쿨’과 ‘애드 아스트라’

여기에 한 비밀 학교가 있다. 전교생은 40여명에 불과하고, 특정한 학년도 없고 숙제도 거의 없고, 성적은 매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배우는 내용은 예사롭지 않다. 암기식 수업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학생들 스스로 탐구 주제를 선택하고, 연구하고 토론한다. 학생 개인의 장점이나 개인적 선호를 발견하고, 격려하고 존중해주는 시스템을 자랑한다.

주로 배우는 것은 수학, 과학, 공학, 윤리학, 인공지능, 로봇공학, 코딩 등이다. 언뜻 보면 이과 쪽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장 지속적인 교육내용은 윤리와 도덕에 관한 대화이다. 철학과 인문학을 배우고 실제로 훈련할 수 있는 교과과정이다. 기술을 강조하는 만큼 동시에 그 윤리적 파급효과도 고려하여 균형 있게 가르친다.

흥미로운 점은 교내에서만 통용되는 가상통화를 사용하고, 그들 스스로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온라인 거래도 한다. 학교는 이 모든 과정을 후원하고 장려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교실 안에서 이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디지털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을 배우고 그 문제점을 발견해 낼 수 있게 한다. 이 학교는 기존에 학교에 실망한 일론 머스크가 직접 설립한 ‘애드 아스트라(Ad Astra)’이다.

‘별을 향하여’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한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미래사회의 리더를 키우는 것이라고 알려진다. 아직 이 학교는 언론을 통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교육 혁신의 상징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학교는 또 어떤가?

일정한 캠퍼스는 없다. 학생들은 베를린, 런던, 샌프란시스코, 서울 등 전 세계 7개 국가의 기숙사를 해마다 옮겨 다니며 생활을 한다. 이 학교는 식당이나 헬스장, 연구실과 교수용 사무실을 짓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의 모든 자원은 오직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지원하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쓰인다. 기존의 대학이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학교는 ‘플립러닝’ 즉 거꾸로 수업방식을 지향한다.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이란 온라인을 통한 선행학습 뒤에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교수와 토론식 강의를 진행하는 역진행 수업 방식을 말한다. 전 세계 14개국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완전 능동적 학습’이라는 방식의 수업을 통해 모든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한다.

대부분의 수업은 한 곳에 모이지 않고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캠퍼스는 없지만, 전원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가는 도시마다 세상 밖으로 나가서 진짜 인생을 경험하고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는 지도 배운다. 실제 체험을 강조하는 이유는 학생들 사이에 협업과 상호교류가 온라인상에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지역에서 자기가 거주하는 도시의 주민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고, 직접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교수진은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석학들로 채워져 있다. 이쯤 되면, 입학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미국대학 입학시험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입학원서를 작성할 때에 집안이나 배경에 관한 작성을 금지하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등을 입학 사정에서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서이다. 이 학교는 ‘지혜의 신’이라는 이름을 따서 만든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이다.

2014년부터 문을 연 이 학교는 미래의 변화를 주도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변화는 이곳저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비약적 혁신이 일어나는 동안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이미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교육은 더 이상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배우는 법, 실패하는 법, 소통하는 법, 협업하는 법을 배우고 문제해결을 위한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키워가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신문3593호/2020년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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